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머 울리면 의자 옆으로 쓱"…10분씩 20명과 스피드한 '로테이션 소개팅'

오지은 2026. 3. 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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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여러 명 만나는 '로테이션 소개팅' 확산
해외·교환학생 경험 맞물려 네트워킹 다양화
코로나 이후 단체문화 재편…"실용주의 부각"

"자, 다음 상대로 이동할게요!"

테이블 위에 놓인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여기저기서 의자가 동시에 밀린다. 방금까지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상대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자리를 옮긴다.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새로운 사람이 마주 앉는다. "안녕하세요, 어디 학교세요?" 비슷한 질문을 되풀이하지만, 분위기는 가볍고 빠른 템포로 흘러간다. 첫눈에 마음에 든 상대가 있으면 번호나 이름을 적어둔다. 요즘 대학가에서 확산 중인 '로테이션 소개팅' 현장 분위기다.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한 대학가에서 열린 ‘로테이션 소개팅’ 형태의 솔로파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일정 시간마다 자리를 옮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테이블마다 타이머가 울리면 참가자들은 다음 상대와 마주 앉아 만남을 이어간다. 독자 제공

최근 대학가에서 '신원 보장'을 전제로 한 로테이션 소개팅 등 모임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위축됐던 '단체 문화'가 다른 방식으로 되살아났다는 해석도 나온다.

27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 같은 모임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학생회가 주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참여 대상을 같은 학교나 특정 지역 대학생으로 제한하고, 다수가 한자리에 모여 일정 시간마다 상대를 바꿔가며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예전처럼 한 사람과 길게 시간을 보내기보다 짧고 인상적으로 여러 사람을 접촉하는 '회전형 만남'이 확산하는 추세다.

진행 방식은 단순하지만 리듬감이 있다. 참가자들은 1대1로 마주 앉아 10~20분가량 대화를 나눈 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자리를 이동한다. 모임 한 번에 10명에서 많게는 20명 이상이 참여해 이성과 빠짐없이 한 번씩 마주하게 되는 구조다. 주최 측이 미리 준비한 질문 카드나 간단한 게임이 대화를 돕기도 한다. '최근 가장 재밌게 본 콘텐츠' '요즘 빠진 취미' 등 가벼운 질문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까지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들이다.

참여자들이 공통으로 꼽는 매력은 '속도와 밀도'다. 수도권 대학생 박모씨(24)는 "12명을 10분씩 차례로 만났는데, 처음엔 정신이 없다가도 금방 적응된다"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재학생 이모씨(22)는 "여러 명을 한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보통 소개팅이나 미팅은 적은 사람과 최소 몇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해서 부담이 큰데, 여기서는 빠르게 '맞는지 아닌지' 감이 온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변화는 이성을 만나는 방식의 변주를 넘어 대학가 사교·여가 문화가 재편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교환학생이나 해외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이 늘면서 현지에서 접한 파티 문화를 국내에서도 재현하려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대학생 커뮤니티와 모임 애플리케이션(앱)에는 바비큐 모임이나 정장 차림의 프롬(졸업 시즌) 파티, 풀(수영장) 파티 등 모임이 자주 등장한다.

덴마크로 6개월간 교환학생을 다녀온 졸업생 윤모씨(23)는 "친구의 친구를 자연스럽게 소개받고 어울리는 홈파티 문화가 인상적이었는데, 특별히 자리를 만들지 않아도 사람을 만나 관계가 확장되는 느낌"이라며 "한국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찾고 싶어 모임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위축됐던 단체 문화가 다른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처럼 동아리나 멤버십트레이닝(MT) 중심의 장시간 교류 대신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형태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데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 동시에 시간과 효율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향이 젊은 세대의 실용적 면모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즉각적으로 만남의 결과가 나오다 보니 실용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요즘 대학생들 성향과 부합한다"고 진단했다. 다만 임 교수는 "사람 간 만남은 편의성보다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라 일부만 보고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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