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터보퀀트' 쇼크에 반도체株 급락…'제번스의 역설' 논란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구글이 발표한 인공지능(AI) 메모리 압축 기술인 '터보퀀트(TurboQuant)'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메모리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는 소식에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종목들이 급락세를 보였고 이는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AI 대중화를 앞당겨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수요를 폭증시킬 것이라는 반론도 내놓고 있다.

◇ '6배 압축'의 마법…반도체 하드웨어의 위기인가
2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마이크론테크놀러지(MU)와 웨스턴디지털(WDC) 등 메모리 반도체 관련주들은 장중 5% 이상 급락하며 시장의 우려를 반영했다. 마이크론은 정규장에서 3.4%, 웨스턴디지털은 1.6% 하락 마감했다.
이는 그대로 국내 메모리 업체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36분 현재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주가가 각각 3%, 4% 이상 하락하고 있다.
발단은 구글 리서치가 공개한 새로운 압축 알고리즘 '터보퀀트'였다.
터보퀀트는 거대언어모델(LLM) 추론 시 병목 현상의 주범으로 꼽히는 'KV(key-value) 캐시(단기 기억 저장소)' 메모리 사용량을 정확도 손실 없이 6배 이상 줄여주는 기술이다.
엔비디아 H100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준 처리 속도를 최대 8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발표에 시장은 즉각 '수요 감소' 시그널로 반응했다.
그간 AI 서버 한 대당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양적 팽창에 베팅해온 투자자들에게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된 것이다.
웰스파고의 애널리스트들은 "컨텍스트 윈도우(Context window: AI가 기억할 수 있는 최대 텍스트 범위)가 점점 커지면서 KV 캐시의 데이터 저장소가 더 많이 폭발해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해지고 있다"라며 "터보퀀트는 여기서 비용 곡선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든 메모리에 필요한 사양을 낮추면 얼마나 많은 메모리 용량이 필요한지 빠르게 의문이 생긴다"며 이 기술이 메모리 용량 요구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클라우드플레어의 매튜 프린스 최고경영자(CEO)는 구글의 터보퀀트 발표를 두고 "구글의 딥시크 모먼트(Google's DeepSeek moment)"라고 말했다. 딥시크는 경쟁사 대비 훨씬 적은 비용과 사양이 낮은 하드웨어로도 강력한 성능을 내는 모델을 개발해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다.

◇ 모건스탠리 "제번스의 역설 주목…오히려 매수 기회"
메모리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반론도 만만찮다. 모건스탠리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시장의 패닉 셀링을 "과도한 우려"라고 지적하며, 오히려 이를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모건스탠리는 현 상황을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에 빗댔다. 어떤 자원의 이용 효율이 높아지면 비용이 하락하게 되고, 이는 결국 해당 자원의 전체 소비량을 폭발적으로 늘린다는 논리다.
모건스탠리는 "터보퀀트로 인해 AI 운영 비용이 6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지면, 비용 부담으로 도입을 망설이던 수많은 기업이 AI 생태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전체적인 메모리 총 수요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AI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이번 기술이 추론(Inference) 단계의 효율화에 집중되어 있어, 모델 학습에 필요한 HBM의 원천적 수요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KB증권의 김일혁 연구원도 기술 발전으로 자원이 효율성이 높아져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증가하는 '제번스의 역설'로 현 상황을 설명했다. 오히려 기술 발달로 AI가 한 번에 기억해야 하는 정보량인 컨텍스트 윈도우가 무한 확장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김 연구원은 "동일한 추론을 하는 데 KV 캐시 메모리가 덜 필요해진 만큼 가장 먼저 있는 AI 모델의 변화는 컨텍스트 윈도우의 확대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과거 딥시크 R1이 20분의1 비용으로 LLM을 학습시켰다는 주장에 시장이 공포에 빠졌으나 이는 잠시였을 뿐 결국 AI 시장의 확장세는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 '온디바이스 AI' 가속화…삼성·SK에 미칠 파장은
전문가들은 터보퀀트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로 'AI에이전트의 가속화'와 '온디바이스 AI'의 대중화를 꼽고 있다.
김일혁 연구원은 "추론단가가 하락하면서, 오픈클로(Openclaw) 같은 킬러앱이 나온 AI 에이전트 시장의 성장세는 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컨텍스트 윈도우가 커지면, 여러 에이전트를 동시에 실행할 때 발생하는 메모리 제약도 완화되기 때문에, AI 에이전트 시장 확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메모리 요구 사양이 낮아짐에 따라 클라우드 연결 없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자체에서 구동되는 온디바이스 AI의 확장도 예상된다.
이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도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AI 모델을 구동하기 위해 LLM 가중치 정보를 올려놓기 위한 메모리는 여전히 많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러나 AI 모델을 올릴 정도의 메모리가 있으면, 로컬 환경에서 AI 모델을 활용할 때 연산 자원이 덜 필요해지면서 온디바이스AI 시장이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엣지 디바이스'의 메모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터보퀀트 쇼크는 AI 산업이 '인프라 구축' 단계를 넘어 '비용 효율화'를 통한 대중화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기술의 진화가 하드웨어의 종말이 아닌, 더 거대한 수요의 시작점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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