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도, 한식도 아닌 한국에만 있는, 일본 요리 만들겠다”

서울 강남구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 1층. 화이트 리쿼 전문 매장 ‘클리어’ 한쪽 벽면엔 눈에 잘 띄지 않는 문 하나가 숨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붉은 조명과 커튼이 드리워진 어둑한 공간이 나타난다.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연극 무대 같은 이곳은 신현도 셰프(38)가 이끄는 오마카세 레스토랑 ‘모노로그’다.
신 셰프는 넷플릭스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 시즌 2에 ‘칼마카세’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 12일 이곳에서 만난 그는 “요리사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간다리”라며 “일본 요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게 아니라 이 땅의 재료와 환경 아래 새 기준을 만드는 요리사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낀 신 셰프는 음식이 사람을 가장 직접적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요리에 발을 들이게 됐다. 특히 ‘절제의 미학’이 담긴 일본 요리에 끌렸다. “우리나라는 장맛, 중식은 불맛이라면 일식은 칼맛이라고 합니다. 재료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일식에서 칼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같은 생선이라도 써는 방향과 각도, 두께에 따라 식감과 단맛이 달라진다. 불을 사용하기 전 이미 칼에서 맛의 방향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기본이 흔들리면 그 위에 쌓는 모든 게 흔들린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도 가츠라무키(무를 얇게 돌려깎는 것)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어요. 칼질로는 일본 관서 지역에서 1등을 한 적도 있죠.”
그러나 한국인이 정통 일식에 도전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미쉐린 가이드에 실린 식당마다 전화를 걸어 면접 기회만이라도 달라고 끈질기게 문을 두드렸다. 이자카야로는 처음 미쉐린 스타를 받은 ‘나가호리’에서 약 3년을 배우며 요리관을 세웠다. “매주 농장에 가서 생산자를 만났어요. 농부는 누가 어떻게 먹는지 모른 채 재료를 기르고 소비자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른 채 음식을 접하죠. 셰프는 그 두 세계를 모두 알고 있어요. 그 연결을 만들어 서로의 가치를 전달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신 셰프의 목표는 단순히 일본 요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식재료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만 완성될 수 있는 일본 요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냉이와 달래를 넣은 스키야키를 들었다. 냉이와 달래는 한국에선 친숙하지만 일본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결국 일본 요리도, 한국요리도 아닌 ‘한국에만 있는 일본 요리’가 되는 거죠. 음식들을 저희만의 아이덴티티로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모노(物)’는 재료, ‘로그(Log)’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신 셰프는 이를 한 마디로 “계절이라는 무대 위에서 셰프와 손님이 함께 완성하는 오마카세”라고 표현했다. 계절이 바뀌면 재료와 기물이 바뀌고 플레이팅이 달라진다. 셰프는 그 변화를 음식으로 표현하고 방문객은 그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다.
이 공간을 기획한 김태남 신세계백화점 F&B팀 바이어는 “재료가 음식이 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셰프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래 이곳은 리쿼샵의 시음 공간으로 계획됐지만 김 바이어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지금의 모노로그가 됐다.
U자형 테이블 구조도 국내에선 드문 시도다. 김 바이어는 “기존의 직선적인 구조와 달리 손님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식을 K뷰티·K팝처럼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로 만들고 싶다. 맛도 중요하지만 재미있는 공간과 좋은 콘텐츠를 가진 음식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신 셰프는 “미쉐린 별을 따는 것도 목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오래 가는 식당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이노치(命). 생명이죠. 요리가 없으면 제게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에요.”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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