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대화, 공격적으로 느껴지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이순영 2026. 3. 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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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정신 건강 위해 지역 사회와 스탠포드 의대가 손잡고 나섰다

[이순영 기자]

▲ 스탠포드 의대 CHIPAO 스탠포드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진이 아시아계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
ⓒ 스탠포드 CHIPAO
지난 3월 14일(현지 시간) 스탠포드 의과대학(Stanford Medicine)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진이 만든 CHIPAO(Communication Health Interactive for Parents of Adolescents and Others)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부모를 대상으로 자녀와의 대화법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스탠포드 CHIPAO는 아시안 청소년이 가정 안에서 겪는 세대와 문화 차이로 인한 부모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활동해 왔다. 이번 워크숍은 한국인 대상으로는 최초로 진행되는 행사여서 한인 공동체에도 의미가 깊었다.
▲ 스탠포드 의대 CHIPAO 연극 상연 스탠포드 CHIPAO 연구팀이 아시아계 부모를 대상으로 연극을 상연하고 있다.
ⓒ CHIPAO
스탠포드 CHIPAO 창립자이자 스탠포드 의대 부학장인 로나 후(Dr. Rona Hu)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부모와 청소년 자녀 간의 건강한 대화 방법을 심도 있게 연구해 왔다. 그 결실로 탄생한 스탠포드 CHIPAO는 자녀와의 소통을 위해 고안된 혁신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단체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해 동안 미국 팔로알토 지역에서 한 해 무려 4명의 아시안계 10대 청소년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스탠포드 의대 소아 청소년 정신과 교수진은 스탠포드 지역 사회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에 대해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 CHIPAO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탠포드 CHIPAO 한인 부모 대상 '자녀와의 대화법 워크숍'의 기획, 추진, 홍보를 맡은 박채율, 박채린 학생
ⓒ 이순영
이 행사가 성사된 것은 미시간에 거주 중인 한인 청소년 박채율(스토니 고교, 10학년)에 의해서였다. 그는 스탠포드 CHIPAO의 프로그램을 한인 가정에도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CHIPAO팀에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작년 여름부터 6개월이 넘는 기간 행사를 기획 추진해 온 그는 "스탠포드 CHIPAO 박사님들과 온라인 화상 회의를 하며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워크숍의 내용은 물론 홍보와 참여자 모집 등 세부적인 내용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행사가 구체화되는 과정 속에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공동체의 협업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여기에 기여하는 방식들을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워크숍은 한인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만큼 스탠포드 의대 출신 한인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는 물론 한인 의대생 그리고 스탠포드 의대 출신은 아니지만 각 지역 한인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와 한인 의대생들이 참여해 한국어 진행을 도왔다. 뿐만 아니라 각자 배역을 맡아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CHIPAO에서 공연한 연극은 총 3편으로 학부모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부모 – 자녀 간의 올바른 소통을 위해서는 청소년 자녀보다 부모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직접적인 예방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극의 모든 대사는 실제 삶을 반영하여 부모와 청소년 자녀 사이에 겪을 법한 현실적인 내용을 담았다.
▲ 온라인 연극 상연 중인 스탠포드 CHIPAO(#1 수학시험 성적) 수학 시험 성적을 두고 갈등하는 엄마와 자녀에게 올바른 대화법을 제시하는 AI 의료진을 연기하는 CHIPAO팀
ⓒ 이순영
연극은 딱딱한 강의 형식을 벗어나 실제 상황을 재구성하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CHIPAO는 단막극 3편(#1 수학시험 성적, #2 뭐가 문제니?, # 프롬? 노 프로블름)을 통해 부모들에게 바람직한 대화 방법을 전수했다. 이들은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상황을 먼저 보여줬다. 줌미팅으로 진행되는 행사인 만큼 연극을 하는 배우들도 줌미팅을 통해 대화하는 설정이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가 감정적으로 치달아 단절이 되는 것으로 끝났을 때 AI로 설정한 의료인(조안 리 박사)이 투입됐다. 부모에게 바람직한 대화법을 제안하고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 부모가 배운 것을 대화에 반영해 상황을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AI 의료인이 나타나 부모의 대화에서 어떤 점이 좋았는지 짚어 주고 마무리됐다.
CHIPAO가 연극을 통해 보여준 자녀와의 대화법은 다음과 같다.
CHIPAO가 제시하는 자녀와의 대화법
1. 갈등의 상황을 멈추고 자녀의 의견을 인정해 주며 감정적이었던 부분에 대해서 사과한다

2.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고 마음을 열어 비난 대신 포용하는 태도로 다가간다.

3. 화를 내는 것은 대화법에 있어 더 쉬운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대화가 공격적으로 느껴지면 아무것도 안 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가간다.

4. 자녀의 성공을 위해 챙겨주는 것을 아이들은 통제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자녀를 너무 아이 취급하고 사건의 본질보다 더 과장되게 반응해 버리면 자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침착한 태도로 대화의 질을 완벽히 바꿔 인생 선배로서 지나 온 경험을 이야기 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5. 감정이 폭발할 것 같으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럴 땐 "엄마가 지금 너무 화가 나서 잠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라고 직접적으로 말해도 괜찮다. 아이들도 이런 모습을 보고 감정에 사로잡힐 때 잠시 쉬어가면서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후에 대화를 이어나가면 이전보다 나은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6. 자녀가 자신의 상황을 부모와 공유하지 않는 것에 서운하거나 실망할 수 있다. 이 때 서로 비난하기보다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 놓고 서로 안식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 스탠포드 CHIPAO 연극 상연(#3 프롬? 노 프로블름!) 아들이 외국인 여자친구와 줌미팅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끼어 들어 공부 얘기를 하는 아빠를 연기하는 팀원들
ⓒ 이순영
3편의 연극 상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의료진들은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모들의 개인적인 고민들을 실시간으로 해결해 주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청소년 자녀가 속을 썩일 때 욱하게 되는데 어떻게 감정을 다스려 화내지 않는 대화법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심호흡을 하고 당장 이 대화의 핵심 내용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아이가 폭발할 정도로 힘들 것 같으면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여유와 틈을 주는 것이 좋다. 잠시 떨어져 있다가 차분해지면 다시 나와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만약 대화에서 실수했던 부분이 있으면 "내가 몰랐다"라고 실수를 인정하자. 나도 정신과 의사지만 아이한테 욱해서 소리 지를 때가 있다. 이럴 땐 자기 전에 아이한테 꼭 사과한다.

- 아이가 의대를 준비하고 있고 정말 열심히 사는데 너무 힘들어 보인다. 엄마로서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게 좋을까? 아니면 좀 더 쉬운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나?
부모는 사실 권유와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권은 아이한테 달려 있다. 아이의 진로에 대해 장점과 단점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옆에서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아들과 사춘기나 성에 관한 대화나 조언을 조금 깊이 있게 하고 싶은데, 아이가 부끄러워하거나 깊이 있는 대화를 안 하려고 한다. 좋은 방법은?
엄마랑 얘기하기 힘든 주제라는 판단이 들면 아빠가 대신 대화를 하는 것이 때론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아이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려고 강요하다 보면 오히려 아이가 입을 더 닫을 수 있다. 모든 어려운 주제의 이야기들이 다 그렇다. 그것이 성에 관한 것이든, 학교, 사춘기 등 그저 "엄마는 항상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라는 메시지를 평소에 전달하는 것이 더 낫다. 아이가 나중에 얘기하고 싶을 때 엄마나 아빠에게 와서 물어볼 수 있게 길을 터놓는 것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 워킹맘으로 14세 딸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척 무거울 때가 있다. 워킹맘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서 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만큼 아이에게 집중하고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전달하면 된다. 또 아이의 꿈과 삶이 중요한 만큼 엄마의 꿈과 삶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 아이가 대화하려 하지 않거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때 부모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사춘기 아이들은 직접적인 질문을 대화로 연결하는 게 힘들다.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아이가 좋아하는 스포츠, 연예, 책, 음악, 이런 화제들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이 좋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아이와 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활동을 정기적으로 함께할 것을 권장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거나 게임을 같이 하는 것 등이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대화는 좋은 관계가 형성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내가 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대신, '~가 궁금하네'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궁금하네"와 같은 식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대신, 부모가 자신의 내면 세계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상담 치료 때 청소년이 얘기하기 싫어할 때, 아이의 마음이 열리도록 기다려준다. 한 아이와는 4-5주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런 행위도 의미가 있다. 그들의 흥미에 관심을 보이고 지속적인 관계의 연결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대화가 지속되지 않더라도 아이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된다.

- 줌(Zoom)을 통해 수강할 수 있는 육아 교실이나 의사소통 수업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오늘 진행한 스탠포드 CHIPAO 프로그램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저희가 한인 동포분들을 대상으로 시도한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다. 만약 향후에 충분한 관심이 모인다면, 우리가 일정이 허락하는 대로 추가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확인할 것이다.

- 최근 이혼했는데, 사춘기 자녀들에게 이 별거 사실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혼의 사유가 절대로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인식시켜 주고 엄마·아빠의 행복을 위해 이혼은 했지만 엄마·아빠 둘 다 여전히 아이를 사랑한다는 걸 알려 주는 것이 좋다.

- 한인 2세대들이 부모 세대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가령 비현실적인 기준을 고수한다거나, 분명 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모습들과 같은 것들이 대를 이어 가고 있는 것들을 상담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하다.
관계 템플릿은 매우 강력하여 다른 서사가 주입되지 않는 한 세대를 거쳐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통해 색다르고 더 따뜻한 관계 템플릿을 경험하게 된다면, 이러한 양상은 변화할 수 있다. 오늘과 같은 행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내담자에게 통찰이 부족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대립을 시도하기보다는 '가족 내에서의 더 나은 적응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즉, "가족을 바라보는 저만의 또 다른 이야기(내러티브)가 하나 있다. 혹시 한 번 시도해 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없다면 부모 세대의 실수들이 답습될 수 있다.
▲ 스탠포드 CHIPAO 자녀와의 대화법 워크숍 연극과 학부모 질의응답을 맡아 진행한 CHIAO팀
ⓒ 이순영
워크숍이 끝나고 익명의 한 참가자는 "이것은 정말 훌륭하고 좋은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제 대인 관계 속에서 이러한 유형의 변화를 적용할 만한 통찰력을 갖춘 한국인 부모님들(특히 1세대)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인들은 천성적으로 꽤 고집이 센 편이라, 조금이라도 비판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오히려 자신의 태도를 더욱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행사를 총괄 진행한 후 교수는 "이렇게 와주셔서 저희 모두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녀분들과 그들의 정신 건강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배우는 과정에 저희가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녀와의 일생 생활 속에서 갈등이 생기는 문제점과 문화와 세대 차이를 인식하게 해주는 계기를 제공하고 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 참여한 부모들로부터 좋은 반응과 호응을 얻었다. CHIPAO팀 또한 한인 부모들 사이에서 자녀와의 대화법 워크숍의 관심이 더 높아지면 추후 행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와 같은 행사는 청소년 정신 건강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업으로 이어지는 뜻깊은 활동이다. 가정 안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해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하지 않고 이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끌어들여 지역 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들은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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