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쟁 아니다"라더니…美 돕는 유럽, 이란 뒷배 러시아

이승호 2026. 3. 2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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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영국 페어퍼드 공군기지에서 미국 B-1 폭격기가 정비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자칫 국제전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 분쟁 해결을 외치는 전장(戰場) 인접국들이 실제론 이해관계에 따라 한쪽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유럽이다. “이것은 유럽의 전쟁이 아니다”(16일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라며 거리를 뒀지만, 실상은 미군 작전 지휘·보급의 핵심 거점이다.


유럽, 미군 작전·지휘·보급 지원


지난 14일 영국 페어포드 공군기지에서 미군이 보잉 B-52 전략폭격기에 순항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군 폭격기와 드론·군함 대부분은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드론 통제), 영국 페어퍼드 공군 기지(폭격기 무기·연료 적재), 공중급유기를 배치하는 이탈리아 아비아노와 프랑스 이스트르 르 튀브, 포르투갈 라제스 공군기지 등에서 지원을 받고 출격 중이다.

화재사고가 난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은 그리스 크레타섬 수다만(灣) 해군기지에서 수리 중이다. 수다만 기지는 미군 정찰기의 신호정보(SIGINT)도 수집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자국 오스나브뤼크 공장에서 이스라엘의 방공망 ‘아이언 돔’ 장비 생산을 검토중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리스 크레타섬 수다만 해군기지에서 미군의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이 수리를 위해 정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유럽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건 꺼린다. 국내 반대 여론과 유가 급등을 우려해서다. 그럼에도 유럽의 최대 안보 지원국 미국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오히려 이번 전쟁이 유럽의 군사적 필요성을 미국에 알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동과 아프리카 작전에선 유럽을 활용해야 미국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며 “트럼프로선 미군이 유럽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대가가 크다는 것 알게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쟁 꺼리지만…유럽 전략 가치 알릴 기회


김영옥 기자
실제로 지난 1월 “유럽이 미국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허황된 꿈”이라고 말했던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22일 “미국이 전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선제타격을 했다. 나토·한국·일본 등이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위해 결집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지지에 나섰다.

다만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재앙적인 실수”라고 말하는 등 유럽 고위급 당국자에선 전쟁 관련 비판도 나오는 중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병참 지원만 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빈살만, 트럼프에 미군 이란 투입 요구


지난해 11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에 오랫동안 인내를 보이던 사우디아라비아도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사우디는 최근 수도 리야드 인근의 킹 파드 공군기지를 미군이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개전 초기 자국 시설과 영공이 이란 공격에 이용되는 걸 불허하며 확전을 막으려던 입장을 바꾼 것이다.

사우디의 생각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지난 19일 리야드에서 튀르키예·아랍에미리트(UAE)·요르단 등 이슬람권 12개국 외무장관이 회의를 하던 중, 회의장과 에너지 시설에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들면서다. 이후 차라리 미국을 도와 이란을 공격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에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번 전쟁을 중동 재편의 역사적 기회로 보고, 이란에 미군을 보내 이란 정부를 축출하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번 전쟁으로 현재까지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이란발 미사일·드론 피해를 본 아랍에미리트(UAE)도 두바이 내 병원과 클럽 등을 폐쇄하는 등 이란 자산 차단에 나섰다.


러시아, 이란에 '벌떼 드론' 작전 조언


지난 24일 이란 테헤란의 한 전시장에 진열된 이란 미사일들. AP=연합뉴스
이란의 우군(友軍)도 있다. 러시아는 이란 미사일·드론의 타격 정확도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6일“러시아가 이란에 군함, 항공기를 포함한 미군 시설 위치를 넘겨줬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도 “러시아의 첨단 공중 감시망이 24시간 내내 광학 및 레이더 영상을 이란에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란으로부터 샤헤드 드론을 지원 받았다. 4년간의 전쟁으로 러시아는 샤헤드 드론의 통신·항법·표적 타격 능력을 높였다. 이러한 ‘개량 샤헤드’를 이란에 역제공하고 있다. 이란이 사용한 벌떼 드론 작전도 러시아가 조언한 것이라고 WSJ가 전했다.

지난 2023년 11월 이란 카스피해의 반다르 안잘리 항구에 한 이란 군인이 이란의 새 군함 '데이라만' 진수식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가 이란을 지원하는 통로는 두 국가의 국경 카스피해다. 지난 18일 이스라엘이 카스피해 반다르 안잘리 항구에 있는 이란 해군 기지를 타격한 이유다. 이스라엘은 약 1000㎞ 길이의 내해(內海) 카스피해를 통해 러시아와 이란이 드론, 탄약, 석유 등을 자유롭게 교환해왔다고 보고 있다.


러 “서방 국가가 3차대전 일으켜”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전시된 러시아와 이란의 샤헤드 드론을 한 우크라이나 주민이 만져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오랫동안 자신과 우크라이나가 아닌 미국과 이란에 머무르길 바란다. 이를 위해 이란을 지원하는 한편 미국과 이스라엘 비판에도 나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제3차 세계대전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며 “소수의 서방 국가가 무력으로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이란에 정보 제공을 하며 미국의 시선이 이란 사태에 고정되도록 하고 새로운 분쟁을 계획하는 등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쿠르드 두려운 튀르키예, 이란 지원 의혹


지난 3일 튀르키예와 이란이 접경한 카피코이 국경검문소에서 이란인들이 튀르키예로 입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전쟁 중재를 시도 중인 튀르키예는 물밑에선 이란을 돕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란과 인접한 카피코이 국경검문소를 통해 이란 국민들의 자유로운 입출국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을 투입해 이란 정권을 전복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긴장하고 있다. 이는 자국내 쿠르드족 세력의 강화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알페르 코슈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튀르키예로선 이란 정권의 붕괴로 지역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번 전쟁에 거리를 두는 중국도 인도적 지원으로 이란 편을 들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공습으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이란 남부 미나브 여자초등학교에 지난 13일 20만달러(약 3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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