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경고...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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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3일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EPA/연합뉴스 |
대만은 이달 1일부터 외국인거류증에 '남한' 명칭을 쓰고 있다. 한국이 전자입국신고서의 중국·대만 병기를 지우지 않으면 자국의 보복 범위를 전자입국등록표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현재 대만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의 국적란에는 '대만'이 표기돼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신고서의 또 다른 부분이다. 한국 입국 직전에 출발한 국가를 묻는 부분에는 '중국(대만)' 표기가 있다. 똑같은 신고서의 한쪽에는 '대만'으로 표기하고 다른 쪽에는 '중국(대만)'으로 표기한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대만은 작년 2월에 생긴 그 부분에 대해 지난해 12월부터 항의했다. 12월 9일에는 대만 외교부가 한국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했고, 다음날에는 라이칭더 총통이 자국 국민들의 의지를 존중해달라고 호소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한국도 빨리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대만)'이라는 병기법은 왜 문제가 됐나
'중국(대만)'과 다를 바 없는 '중국대만'이란 표현은 '중화민국', '자유중국', '대만', '중화대북', '중국대북' 등과 비교할 때, 대만의 독자성을 가장 크게 훼손하는 느낌을 풍긴다. 이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한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1979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채택한 'Chinese Taipei'를 번역한 '중화대북'과 '중국대북' 중에서 중화대북은 중화민국 국호와 부분적으로 겹친다. 조선 후기의 한국 지식인들이 소중화를 자처한 데서 나타나듯이, 중화라는 표현은 문명의 중심지라는 뉘앙스도 풍긴다. 그래서 반중국 노선을 걷는 대만이 중화민국이란 국호를 쓰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또 수도인 대북(타이베이)을 집어넣어 '중국대북'이라고 하는 것보다 이 나라 전체인 대만을 넣어 '중국대만'이라고 하는 것은 대만의 독립성을 가장 낮추는 표현이다. 지금 대만인들은 이 부분에 반발하고 있다.
한편, '중국대만' 표현을 쓰는 쪽에 유리한 사실관계도 있다. 1971년 제26차 국제연합(유엔) 총회에서 나온 유엔 결의 제2758호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했다. 이는 대만 땅이 중국에 포함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대만' 표현은 지금의 국제질서에 위반되지 않는다. 다만, 대만인들이 못 견디게 싫어한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정서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대만과 관계를 맺은 국가들의 고민거리다.
현재로서는 '대만'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대만인들의 입장을 존중하는 현실적 방안이지만, '대만'이 점점 더 국호처럼 쓰이고 있으므로 이 역시 앞으로는 커다란 논란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중국은 어떤 단어든 간에 대만이 하나의 국가처럼 비치는 표현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서는 미국을 추종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로 추종의 강도가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한국의 기본 노선은 종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중국과 대만의 관계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따른다. 중국은 미국의 반대편이고 대만은 미국 편임에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사실상 친중국가가 된다.
이처럼 사안별로 강대국 중심주의를 따르다 보니 이번 일과 같은 모순이 발생한다. 한국 정부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분과 일관성을 갖고 이 문제를 처리했다면, 대만인들이 관계 재검토까지 시사하면서 한국에 보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식 국교만 없을 뿐 한국은 대만과 실질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자신의 주관을 정립하거나 대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중국의 입장을 추종하다 보니,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한국(남한)' 병기법을 확대하겠다는 경고가 대만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중국(대만)' 병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지난해 2월 이후에 처음 생긴 일은 아니다. 2004년부터 한국의 외국인등록증에는 '중국(대만)' 표기법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유독 지금에 와서 대만이 격하게 항의하는 것은 대만의 반한국 감정이 상당히 심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정부 들어 한중관계가 개선된 데 대한 대만인들의 불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한중관계가 지금의 기조로 점차 개선되면, 대만인들의 공격적 태도도 함께 강화될 수밖에 없다.
대만인들은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질 때마다 한국에 대한 호칭을 바꾸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92년 한중수교 이전에도 있었다. 그래서 한중관계가 개선되는 지금 국면에서는 이 문제에 특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중일수교(1972.9.9)에 이어 미중수교(1979.1.1)가 마무리된 직후인 1979년 연초에 '일본이 한국과 중공의 관계를 중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때 대만에서 신속히 나타난 현상이 국호 호칭을 통해 한국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해 2월 9일 자 <조선일보>는 "자유중국의 수도 대북(臺北)에서 발간되고 있는 일간신문들이 일본의 한-중공 관계 중재설이 나오자 이제까지 대한민국 또는 한국으로 부르던 우리나라의 호칭을 남한으로 부르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비슷한 일은 서울 올림픽 개막(1988.9.17) 전에도 있었다. 한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써가며 중국을 올림픽에 초대한 데 대한 직각적 반응이었다. 그해 7월 15일 자 <한겨레>는 "대만의 유력지 <렌허바오(연합보)> 등 일부 언론에서는 중공을 중국으로 호칭한 데 분격, 한국을 남조선으로 바꿔 표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해 7월 16일 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대만 <자립조보(自立早報)>에 비중 있게 실린 장문의 기자 칼럼은 최광수 외무부장관을 "남조선의 외교부장"으로 지칭하고 한반도를 "조선반도"로 지칭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어쩌기 힘드니 언론사들이라도 나서서 남조선이란 표현을 써야 한국이 불쾌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불쾌감을 주자는 이런 기사가 비중 있게 실린 것은 이 문제에 대해 냉정을 찾기 힘든 대만인들의 정서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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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25년 10월 28일 중국과 대만 경계가 맞닿아 있는 금문도에 세워진 군인 동상 위로 대만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
| ⓒ AFP 연합뉴스 |
반면, 대만 정부는 지금처럼 '한국(남한)'은 쓸 수 있어도 '조선(남조선)'은 쓰기 힘들다. 영어 표현인 'Korea(South)'를 전자로 번역하기는 쉬워도 후자로 번역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연합이 한반도 전체를 관할하는 정부의 한국어 혹은 중국어 명칭으로 '조선'을 인정한 일은 없다. 그런 국제법적 근거도 없이 조선(남조선) 표현을 쓰는 것은 대만이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말이 된다. 이는 대만이 속한 친미진영의 논리에 위반된다.
대만이 호칭 문제로 한국을 자극하는 데는 그런 한계가 있다. 한국은 대만이 중국에 속해 있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 쉬워도, 대만은 한국이 조선에 속해 있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대만이 친미 기조를 유지하는 한, 남조선이라는 표현은 '대만 언론'에서밖에 나올 수 없다. 대만 국호 문제는 한중관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대만이 독립국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대만을 등지고 오로지 중국과만 교류한다면 모르지만, 대만과도 실질적 우호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입장만을 존중할 수도 없다.
한국이 대만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중국과의 갈등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한중관계의 논리뿐 아니라 한·대만 관계의 논리도 존중하는 결정이 뭘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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