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은 왜 '아리랑'을 택했나

이예진 2026. 3. 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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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민요를 택했을 때 : '넘는 중의 소리'를 찾아서

[이예진 기자]

 BTS 정규 5집 앨범 커버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BTS가 앨범 제목으로 <ARIRANG>을 내걸었을 때, 한국인 리스너라면 묘한 경계심이 밀려왔을 것이다. 클라이맥스에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뭉클함이 밀려오도록 설계된 그 공식. 거기에 끌려가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아리랑은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강원도와 진도에서 후렴이 다르고, 같은 이름 아래 수백 년간 서로 다른 소리들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소리들이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 체념도 아니고 의지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고개를 넘기 전도 아니고 넘은 후도 아닌, 넘는 중의 소리다. 십 리도 못 가서 쓰러질 것을 알면서도 걷고 있는 자의 음악이다.

두 개의 문법 사이에서

이 앨범은 두 개의 문법을 동시에 의식한다. 아리랑의 문법과 아이돌의 문법. 아이돌 음악에는 암묵적으로 허용된 정서의 범위가 있다. 에너지, 긍정, 희망. <ARIRANG>에 대해 '피로하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건 그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돌이 슬픔과 체념을 노래해선 안 된다는 기대 자체가 또 다른 제약이다.

이 앨범은 쨍하고 밝은 트랙을 단 한 곡도 넣지 않는 것으로 그 제약을 거부했다. 동시에, 아리랑 샘플을 타이틀곡 클라이맥스에 놓는 가장 쉬운 선택도 피했다. 그 긴장감이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아리랑을 향해 손을 뻗다

첫 트랙 'Body to Body'는 랩과 본조 아리랑을 직접 붙여놓는다. 그러나 이 조합은 처음부터 겉돌 수밖에 없었다. 오토튠과 랩으로 이미 감정을 지워버린 자리에 아리랑이 등장하는 순간, 고양감이 아니라 이질감이 생긴다. 튀어야 할 자리에서 그냥 얹힌다.

가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총 칼 키보드 다 좀 치워" 뒤에 등장하는 "솟구치는 겨레의 마음"은 앞선 언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분노로 달군 자리에 체념은 내려앉지 않는다.

'Aliens'는 다르다. 낯선 땅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정체성을 소재로 삼으면서, 랩과 보컬이 같은 방향을 향한다. 낯선 땅에서 걷고 있는 자의 소리. 전반부에서 아리랑의 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트랙이다. 다만 그 연결이 가사에 너무 기댄다. 김구와 중모리와 같은 단어를 넣는다고 정체성이 되지는 않는다.

성덕대왕신종이 울리다

'No. 29'에서 앨범은 전환점을 만든다. 밀도 높던 사운드가 일순간 사라지고, 성덕대왕신종 소리가 1분 38초간 흐른다. 앞에서 쌓아온 에너지를 여기서 비워낸다. 그 자체가 이 트랙의 역할이다.

성덕대왕신종을 모르는 청자에게도 이 침묵은 유효하다. '왜 갑자기 멈추나'라는 의아함이, 다음 트랙 'SWIM'의 조용한 선율이 흘러오는 순간 비로소 이해된다. 비워진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선율이 남는다.

전반부가 아리랑을 직접 가져오거나 정체성을 선언하는 방식이었다면, 후반부는 다르다. 아리랑 샘플도 없고, 역사적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Merry Go Round', 'they don't know 'bout us' 같은 트랙들은 어둡고 가라앉은 채로 흐른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체념한 채로 걷는 정서. 그 분위기 자체가 아리랑을 닮았다.

'SWIM', 단 한 번 아리랑이 들렸다

타이틀곡 'SWIM'의 후렴구가 귀에 남는 이유는 선율의 구조 때문이다. 조금 내려앉았다가 한 음씩 천천히 되짚어 오르는 움직임이 고리처럼 맞물린다. 도약 없는 읊조림. 경기 아리랑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도 음과 음 사이를 계단 밟듯 촘촘하게 이어간다는 점에서, 두 선율의 움직임이 닮았다.

방향도 결론도 없이 그저 헤엄치고 있는 소리. 메아리처럼 묻고 답하는 호흡도 아리랑의 방식이다. 전반부의 트랙들이 비트와 랩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 단순하고 연약한 선율이 끝까지 남는다. 앨범을 다 듣고 나서 귀에 남는 건 결국 이 선율이다. 넘고 있는 자가 내는 소리. 이 앨범에서 아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닿은 트랙이다.

고개 앞에서

그러나 후반부도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마지막 트랙 'Into the Sun'은 사랑과 희망으로 앨범을 닫는다. 체념의 정서로 쌓아온 앨범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다. 아리랑은 고개를 넘는 중의 노래인데, 이 트랙은 이미 다 넘고 난 사람이 부르는 노래처럼 들린다.

이 앨범이 아리랑에 닿은 순간은 'SWIM' 하나였다. 전반부의 모든 시도는 아리랑을 끌어온 것이지 아리랑이 아니었다. 직접 가져올수록 오히려 멀어졌고,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들렸다.

그래도 일곱 명이 함께 만든 음악에서 아리랑이 단 한 번이라도 구현됐다는 건 기록할 만하다. 아리랑은 수백 년간 정의되지 않은 채 전해졌다. 이 앨범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오버톤에도 실립니다.글 | 이예진 음악 비평가 (대중음악웹진 오버톤 에디터, 월간 진지 발행인)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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