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청년, 전기엔지니어 꿈이 현실로…한국폴리텍대학의 힘

류장훈 2026. 3. 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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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고-한국폴리텍대학-취업’ 전기과 1호 취업성공기
이천 SK하이닉스 현장에서 일하는 전기 설계 근무자 명단에는 낯선 이름이 하나 있다. ‘흐어민충(22)’. 다소 이국적인 이름이지만 그는 한국인이다. 낯선 땅에 낯선 사람, 낯선 언어, 낯선 문화까지. 어느 하나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사춘기와 학창시절을 지나 대학에 진학하고, 현재는 어엿한 전기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올해 2월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지만, 현재 전기 설계팀의 일원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을 터였다. 도중에 좌절했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좀 많이 따랐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한 단계씩 선택을 이어가며 배움의 과정을 쌓다 보니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좋은 선택’ 중에는 ‘한국폴리텍대학’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그 선택은 현재 그에게 ‘다솜고-한국폴리텍대학(성남캠퍼스)-취업’ 1호라는 타이틀을 달아줬다.


쉽지 않았던 한국생활, 자립하기 위한 첫 번째 선택(다솜고등학교)


흐어민충 씨는 2004년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호찌민시에서 서남쪽으로 220여㎞ 떨어진 외곽지역 끼엔장성의 락자(Thành phố Rạch Giá)라는 항구도시다. 이곳에서 3000㎞ 이상 떨어진 한국에 온 그는 당장 학교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처음 학교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며 “친구들과 자연스러운 대화조차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어느 정도 한국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진로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어디서나 필요로 하는 현장 기술을 배울 수 있고, 다문화와 언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곳. 그가 막연하게나마 바라던 환경이었다. 그러다 당시에 살던 대전과 좀 떨어진 제천에, 그가 그려왔던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한국폴리텍다솜고등학교(이하 다솜고)’다.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배경 외국인(재외동포, 영주권, 난민인정자녀) 자녀에게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폴리텍대학이 2012년에 설립한 고등학교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 사이에선 '꿈의 학교'로 불려 경쟁률도 제법 높다. 그의 진로에 있어 첫 번째 선택이었다.

다솜고는 한 학년에 정원이 45명에 불과하다. 3개 과(스마트전기과, 컴퓨터기계과, 에너지설비과)에 한 과당 15명씩이다. 흐어민충 씨는 이 중 스마트전기과에 진학했다. 처음엔 생소했지만 수업과 실습에서 전기 설비가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을 보며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베트남·필리핀·우즈베키스탄 등 타지에서 온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 학생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학업에도 잘 적응해 전기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전기엔지니어의 꿈을 현실로 만든 두 번째 선택(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전기 엔지니어어의 길을 정하게 된 것도 이맘때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전기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 선택이었다. 학과장인 민찬식 교수와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선택을 두고 그는 “제 진로에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다”고 짚었다. 이 무렵은 민 교수가 직접 다솜고를 방문해 취업 실태를 파악하면서 다솜고(스마트전기과) 졸업생의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전기과) 진학, 현장 워밍업, 취업을 책임지는 일련의 시스템을 기획하고 입시 설명회를 열던 시기였다. 그리고 흐어민충 씨는 다솜고 졸업-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입학 1호 학생이자 취업까지 논스톱으로 성공한 1호 졸업생이 됐다.

대학생활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과 자양분으로 남았다. 다솜고 학생 및 졸업생,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재학생, 교수진이 함께 현지 기업 탐방, 현지 중학생 교육 봉사 등을 위해 열흘간 진행한 베트남 방문 일정에서 신입생이었던 그는 이중언어자로서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특히 당시 한-베 다문화센터, UN인권센터와 함께 진행한 베트남 현지 다문화 학생 대상 한국 입시·취업 상담은 흐어민충 씨가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베트남 현지 하노이폴리텍대학을 방문한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다솜고등학교 교직원, 재학생 일동.
▶베트남 현지 다문화 학생 대상 한국 입시·취업 상담을 하고 있는 흐어민충 씨.

학업 생활도 충실했다. 2학년이었던 2025년 여름에는, 전기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전문가 양성 과정을 수료했다. 이 과정은 설계 도면을 2D가 아닌 3D로 모델링하는 작업을 한 달 만에 모두 익혀야 하는 집약 과정이다. 한마디로 BIM 전기 설계의 특훈 과정인 셈이다. 민 교수의 권유와 엔지니어로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본인의 노력이었다. 이 과정은 그가 현재 근무 중인 반도체·플랜트 엔지니어링 전문기업 ‘인틱스(INTIX)’ 입사에 큰 이력으로 작용했다.

▶다솜고 출신 다문화 학생,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민찬식 교수와 함께 전기과 BIM 실습실에서
▶흐어민충 씨가 전기과 학생들과 진행한 프로젝트 실습


한국폴리텍대학, 이유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 든든한 힘


쉽지 않은 출발 선상에서 지금의 진로를 성공적으로 걸어온 그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현장을 이해하는 전기·계장 설계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싶다”며 “한없이 부족한 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폴리텍대학, 그리고 교수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폴리텍대학은 다문화 및 이주배경 외국인 자녀에게 훌륭한 선택지다. 적응해야 할 게 많은 이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주한 몽골 대사관 및 고려인협회와 MOU를 맺고 한국 취업·정착을 도울 뿐 아니라, 다문화 출신 구직희망자를 위한 특화 교육(이주배경구직자 교육훈련과정)도 신설해 운영 중이다. 앞으로 흐어민충 씨와 같은 제2, 제3의 성공사례가 기대된다. 흐어민충 씨는 “(한국폴리텍대학은) 제가 많이 배우고 ‘노력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곳”이라고 강조했다.

▶흐언민충 씨와 성남캠퍼스 전기과 민찬식 교수가 SK하이닉스(이천) 정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올해 1월 2일 첫 출근 이후 SK하이닉스 이천 현장에 파견돼 전기·계장 설계 실무를 익히며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이국땅에 건너와 한국이라는 나라에 적응하기 바빴던 그는 이제 명절에 부모님께 용돈을 두둑이 드리는 아들이 됐다. 그는 말한다. “출발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나아간다면 충분히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믿어도 될 것 같다”고.


※공동기획: 중앙일보·한국폴리텍대학

류장훈 중앙일보M&P 기자 ryu.ja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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