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노력 끝에 '반헌법행위자열전' 출간... 대통령·판검사 81명 수록

민병래 2026. 3. 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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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부터 노태우까지, 양승태·김기춘 등 생존 인물 36명 포함

[글쓴이: 민병래(작가)]

▲ '반헌법행위자열전' 발간을 알리는 기자회견포스터 3월 31일 백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이 열린다.
ⓒ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반헌법행위자열전>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아래 열전편찬위)는 31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출간 기자회견을 연다.

'열전편찬위'(상임공동대표 이만열, 책임편집인 한홍구)가 구성된 것은 2015년, 그해 제헌절인 7월 17일에 한홍구·임경석·박노자 등 33명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10여 년 동안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해 2026년 3월 초까지 열린 회의만 무려 540여 회였다. 인물 선정을 신중히 하고 수록할 인물의 죄상을 엄정하게 서술하려고 수많은 검토를 했기 때문이다.

'열전'은 총 12권 분량으로 <대통령>과 <법원·검찰>을 다룬 1차 분 4권이 사회평론에서 4월 중에 발간되고 <정치인·관료>, <군>, <중앙정보부>, <경찰>을 수록한 5~12권은 2027년까지 차례대로 나올 예정이다.

'열전'은 2009년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의 성과를 잇되 그 약점을 넘어서려 했다.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을 때 대부분의 반민족행위자가 죽은 뒤여서 역사적 단죄의 의미가 약했다. '열전편찬위'는 이 부분에 주목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소명의식으로 가해자의 범죄를 살아있는 당대에 기록하려 애썼다. 또한 인물의 행적을 압축한 사전이 아니라 열전의 형식을 택했다. 사전에 비해 수록 인물의 양이 적더라도 그 생애사를 밝혀 반헌법행위자가 우리 역사에 끼친 악영향을 제대로 기록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열전편찬위는 이 과정에서 정치적 이념을 배제하고 단 한 가지 원칙, 수록자의 행위가 헌법을 얼마나 배반했는가에만 주목했다. 또 지금 헌법으로 과거의 행위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이뤄졌던 시점의 헌법을 잣대로 판단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려 했다. 아울러 막대한 연구발간 비용을 오직 시민 성금으로만 충당해 사초에만 충실했다.

이런 원칙으로 '열전편찬위'는 2017년까지 대통령·법원·검찰·국무총리·국회의장·정치인·관료·정보기관·군·경찰 중에서 민간인 학살·내란 및 헌정유린·고문 및 간첩조작·부정선거·언론탄압 등 5개 영역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3,000명을 일차로 선정했다. 이중 집중 검토 대상 450명을 꼽았고, 당사자나 유족의 이의 신청을 받기 위해 명단을 공개했다. 단 한 명도 억울하게 수록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서다.

이 과정을 통해 모두 312명을 수록자로 확정했는데 우선 4월에 발간될 1~4권에 오른 인물은 대통령 5명, 정치판사 27명, 정치검사 49명 등 모두 81명이다. 대통령 외에 판검사를 가장 먼저 출간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검찰독재와 사법카르텔의 악행이 12·3 내란을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1권 <대통령 편>에는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 5명이 실린다.

2권 <법원 편>에는 민복기, 유태흥, 양승태 등 전직 대법원장 3인과 정치판사 27명이, 3권과 4권 <법무·검찰 편>에는 김준연, 홍진기, 황산덕, 김치열, 김기춘 등 정치검사 49명이 수록된다. 1-4권에 담긴 81명 중 36명은 2026년 3월 현재까지 생존해 있고, 45명은 사망한 걸로 확인되고 있다. 81명 중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와 있는 인물은 박정희, 민복기, 김갑수, 사광욱, 정재환, 홍진기 6명으로 역사의 공소장에 거듭 오르는 낙인을 받게 되었다.
▲ 반헌법행위자 열전 제1권에 수록될 인물 사진과 펜화로 인물을 표현했다.
ⓒ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제공
▲ 반헌법행위자 열전 제1권에 수록될 인물 펜화로 표현했다.
ⓒ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제공
열전편찬위는 발간 전 마지막 검토를 위해 당사자나 가족·유가족이 사실 확인을 거쳐 소명이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도록 수록 내용을 웹사이트에도 게재할 예정이다.

'열전'편찬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과제, 헌법개정

10여 년에 걸친 '열전'이 세상에 빛을 봄에 따라, 반민주행위자를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길이 열렸다. 마치 '친일인명사전'이 반민족행위자를 겨레의 법정에 세웠던 것처럼. 따라서 '열전'은 우리 현대사에서 그 어떤 기록보다도 값진 책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죄상이 기록되었다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열전'은 반민주행위자를 단죄하는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출발점이어야 한다. 반민주행위자, 국가폭력의 가해자를 현실의 법정에 세우는 방안, '공소시효'라는 장벽을 뛰어넘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

수록자의 범죄유형은 민간인학살·고문·조작수사 등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 국제법의 정신과 이상은 반인도범죄, 인류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에 대해선 공소시효를 없애고 끝까지 처벌한다는 게 원칙이다. 1998년 7월 유엔전권외교회의가 로마에서 열려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관한 국제조약이 탄생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집단살해죄·인도에 반한 죄·전쟁범죄·침략범죄 등 네 가지 범죄를 다룬다. 로마규정 제 29조는 "본 재판소의 관할 범죄는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처벌할 수 있다"라고 못 박고 있다. 고문이나 전시 성폭력 같은 반인도범죄에 대해 언제까지나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법의 정신, 인류가 쌓아온 양심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는 제11조 1항에서 "로마규정 발효 이후의 범죄로만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형사재판소이행입법을 만들 때도 시민운동과 국가폭력피해자단체는 공소시효 배제나 소급처벌을 원했으나 (헌법상의)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내세우는 법조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국제형사재판소가 제11조 1항에 내세운 "재판소 출범 이후 범죄에 한해 끝까지 처단한다"는 기준을 도입하는 선에서 국내 입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헌법을 개정해 '반인도범죄'에 관해 소급처벌의 길을 열면 된다. 이미 우리 역사에는 두 번의 선례가 있다. 제헌헌법은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라는 부칙을 만든 바 있다. 이를 근거로 (비록 이승만의 반민특위 공격으로 실패했으나)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만들어졌다.

4·19혁명 후에도 3·15부정선거 책임자와 시민에게 총격을 가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5·16쿠테타로 좌절되었으나)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과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법' 그리고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 조직법'이 만들어졌다. 이때도 1960년 11월 29일 제4차 헌법개정을 통해 소급입법의 근거를 마련했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서 헌법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제안부터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을 고쳐 남북관계를 평화공존의 단계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반인도적범죄자, 국가폭력의 가해자를 사법적으로 단죄하기 위해 공소시효의 장벽을 뛰어넘는 헌법개정을 모색해야 한다. "반인도범죄'에는 시간의 면죄부가 없다, 지시한 자·공모한 자·실행한 자 모두 처벌한다, 소급해서라도 처벌하라"는 원칙을 우리 헌법에 담아야 한다.

이를 통해 12·3 내란에서 확인된 사법카르텔과 극우 반공세력을 근본적으로 단죄하고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 터이다. '친일인명사전'과 <반헌법행위자열전>이라는 역사의 공소장이 열어 젖힌 우리 미래의 큰 길 앞에서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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