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 활성화, '과목 코드' 추가는 정답이 아니다

이정열 2026. 3. 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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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별도의 선택과목으로 역사 왜곡에 대응...?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왜곡 당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정열 기자]

지난 2월 26일, 교육부는 역사 왜곡 콘텐츠에 노출된 학생들을 지도할 계기를 마련하겠다며 '학교 역사 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중학교 근현대사 분량 확대와 고등학교의 역사 콘텐츠 비평 및 탐구 중심 선택과목 신설이 그 골자다.

명분은 화려하다. 하지만 이는 고교학점제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이미 과부하가 걸린 학교 현장을 외면한 전형적인 탁상공론이자, 역사 교육의 본질을 오해한 또 하나의 전시성 사업에 불과하다.

역사 리터러시, '별도 과목'이 아닌 모든 '역사'의 기본값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역사 리터러시는 특정 과목을 통해 따로 배워야 하는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사, 세계사 등 모든 역사 계열 교과 내에서 일관되게 추구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자 핵심 가치다.

별도의 선택과목을 만들어 역사 왜곡에 대응하겠다는 발상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역사 과목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교육당국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은 역사 왜곡에 무방비로 노출되어도 좋다는 논리적 모순에도 빠지게 된다. 교육과정상의 시대별 비중이나 특정 과목의 개설 여부는 역사교육의 성패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

토론할 여유 없는 입시 체제와 교사를 위협하는 진영 논리

고등학교 교실은 가혹한 입시 체제에 노출되어 있다. 역사적 맥락을 곱씹으며 사건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할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정답이 정해진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된 상황에서 비판적 사유인 리터러시는 설 자리가 없다.

더욱이 학교 밖의 정치는 이미 서로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부족주의에 잠식되어 있다. 최소한의 민주적 가치와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는 것조차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사들은 직업적 생존을 위해 자기 검열을 강요받으며, 결국 가장 안전하고 건조하게 박제된 지식만을 전달하게 된다.

고교학점제의 파행과 전시행정 뒤에 숨은 자원 낭비

교육부의 방안은 학교 밖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갈등을 '교육과정 개정'이라는 손쉬운 행정적 행위로 해결할 수 있는 척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의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책은 학교 밖에 있음에도, 마치 학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포장할 것을 요구하는 정책의 도돌이표가 반복되고 있다.

이미 현장의 고등학교들은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지나치게 세분화된 선택과목들로 인해 수업 편성이 한계에 다다랐다. 이런 상황에서 실효성 없는 과목을 하나 더 얹는 것은 이미 초래된 고교학점제의 파행을 심화시킬 뿐이다.

결국 이 정책의 수혜자는 학생이 아니라, 새 교육과정 고시와 교과서 개발을 통해 연구 자금을 얻고 경력을 쌓으려는 일부 학계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가 재정과 교육적 역량의 명백한 낭비다.

화려한 커리큘럼보다 시급한 보편적 교육권의 보장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과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공교육 시스템 내의 구멍을 메우는 일이다. 새로운 선택과목 개발에 투입될 에너지를 기존 역사 과목의 수업 내실화와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에 쏟아야 한다.

특히 매번 발행이 지연되어 학습권 침해 논란이 있는 점자 교과서 개발과 같은 특수 교육 대상자 지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통 교육의 질 제고에 자원을 우선 배분하는 것이 공교육의 정의에 더욱 부합한다. 당장 해결해야 할 보편적 교육권의 결핍은 외면한 채, 화려한 커리큘럼 뒤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기만적인 행정이다.

민주 시민 교육의 조건

공교육 정상화, 학생들의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 함양은 과목 코드 하나를 추가하는 것으로 담보할 수 없다. 교사가 안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수업권의 보장, 학생이 등급의 압박 없이 생각할 수 있는 평가 제도 혁신과 입시경쟁 타파, 그리고 학교를 정치적 도구로 쓰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민주 시민 교육은 과목 숫자를 늘리는 외형적 팽창이 아니라,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교육 당국은 실효성 없는 신규 과목 개설을 재검토하고, 모든 학생이 누려야 할 보편적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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