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만 휘두르는 트럼프도 한국이 필요해"
[안홍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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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오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서울 공평동 센트로폴리스에서 연 ‘K-경제안보 전략과 핵심과제 공개포럼’에서 조병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가 발제하고 있다. |
| ⓒ 국민경제자문회의 |
호르무즈해협의 해상운송로가 막히면서 많은 나라들의 석유·가스 수입이 어려워졌고, 당장 나프타의 수급 불안정은 여러 생필품 공급 불안으로 이어졌다. '공급망 안정'이라는 목표가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국가경제를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은 공급망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기민하게 대처해 상황을 타개하면서 회복력을 키우는 데에 중점을 둬왔다. 25일 오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서울 공평동 센트로폴리스에서 연 'K-경제안보 전략과 핵심과제 공개포럼'에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대처하는 데에 주력할 게 아니라 산업·통상에 안보 정책을 통합하고, 경제 책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날 포럼의 주제는 '대체불가능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전략은 무엇인가'이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부의장은 개회사에서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외부 충격이 거세게, 반복적으로 밀려오고 있다. 강대국들의 공세 때마다 잘 대응하고 빨리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가 다른 국가들과 협상할 때,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역량, 다시 말해 대체불가능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갖추는 전략이 절실한 때"라며 "상호의존성이 무기화된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제안보의 무대에서 대체불가능성을 갖춘 당당한 '잔략국가 코리아'로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자고 제안했다.
"대체불가능성이 미·중 대응 쉽게 한다"....
발제에 나선 조병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는 호르무즈해협을 예로 들어 대체불가능성을 설명했다. 호르무즈해협의 통행을 교란하는 단순한 행동으로 에너지 순환 시스템에 장애를 야기하고 세계 경제에 불안을 촉발하는 것으로 미국의 압박에 대항하고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한국을 빼면 세계 전체의 경제 시스템이 안 돌아가게 되는 상태가 대체불가능성"이라고 설명하면서 "반도체, 국제결제망, 희토류 같은 것이고, HBM 메모리 분야에서 한국은 대체불가능성 영역에 근접해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HBM 메모리 역량에서 첨단 반도체 패키징과 AI 서버 시스템 등으로, 특수 선박 건조분야에서 원자력 쇄빙선 같은 최첨단 특수선박으로 대체불가능성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조 교수의 전망.
조 교수는 "대체불가능성이 생기면 미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에서 압박에 대처하기가 쉬워진다"며 "지금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거의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제는 이 의존의 구조가 상호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 미국이 우리를 배제하거나 우리를 압박할 때는 그 부담과 고통이 미국에게도 갈 수 있도록 우리가 구조를 바꿔야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의 대체불가능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가 말을 하기가 쉽다. 시장과 공급망 의존을 당분간 계속해야 되겠지만 우리가 대체불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에는 중국에서부터 오는 압박을 완화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우리한테 생긴다"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중국 시장과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다변화 전략을 지속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 다변화 전략 차원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우리에게 엄청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북한과 관련해서도 "남북 대립이 격화될수록 우리는 그만큼 미국과 중국에 의존을 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든 아니든 이 구조 하나는 우리가 계속 유념해야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양희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는 패권국가가 사용해 온 책략(statecraft) 개념을 한국의 경제안보전략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책략이란, 다른 나라의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려고 사용하는 영향력 수단인데, 국익 개념을 재정의하고 경제 책략을 구상해 외부 상황에 대한 일회적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국의 경제 책략이 바이든 정부 시절 '보호주의 진영화'로 자리잡고 트럼프 2기 역시 이를 답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팩스실리카(Pax Silica:반도체), 포지(FORGE:핵심광물), AI 액션플랜(AI·반도체·핵심광물·에너지 수출통제) 등 소다자 진영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한국은 미국 첨단 제조업 재건의 핵심 파트너라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외교 전문가인 바이든은 당근과 채찍을 썼지만, 트럼프는 당근은 없이 채찍만 휘두르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여전히 한국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전략적 함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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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오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서울 공평동 센트로폴리스에서 연 ‘K-경제안보 전략과 핵심과제 공개포럼’에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축사하고 있다. |
| ⓒ 국민경제자문회의 |
한편, 산업 전략에 안보 개념을 적극 도입할 것이라는 정부 책임자의 방향 제시도 나왔다. 이 행사축사에 나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동안 우리는 비교적 안정된 국제 질서를 전제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산업과 공급망을 설계해 왔다. 바닷길은 열려 있고 에너지는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믿음이 있었다"라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 전제를 다시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효율 중심의 구조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취약성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정책실장은 "이제는 얼마나 빠른가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속도와 함께 지속성 그리고 안전성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 정세로 인한 고유가와 공급망 불안과 관련 김 정책실장은 "UAE에서 원유 2400만 배럴을 새로 도입하고 30년 만에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것이 대응의 시작"이라면서 "앞으로는 에너지 전략 등 시장의 자율과 함께 필요한 영역에서는 국가의 역할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김 정책실장은 "앞으로는 우리가 가진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취약한 부분을 단계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 특정 지역에 집중된 에너지 의존도를 완화하고 전략 자원의 비축과 조달 체계도 점검하고 보완해 나가겠다"라면서 "특히 산업의 공간 구조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효율성을 중심으로 집중된 인프라는 위기 상황에서 대응 여력을 제한할 수 있다. 에너지와 물류 생산 거점을 보다 균형 있게 발전시켜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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