“객석 대신 식탁을”…음식이 서사가 되는, 다이닝 씨어터 ‘남극장’ [공간을 기억하다]
남극장(극단 컴퍼니 연결) 남승주 대표 인터뷰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서울 관악구 ‘샤로수길’로 불리는 봉천동 문화거리에 낯설고도 매혹적인 공간이 문을 열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고, 관객은 문을 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스며든다. 테이블에 놓인 요리 역시 단순한 식사가 아닌 서사의 일부가 된다. 9년간 무대를 만들어온 극단 ‘컴퍼니 연결’의 남승주 대표는 이곳 ‘남극장’에서 ‘다이닝 씨어터’(Dining Theater)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남극장은 단순히 공연을 올리기 위해 마련된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오랫동안 공연을 제작해 온 남 대표가 다음 단계를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이자, 새로운 문화운동의 진원지다. 만들어진 상품으로서의 공연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젊은 예술인들이 모인 샤로수길에서 복합적인 문화예술을 펼치겠다는 목표로 닻을 올렸다.
“공연 제작을 9년간 이어오며 우리만의 색이 짙게 담긴 예술, 대중성과 예술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원했습니다. 단순히 상품을 만들어 공연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예술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고,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샤로수길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대표의 이름을 걸고 자유롭게 창작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전초기지가 필요했습니다.”

치밀한 설계로 완성된 식당과 극장의 공존
공간의 탄생에는 한 편의 극적인 인연도 따랐다. 현재 남극장이 자리한 신축 건물의 건물주는 고깃집, 횟집 등 숱한 입점 제안을 모두 거절한 채 1년 동안이나 ‘공연장’이 들어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하지만 비어 있는 공간을 식당이자 무대로 탈바꿈시키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무대와 식당의 경계를 완전히 없애면서도, 두 공간의 법적 허가와 기능적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세밀한 설계가 필요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대와 식당을 구분하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일하는 공간까지도 조명 빛이 닿도록 상부 전체를 극장 설비로 구성했고, 바닥은 일반 인테리어 타일이 아닌 전면 흡음 구조로 특수 제작했습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만큼 음향 설비도 세밀하게 구축하면서, 공연 중에는 주방 시설이 관객에게 보이지 않도록 설계해야 했습니다. 어디에도 없던 형태의 공간이기에 모든 요소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고민하고 세심하게 다듬었습니다.”
이토록 치밀하게 공간을 일체화시킨 이유는 관객을 극의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이는 ‘이머시브(몰입형) 씨어터’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최근 대학로나 종로에서 유행하는 뮤지컬 펍이 식사와 공연이 분리된 채 한 공간에 존재하는 형태라면, 남극장은 관객이 극 속에 완전히 편입되는 중의적인 체험을 제공하며 다이닝 씨어터만의 확고한 차별점을 둔다.
“지난 9년간의 공연 제작을 돌아보니 모든 작품 속에 관객과 소통하는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관객이 극 안으로 직접 들어와 경험하는 이머시브 씨어터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펍은 식사와 공연 경험이 명확히 나뉘어 있지만, 남극장의 ‘연극 식당’은 연극을 보는 식당이자 동시에 ‘식당’이라는 제목의 연극 속에 들어가는 경험입니다. 최근 ‘슬립 노 모어’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듯 점차 확장된 경험을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남극장이 하나의 중심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해 나가고자 합니다.”

서사의 일부가 되는 코스 요리, 개관작 ‘식당’
남극장의 정체성은 현재 개관작으로 선보이고 있는 연극 ‘식당’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 대표가 이끄는 극단 컴퍼니 연결이 추구해 온 고유의 색깔인 ‘새로운 예술적 순간’(New Art Moment, NAM)을 선사하는 이 작품에서, 흐름에 맞춰 제공되는 코스 요리는 단순한 미식 경험을 넘어 극의 흐름과 결속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연극 ‘식당’은 남호텔(NAM HOTEL) 창립 30주년 귀빈 초청 연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인물들과 마주하고, 안내에 따라 예약된 자리에 앉으며 연회에 초대된 손님으로서 서사에 자연스럽게 편입됩니다. 매니저의 안내를 따라 과거의 장면을 목격하고 인물들의 내면을 엿보는 다층적인 서사 속에서, 제공되는 코스 요리를 통해 음식을 즐기는 행위와 사건을 경험하는 순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특별한 구조를 체험하게 됩니다.”
선 조명이 상징하는 철학, 그리고 소극장의 가치
대중성과 예술성의 접점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남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철학은 ‘관객과 무대의 선을 허무는 것’이다. 남극장의 벽 전체를 가로지르는 선 조명은 공연 시작과 함께 꺼지며 이 철학을 시각적으로 선언한다. 이 지점은 대형 매체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소극장만의 ‘생동감’과도 맞닿아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결합하는 것, 그 두 지점을 연결하는 것이 남극장의 핵심 과제입니다. 공간에 벽 전체를 가로지르는 선 조명이 있는데, 이 선을 끄며 공연이 시작합니다. 관객과 무대의 선이 허물어졌다는 우리만의 철학이 담긴 시그니처 포인트입니다. 관객분들은 소극장의 가치로 ‘숨소리’를 꼽으셨습니다. 누군가의 숨소리를 듣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며, 매체와의 가장 큰 차이는 그날 그 자리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라이브성에 있습니다.”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는 연출가의 목표
식음료와 공연을 결합한 다이닝 씨어터를 개척하는 일은 연출가에게 메뉴판의 디자인부터 접시 위 요리의 플레이팅까지 모든 것을 서사의 일부로 통제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쉽지 않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남 대표가 이 공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선명하다.
“음식이 공연의 일부로 제공되다 보니 지인들에게 흔한 초대권을 드리기 어려운 점이 현실적인 민망함이긴 합니다. 또 접시와 재료의 플레이팅부터 메뉴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연출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과정은 흥미로워졌지만 훨씬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남극장은 다이닝 씨어터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공간이길 원합니다. 관객들이 문을 열고 나갈 때 ‘나 오늘 새로운 예술을 경험했다’고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료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을 하고, 관객들은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운영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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