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이근안 사망…악명만 남은 88년 인생

박지훈 2026. 3. 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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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전직 경찰 이근안(88)이 25일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11년 가까이 행방이 묘연했던 이근안이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99년이었다.

실제로 이씨가 2012년 펴낸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에는 고문 사실을 시대 탓으로 돌리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논란이 됐었다.

이근안은 2023년 부인을 잃고 서울에서 홀로 지내왔으며 최근 건강이 나빠져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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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이근안이 1999년 10월 28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서울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국민일보DB


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전직 경찰 이근안(88)이 25일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1938년 인천에서 태어난 이근안은 70년 순경으로 입직해 72년 8월부터 대공 업무를 맡았다. 특진과 승진을 거듭했고 간첩 검거의 공로를 인정 받아 표창도 16차례나 받았다. 86년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근안이 없으면 공안 수사가 안 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가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고문을 앞세운 강압 수사 때문이었다. ‘관절 뽑기’ ‘전기 고문’ ‘물 고문’…. 체구 때문에 ‘반달곰’이라고도 불렸던 그는 고문을 통해 ‘실적’을 쌓았다. 다른 지역으로 ‘고문 출장’을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85년 9월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에서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 등이 훗날 문제가 되자 잠적했고, 이후 오랜 세월 도망자로 살아야 했다. 한때는 그가 해외로 도피했다거나 사망했다는 식의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다.

11년 가까이 행방이 묘연했던 이근안이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99년이었다. 당시 그는 자수를 하면서 “재판을 받은 동료들의 형량이 비교적 가벼운 것을 보고 마음이 안정되고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은 뒤 2006년 11월 만기 출소한 이근안은 간증 등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뜻을 밝히곤 했지만 이런 사과에 진정성이 있는지를 두고 사람들은 의문을 표시하곤 했다. 실제로 이씨가 2012년 펴낸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에는 고문 사실을 시대 탓으로 돌리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논란이 됐었다.

“정치 색깔에 따라서 애국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산당 잡는 일은 영원한 애국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경찰 조직을 사랑한다. 나의 지난날 애국행위가 조직에 누가 된 것을 마음 아파 하고 있다.”

이근안은 2023년 부인을 잃고 서울에서 홀로 지내왔으며 최근 건강이 나빠져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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