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임종 가능하지만 새벽시간 ‘외로운 죽음’ 맞이할 수도

이정헌 2026. 3. 27.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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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돌봄, 현장에 가다]
<1부> 돌봄의 정석
⑥ <下> 日 지역포괄케어의 고민은
일본 도쿄 다이토구 소재 류센 지역포괄지원센터의 데이케어 공간에서 치매 노인들이 자리에 앉아 활동하는 모습.


일본은 2007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1%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의료·돌봄 공백과 의료비 폭증에 대한 고민이 일찌감치 있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지역포괄케어시스템’에서 찾았고, 현재 ‘내가 살던 곳’에서 의료·돌봄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27일 한국에서 일제히 시행되는 통합돌봄 서비스의 기초가 된 제도다. 한국보다 20여년 앞서 통합돌봄 체계를 갖췄지만 이런 일본도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고(故) 모리 게이코(가명·당시 78세)씨는 지역포괄케어를 받다가 지난해 6월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그는 2021년 8월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지역포괄케어 대상이 됐고, 초기에는 주 1회 방문간호가 이뤄졌다. 하지만 과도한 피해망상을 보여 가족 관계는 이미 모두 단절된 상태였고, 자신을 돕던 요양보호사(헬퍼)도 쫓아내기 일쑤였다.

모리씨는 2024년 12월부터 유방암 말기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하지만 재택 임종을 결정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의 정신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이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호스피스 병동을 원했고, 조금 호전된 날에는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서의 임종을 희망했다. 한동안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케어매니저도 난감했다. 결국 모리씨는 재택 임종을 선택했다. 수년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돌봐온 케어매니저가 유일한 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홀로 죽을 결심’ 필요한 재택 임종

일본 도쿄 다이토구의 류센 지역포괄지원센터와 자택개호사업소 웰빙21은 한 달 전부터 임종을 준비했다. 모리씨에게는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1시간씩 방문요양이 제공됐다. 하루 두 차례 이상 방문 요양이 이뤄질 경우 서비스 사이에 2시간 간격을 둬야 방문요양 2회로 인정하는 규정 때문이다. 말기 암 환자에게 특례로 제공되는 주 7회 방문간호도 매일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이뤄졌다.
류센 지역포괄지원센터 앞에 서 있는 케어매니저 야마다 리에코씨와 센터장인 구사야나기씨.


그럼에도 사각지대는 있다. 의료·개호 서비스가 제때 제공되기 어려운 새벽시간이다. 케어매니저 야마다 리에코(웰빙21 소속)씨는 “재택 임종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의료·개호보험이 닿기 어려운 시간대에는 ‘혼자 죽어도 괜찮은가’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다”며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아침에 헬퍼가 왔을 때 이미 몸이 차가워진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택개호사업소 ‘웰빙21’의 케어매니저 가토 마미씨와 간호사 에가와 게이코씨.


결국 모리씨는 자비를 들여 새벽시간대(오후 9시~오전 9시) 별도의 가정부를 채용했다. 방문간호사 에가와 케이코씨가 다행히 모리씨가 숨지기 하루 전 임종을 예상했다고 한다. 케어매니저도 하루 전부터 비상 대기했고, 24시간 간호 체계를 가동해 주치의가 실시간으로 모리씨 상태를 전달받았다. 가정부 연락을 받고 달려온 에가와씨는 지난해 6월 21일 새벽 2시 편안하게 잠든 모습의 모리씨를 확인했다. 이후 주치의에게 사망 선고를 받고 장례를 치렀다.

일본에선 지역포괄지원센터가 통합돌봄의 입구 역할을 한다. 기초자치단체(시·정·촌)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민간·공공 혼합형 기관으로 지역사회 고령자들이 ‘개호보험’(한국의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판정을 받은 뒤에는 케어플랜을 수립하는 자택개호사업소와 연계해 준다.

지역포괄지원센터는 고령 노인의 노쇠를 예방하는 ‘요지원 사업’도 담당한다. ‘요지원 1~2등급’이라는 노쇠 전 단계를 따로 두고, 노인들이 간병이 필요한 ‘요개호’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근력 운동, 식사 지원, 건강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사야나기 류센 센터장은 “요지원 단계에선 누구나 개호 상태로 빠질지, 건강해질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걸 깨닫는다”며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 문제를 종합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센터는 지역 통합돌봄의 거점 역할도 한다. 다이토구의 한 요양시설에 머무는 70대 치매 환자 사토 요시코(가명·여)씨는 지역의 악성 민원인으로 유명했다. 평소 ‘방 안에 도둑이 숨어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며 불면증을 앓았고, 현지 경찰에 하루 20통 이상의 허위 신고를 했다. 경찰은 사토씨 가족에게 입원 치료를 권했고 그렇게 입원이 이뤄졌지만 담당 의사는 약물 치료를 거부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토씨를 맡고 있던 요양시설 측에서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치매는 완치가 어렵다’는 현대 의학의 한계 속에서 사토씨 가족도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에 구사야나기 센터장은 사토씨 사례를 ‘지역케어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지역케어회의는 사토씨처럼 개별 기관에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사례를 논의하기 위한 다직종 협력 회의다. 회의 후 사토씨에게는 케어매니저가 구상한 돌봄계획(케어플랜)을 기반으로 주 2~3회 생활 지원, 방문의료 등이 이뤄졌다. 시설에서는 사토씨의 기호를 고려한 식사 제공, 경찰의 실무자 면담 등이 더해졌다. 이후 사토씨가 강박처럼 벌이던 경찰 신고가 월 3회로 줄어들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케어매니저 야마다씨는 “나이가 들수록 몸은 노쇠하지만 삶의 가치관은 바뀌지 않는다”며 “사토씨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직종의 관계자들이 머리를 모아 고민하고,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역별 천차만별 서비스는 한계

류센 지역포괄지원센터 1층 로비를 돌아다니는 돌봄 로봇. 이 로봇들은 센터를 찾는 주민의 얼굴을 인식해 기억하는 역할을 한다.

지자체 공무원이 통합돌봄 신청자에 대한 돌봄 계획을 세우는 한국 통합돌봄과 달리 일본에서는 민간 사회복지 법인인 자택개호사업소 소속 케어매니저가 케어플랜을 짠다. 지역포괄지원센터가 담당 지역의 요지원 사업과 고령 실태를 파악하는 큰 틀의 역할을 맡는다면 자택개호사업소는 대상자와 개별적인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택개호사업소는 지역 고령자를 도맡은 민간 기관인 만큼 저마다의 특색을 갖춘 서비스를 지원한다. 예컨대 자택개호사업소 ‘웰빙21’의 경우 대상자에 대한 ‘내러티브 접근’을 강조한다. 웰빙21이 운영하는 대상자 평가 보고서를 보면 헬퍼는 대상자가 자주 말하는 ‘에피소드’와 ‘말버릇’ 등에서 고유한 가치관을 포착한다. 이를 토대로 대상자의 필요도·욕구를 구체화하고, 그것이 현재 실행되지 않는 개인적·환경적 요인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한다. 이후 케어매니저가 헬퍼와 함께 의료·돌봄 연계 방안을 구상하고 지원 방안을 결정한다.

지역 특색에 따른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기관별 서비스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민간 사업자의 이윤 추구 동기와 자택 개호에 요구되는 공공성이 충돌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민간 사업자가 서비스 지역을 확장하면서 당초 지역포괄케어가 요구한 ‘지역성’을 잃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한국의 지자체 격인 시·정·촌이 법인의 자격 갱신과 연수 등을 통해 기관들을 정기적으로 관리 감독한다. 후생노동성령(한국의 시행규칙 개념)에는 ‘공정중립’을 명시해 기관들이 과도한 이익 추구를 좇아 특정 종류의 의료·개호 서비스에 이용이 편중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요구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고령 단독가구가 늘면서 이들이 집을 구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도 일본의 고민거리다. 임대인이 갖는 재택 임종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의 지역포괄케어는 요개호 3등급 이상의 중증 노인을 대상으로 한 요양시설, 이른바 ‘특별요양노인홈’을 마련했다. 지역포괄케어를 통한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추구하지만 일부 노인의 시설 입소는 불가피한 셈이다. 대신 소규모 그룹·1인 중심의 돌봄이 가능하도록 시설 규정을 강화하는 유니트케어(Unit Care)를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류센 지역포괄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구립 특별요양노인홈에서도 중증 노인을 대상으로 176개 병상을 운영한다. 이 중 75%(132개)가 1인실이고 25%(44개)가 다인실이다. 돌봄이 24시간 제공되므로 수요가 많은 편이지만 지난해 12월 기준 이용률이 98%에 달할 만큼 수용 여력은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다. 가족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시설을 운영하는 민간 기관에서도 의료·생활 지원이 이뤄지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도쿄=글·사진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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