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강제로 동료 집 문 연 삼성전자 직원들 '불송치'... 유족 "강제 개문 판단 근거 밝혀야"
[유지영 기자]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1월 2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신입 연구원 고 김치엽씨 자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영구씨가 아들 김치엽씨의 명복을 비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유지영
삼성전자 연구원 고 김치엽씨의 오피스텔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사망 사실을 최초로 확인한 삼성전자 직원들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유족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반발하며 이의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26일은 김씨가 사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경찰, 강제 개문 인정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삼성전자 직원 4명에 대해 지난 2월 25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화성동탄경찰서 수사 결과 통지서에 따르면, 경찰은 이들이 동료 김씨의 주거지에 당사자와 가족의 동의 없이 경비실 마스터키를 이용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간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경찰은 대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직원들이 '특이 근태 알람'(무단 미출근 시 발송되는 사내 알림)을 수신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 동료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보이며, 불법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경찰은 ▲방문 전 고인의 아버지에게 방문 의사를 알린 점 ▲주거지 복도 CCTV에서 강제 개문 전 초인종을 반복해 누르는 장면이 확인된 점 ▲사망을 발견한 뒤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112 신고를 한 점 등을 종합해 주거 침입에 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강제 개문한 직원에게는 '혐의 없음'을 나머지 직원에게는 '각하'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2024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화성 사업장에 입사해 부품 기술 3파트에서 근무하던 신입 연구원이었다. 그는 생전 자신의 X 계정에 "잘 해보려 하는데 하나씩 일그러지고 있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2025년 1월 22일), "입사 1년도 안돼서 정신건강휴직을 할 판이군"(2025년 2월 24일)이라며 고통을 호소해 온 데 이어 사내 프로젝트 발표를 마친 다음 날(2025년 3월 20일)에도 X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로부터 엿새 뒤 김씨는 홀로 거주하던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삼성전자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 삼성전자 신입연구원이던 1995년생 고 김치엽씨가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남긴 생전 마지막 말들. 업무로 인한 고충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 X계정 캡처
유족 측 "삼성전자는 강제 개문 판단 근거 밝혀야"
그간 김씨의 사건을 지원해 온 이성민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희연)는 26일 <오마이뉴스>에 "삼성전자가 고인의 위태로운 상태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노무사는 "고인의 아버지가 오후에 오피스텔로 직접 가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직원들이 동의 없이 문을 열고 그의 마지막 모습을 발견했다. 당시 회사가 긴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면 어떤 근거로 이 같은 판단을 내렸는지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노무사는 "회사는 고인이 병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만, 고인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회사 제출용 진단서를 발급받기도 하고 면담 과정에서 마음건강휴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라면서 "사망 전날 검색어 중 하나 역시 '우울증 연차'였다"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가 유족에게 보내온 답변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직원들은 김씨의 사망 이전에도 자택을 세 차례나 방문한 사실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답변서에서 '119·경찰 등 공적 기관을 먼저 활용하지 않은 사유'에 대해 "수차례 노크하고 초인종을 눌렀으나 응답하지 않았고 기존에도 부서 동료들이 고인 자택에 걱정되는 마음에 방문하여 초인종을 눌러 안부를 확인한 이력이 세 차례 있었기에 걱정하던 중 관리사무소 직원 분이 마스터키로 개문을 시도했다"라고 밝혔다.
김씨의 아버지 김영구씨는 이 답변서에 대해 "한 번의 주거 침입이 아닌 연쇄적으로 이 같은 행동이 있었던 것이다. '인권 경영'을 이야기하는 회사에서 처벌받지만 않으면 이런 행위도 정당하다고 보는 건가 싶어 분노가 들었다"라고 지적했다. 또, 김씨는 경찰에 고인의 휴대전화 포렌식(잠금 해제)을 요청하자 경찰이 '사건화되지 않으면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해 주거침입죄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경찰이 그 후로도 고인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올림 "고인과의 대화 내역, 휴대전화 포렌식 수사 필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또한 이번 사건을 "삼성의 인사 관리 압박"으로 규정하면서 "삼성 인사과 직원들이 강제 개문을 할 정도로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면 그 전에 고인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포렌식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는데 포렌식도 수사로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
반올림은 "이는 삼성의 눈치보기인가, 아니면 죽음에 무감한 경찰의 무능인가. 부실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수사를 촉구한다"라면서 오는 4월 고인에 대한 산재 신청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의 성과 압박, 인력 부족 속에 무리한 프로젝트 진행 등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수면장애로 자살에 이른 것이라 생각하고, 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유족 또한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유족은 "사실관계는 인정이 됐고, 위법성에 대해 '긴급성'을 이유로 부정한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올림은 김씨의 사망 1주기를 맞아 경기 지역 노동·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앞에서 이날 오후 5시부터 고 김치엽 1주기 추모 문화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씨가 재학했던 고려대학교 내에도 지난 24일부터 학생들을 중심으로 추모 분향소가 설치됐다.
삼성전자는 26일 오후 김씨의 1주기를 맞아 공식적인 사과 등 입장을 묻는 <오마이뉴스>의 질의에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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