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조봉암 ③ 그는 간첩이었나?

조봉암을 둘러싼 세 번째의 논점은 그가 과연 간첩이었는가에 하는 점이다. 이승만은 농지개혁이 궤도에 들어서자 조봉암을 관사수리비 착복이라는 ‘치사한’ 죄목으로 장관에서 해임했다. 분노한 조봉암은 제2대 대선(1952)과 3대 대선(1956)에 출마하며 차점으로 낙선했다.
그의 차점 낙선은 신익희의 돌연한 죽음과 이로 말미암은 동정·기권표가 향배를 결정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으나 겁먹은 그의 정적들은 1960의 대선을 구상하며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죄명은 조봉암이 남한의 고정간첩이었던 양명산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담당 검사 오제도(吳制道)에 따르면 금전은 북한 부수상 박헌영이 보냈으며, 수령 일자는 1956년 5월로 되어 있는데, 박헌영은 1953년에 처형되었기 때문에 유령이 아닌 한 자금 송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로 양명산의 정체인데 당시 방첩대(HID) 요원이었던 그가 ‘어떻게 간첩 자금을 전달할 수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대북 첩보요원이 고정간첩이었다면 사건의 책임은 국가에 있는 것이며, 간첩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방첩대(대장 김창룡)의 공작에 의한 음모다. 조봉암은 옥중에서 비둘기를 키우다가 1959년 7월에 처형되었다.
최후 유언으로 술 한 잔과 담배 한 대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례는 투장(投葬)처럼 치렀고, 2년이 지나 망우리 묘지에 뒷면 비문이 없는 비석을 세웠는데 앞면을 쓴 일중 김충현(金忠顯)은 많은 고초를 거쳤다.
조봉암의 행적을 추적한 이택선(명지대 교수)은 박마리아와 경무대 비서 박찬일(朴贊一)의 음모로 그가 죽었다는 글을 남겼다. 나는 그의 추모식에 “이승만이 조봉암을 죽이지 않았다. 이승만은 그렇게 사악한 사람이 아니다”는 말을 했다가 그들과 척(隻)을 지고 인연을 끊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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