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테러 검토’ 뭉갰던 국정원…‘김상민 보고서’는 알리바이 용도였나

구자창 2026. 3.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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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 전 검사가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가덕도 테러사건 수사 TF’가 2024년 1월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이 벌어진 이후 지난해 2월까지 1년여간 국가정보원 차원의 테러 지정 관련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살피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2월 국무총리실 산하 대테러센터로부터 ‘테러 여부를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야 내부 검토에 들어갔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인 5월 중순쯤 ‘테러가 아니다’는 결론을 회신했다. 대테러센터는 이를 근거로 ‘테러 미지정’ 결정을 내렸다.

경찰은 윤석열정부 때 임명된 당시 국정원 수뇌부가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으로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위기감을 느꼈고, 향후 불거질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차원에서 김상민 전 검사(당시 국정원 법률특별보좌관)에게 ‘가덕도 피습 사건은 테러가 아니다’는 취지의 법률검토 보고서를 작성케 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다만 김 전 검사 측은 “국정원 윗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결론을 정해놓고 보고서를 쓰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2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지난 3~4일 김 전 검사를 불러 국정원의 법률검토 의뢰 배경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김 전 검사는 국정원 대테러부서 관계자가 지난해 3월 말 또는 4월 초 자신을 찾아와 법률검토를 맡겼고, 이 과정에서 “이 사건은 테러가 아닌 것 같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다”는 발언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를 국정원 윗선이 김 전 검사에게 ‘테러 미해당’ 결론을 유도한 정황으로 보고 있다. 다만 김 전 검사는 “객관적으로 작성한 보고서이며 지금 써도 똑같이 썼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피습 사건 가해자의 확정 판결문과 테러방지법 법리 분석 등을 통해 독자적으로 작성했고, 범행도구인 ‘등산용 칼’을 ‘커터칼’로 표기한 건 단순 착오라고 주장했다.

서울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경찰은 법률검토 보고서 내용을 문제 삼은 국정원 내부감사 자료 등을 제시하며 김 전 검사를 압박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 대통령이 당선한 지난해 6·3 조기대선 직후인 6월말부터 11월말까지 ‘과거정부 국내현안 개입의혹’ 특별감사를 실시했는데, 이에 따라 작성된 자료에는 김 전 검사 보고서에 대해 ‘피습 사건을 폄훼·격하했다’거나 ‘사건 왜곡’이라는 등의 비판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특히 자료에서 테러 지정 관련 초동 조치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테러 혐의점 판단을 못 하거나 추가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은 경찰 등 다른 기관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책임을 미룬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검사는 “국정원이 스스로 잘못해놓고 외부인에게 떠넘기기 위한, 자기들이 살기 위한 목적의 자료”라고 반발했다.

경찰은 지난해 5월 국정원 대테러국이 국무총리실 대테러센터에 ‘테러가 아니므로 대테러합동조사팀 재가동이 불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통보한 경위도 파고들었다. 테러방지법 등에 따르면 테러 여부 판단을 위해선 먼저 대테러합동조사팀을 꾸려 조사해야 하고, 이를 편성·운영할 권한은 국정원장에게 있다.

의문이 생기는 지점은 국정원이 김 전 검사에게 법률검토를 의뢰했을 당시에는 ‘테러가 아닌 것 같다’는 내부 결론을 갖고 있다가 지난 대선 이후 특별감사 결과에서는 기류가 달라진 이유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국정원이 ‘테러가 아니므로 대테러합동조사팀 가동 불요’라는 취지의 입장을 회신해 대테러센터가 테러 미지정 결정을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 일종의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에 대한 문제점을 부각시킨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김 전 검사는 “그게 정확한 진실”이라고 답했다.

2024년 1월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공격한 피의자 김모씨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바른소리 TV 유튜브 캡처.


경찰은 당시 국정원 결론의 논리적 모순도 지적했다. 테러방지법상 대테러합동조사팀이 먼저 사건을 조사한 뒤 테러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게 통상적 수순인데, 국정원은 이를 뒤집어 ‘테러가 아니니 대테러합동조사팀 가동이 불필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같은 점을 거론하며 “국정원 대테러국장이나 그 윗선에서 피습사건을 테러로 미지정하겠다는 결론을 미리 염두에 두고, 구색을 맞추기 위한 법률검토 등만 수행하고 대테러합동조사팀은 재가동되지 않도록 할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물었다. 국정원이 김 전 검사에게 법률검토를 의뢰한 배경이 결국 면피 목적이 아니었느냐는 취지다.

그러자 김 전 검사는 “국정원이 (피습 사건 가해자의) 1·2심 판결이 나왔을 때도 아무것도 안 해오다가 지난해 2월 갑자기 국무총리실에서 테러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라며 “국정원 입장에서는 테러가 아니라고 무조건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러라고 말하는 순간 자기 부정이 돼버린다”며 “저는 (테러방지법) 입법과정까지 다 보면서 테러가 아니라고 했을 뿐인데 국정원은 제 회신을 받고 나서 좋다고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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