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대사 "한국은 비적대국…선박 통과는 사전 협력 필요"

한지혜 2026. 3. 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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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26일 “한국은 비적대국”이라고 규정하며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위해선 이란과의 사전 협력과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이란이 24일(현지시간) 국제해사기구(IMO)에 ‘비적대국 선박에 한해 통과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한 이후 한국이 비적대국에 포함된다는 점을 처음 확인한 발언이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쿠제치 대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용산 이란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은 비적대국 국가에 포함된다”며 양국 간 우호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미국이 제안하는 합의에 들어가지 않은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다른 국가들도 그 합의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고 이런 정책이 유지되길 바란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 한국 선박에는 안전과 관련해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해협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이란 정부와 협력이 있어야 하고 사전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한·이란 외교장관 통화에서 이란 측이 한국 선박들의 자세한 정보를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세예드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23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첫 통화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과와 관련한 이 같은 입장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발언은 이란의 해협 통제 방침을 구체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은 24일 IMO에 보낸 서한에서 비적대국 선박만 통과를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침략 세력과 연계된 선박의 통행은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에서 열린 미국ㆍ이란 전쟁 관련 사진전 및 다큐 상영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협 통과를 위해서는 이란 군과의 사전 조율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쿠제치 대사는 “해협은 봉쇄된 것이 아니고 전쟁 중에도 일부 선박은 통과하고 있다”면서 “이란 군의 허락 없이 선박이 통과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전쟁 이후에는 이 상황이 전쟁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은 많은 피를 흘렸고 이런 상황에서 쉽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또 “해협에는 기뢰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고, 외부에서 선박을 호위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며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 측은 이란군의 해협 기뢰 설치 정황을 언급하며 해협 내 선박 안전 확보를 위해 국제적 호위나 참여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날 회견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쿠제치 대사는 “이란과 미국 사이의 일들은 배신이고 기만적인 상황이었다”며 “이란 관리들은 백악관과 트럼프 행정부의 발언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은 국제사회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학교가 공격받고 어린 학생들이 사망하는 등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고 했다. 실제 회견장에는 공습으로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이 전시됐고, 전쟁 피해 영상을 상영했으며, 책가방과 사과 등이 놓인 추모 상징물이 함께 배치됐다.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전쟁 피해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영상 속 이번 폭격으로 숨진 학생들의 시신들이 바닥에 놓여있다. 화면 양옆엔 희생당한 학생들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한지혜 기자


미군의 군사적 대응 비판과 함께 쿠제치 대사는 동맹국들의 개입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속아 잘못된 결정과 위험한 모험주의적 조치에 빠진 것 같다”며 “주변 동맹들도 끌려서 이 작전에 같이하길 바라는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들은 미국의 이번 공습과 관련해 멀리 떨어지길 기원하며, 개입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서 주도하는 휴전 논의에 대해서는 “지금 나오는 얘기들은 시간을 벌어 다시 공습을 준비하려는 상황일 수 있다”며 “이란은 그런 발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미국이 제시한 15개 조건이 담긴 종전안에 대해서는 “불법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이란과 미국 간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고 이런 요청을 고려하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측의 종전안에는 이란의 핵시설 해체와 우라늄 농축 중단, 탄도미사일 개발 중단 등이 포함된다.

이란 군과 정부도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날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이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제시한 종전안을 “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요구”라고 평가하며 이를 거부했다. 대신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이란 주권 인정 ▶공격과 암살 중단 ▶전쟁 재발 방지 보장 ▶전쟁 피해 배상 ▶역내 교전 중단 등 5개 조건을 제시했다. 이 당국자는 “전쟁은 우리의 조건이 충족될 때, 우리의 선택에 따라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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