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계층 간 격차 좌우… 지금이 ‘한국형 AI 모델’ 만들 전환점”

인공지능(AI)이 어떤 일자리를 대체할지,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에 대한 예측은 제각각이다. 국민일보는 ‘2036년 당신의 직업은 안전합니까?’ 시리즈를 통해 AI를 바라보는 시각이 10년 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을 확인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상황에서 10년 뒤 AI가 어떤 일자리를 대체할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분야별 전문가 6인이 모여 좌담회를 가졌다. 김지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유재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 교수(알리고AI 대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교수가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고용 측면에서 AI가 가져올 변화가 명확한 만큼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AI로 인한 일자리 변화가 계층 간 격차를 더 키우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 AI를 활용해 계층 간 격차를 줄이도록 교육과 정책을 설계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이 하는 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한국형 모델을 설계해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제언이 잇따랐다.
-국민일보 설문조사 결과 AI가 어떤 직업을 대체할 것인지를 두고 10년 전과 지금의 인식이 정반대로 나타났다. 앞으로는 이런 인식이 또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이재열=한국은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기 때문에 외부 압력이 생기면 취업의 길이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젊은 노동력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히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김지희=직업이 갖고 있는 여러 직무가 있기 때문에 일부 직무가 대체될 수는 있더라도 직업 전체가 사라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미국의 경우 최근 오히려 통번역 수요가 증가했다. 간단한 통번역은 AI가 하더라도 고급 수준의 통번역은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는 수요가 더 생긴 거다. 일부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전호일=끝까지 남을 노동은 감정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AI가 상담을 하고 난 뒤 항의 전화를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상대방이 상담원에게 ‘당신이 사람입니까.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 필요한 일은 끝까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AI 판사, AI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분출하고 있다.

△유재연=문제가 생기면 공론화 작업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중요한데, 그걸 그냥 ‘AI가 해줄 것이다’ ‘AI가 낫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치부하는 생각은 비판받아야 한다. 판결을 예로 들면 여성 참정권, 아동 노동에 대한 역사적 판결로 세상이 진보해 왔는데, AI에게 판결을 맡기면 이런 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최병호=사람들은 ‘AI가 편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AI는 편향적으로 설계한다. AI에 공정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도 사람이 AI에 가이드라인을 줘야 가능하다. AI가 공정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전호일=존속살인 같은 잔혹한 범죄를 볼 때 구형보다 실제 판결이 세게 나오면 속이 시원할 때가 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AI 판사가 필요하다고들 이야기를 하는데, 감정 부분까지 AI가 정교하게 설계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된다.
-지난달 고용동향을 보면 20대 청년의 고용률이 크게 감소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이 실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까.
△이재열=한국은 기술적 압력이 생기게 되면 아직 그 제도화된 틀 안에 못 들어간 사람들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AI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훈련받아서 재취업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하향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미국보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기 때문에 파괴적인 효과가 그만큼 크진 않지만 청년층으로 집중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지희=경력직들은 AI를 잘 활용할 수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이 AI와 만날 때 시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주니어가 시니어가 돼야 이런 발전이 가능한데, 기업들은 대부분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과정을 내재화하지 못한 채 채용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최병호=최근 빅테크의 AI 솔루션 업데이트 주기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 자기 개선이라는 알고리즘 때문에 그런 건데, 앞으로는 더 짧아질 거다. 그들도 코딩을 사람이 하지 않기 때문인데, 사람한테 쓸 돈을 (기술을 가동하는) 에너지에 쓰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청년 채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
-AI에 일자리를 뺏기고 있는 청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이장혁=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신입을 안 뽑는 회사가 신입을 뽑고, 시니어 직원의 근로시간을 줄이면 세제 혜택을 주는 거다. 현재의 고용 규모를 유지하면서 신규 채용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재교육을 굳이 하지 않아도 간단한 구조 변화로 새로 생기는 기술로 인한 노동시장에서의 충격을 많이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재연=사람을 키워놨더니 나간다는 경험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너무 오랫동안 쌓여 있다. 이탈 리스크가 크니까 ‘뽑아놔도 나가는 사람들을 굳이 뽑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기술이 키워주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적으로 푸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신입이 들어와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트렌드를 공유하면서 혁신이 생겨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발굴해내는 건 결국엔 젊은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실제 고용과 결합하는 지점들이 필요하다.
△이재열=지금은 승자독식의 이중구조, 패자부활전이 없는 마이너리그가 청년세대를 설명한다. AI가 이 격차를 더 키울 것이냐, 아니면 줄일 것인가 하는 결정적 전환점에 와 있다고 본다. 한국형 AI 시대 발전 모델에 대한 정확한 그림이 필요하다. AI 기본법만 세계 최초로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AI 시대에서의 교육과 정책은 어떻게 설계돼야 할까.
△김지희=단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 AI를 활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은 사람의 두뇌를 훈련하는 과정인데,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그렇게 해오지 못했다. 어떤 현상을 보고 이론화하는 사고 과정을 키우는 방식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장혁=오랫동안 누적된 기초학문 쪽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에서 답이 없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재열=AI는 다 비슷한 대답을 한다. 학습한 데이터 중에서 가장 정렬이 잘돼 있는 중앙값을 답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AI에 의존할 경우 사람은 지적인 게으름과 학문적인 획일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창조력이나 지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힘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유재연=사람끼리 부딪혀서 서로의 관계 안에서 풀어가야 하는 여러 가지 이슈를 푸는 장으로서 대학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AI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학교나 산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병호=‘덕후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 특정 분야에 깊이 있는 도메인(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요즘 문제가 되는 AI의 오류를 걸러낼 수 있다. 덕후형 인재 양성과 함께 AI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학습도구로 활용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전호일=정부가 AI산업을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 AI의 엄청난 성능은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 놓은 데이터 축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로봇세, AI세가 거론되는 것처럼 AI가 발전한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산업이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정부가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테크이슈팀=심희정 양한주 김혜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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