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빈, 한승택 홈런에 불거진 공인구 논란, 진짜 원인은 탱탱볼이 아닌 하이볼? "타자들이 적응했다"

배지헌 기자 2026. 3. 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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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시범경기 60경기 홈런 119개, 경기당 1.98개
-하이볼 홈런 이전 5년 대비 153% 폭증, 핵심 변수로 부상
-공인구 검사 결과 다음 주 발표…속단은 이르다
KT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은 한승택(사진=KT)

[더게이트]

매년 시범경기가 끝나고 정규시즌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게 공인구 논란이다. 홈런이 쏟아지면 '탱탱볼'이라고 의혹을 제기하고, 홈런이 뚝 끊기면 반대로 공의 탄성이 너무 줄었다고 난리다. 2024년에도, 2020년에도, 그 전에도 똑같은 소리가 나왔고 그때마다 KBO는 번번이 "공인구에 변화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돌고돌아 올해도 다시 '탱탱볼'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4일 막을 내린 시범경기 60경기에서 홈런은 총 119개가 터졌다. 경기당 1.98개 꼴이다. 지난해 시범경기(42경기·53개·경기당 1.26개)와 비교하면 57.1% 급증한 수치다. 시범경기 홈런이 세 자릿수를 기록한 건 역대 최다였던 2016년(140개) 이후 10년 만이다. 모 구단 전력분석 담당자는 개인 SNS에 이런 데이터를 소개하며 '큰일났다'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고명준은 올 시즌 17홈런으로 커리어 최다 홈런을 경신했다. (사진=SSG)

고명준은 이해하는데 정수빈, 한승택이?

시범경기 홈런 순위를 보면 낯설다 못해 언캐니 밸리가 느껴질 정도다. 홈런 1위 SSG 고명준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5개를 때린 한화 허인서와 4개를 친 LG 이재원도 차세대 거포로 주목받는 선수들이니 받아들일 수 있다. 오스틴 딘, 최정, 김영웅 등의 이름이 상단에 있는 것도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 아래다. 커리어 내내 홈런과는 거리가 멀었던 두산 베어스 정수빈, KT 위즈 한승택, 롯데 자이언츠 신윤후 등이 나란히 2개씩의 홈런을 때려냈다. 정규시즌에서 정수빈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은 6개. 한승택과 신윤후는 지난 3년간 1군 경기에서 홈런이 없었다. 이런 타자들까지 신나게 담장을 넘기면서 탱탱볼 의심을 더 키운 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KBO 관계자는 "공인구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니 곤혹스럽다"면서 "시범경기 홈런 폭증은 우리로서도 의외인 부분"이라고 했다. 다만 공인구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전에 검사했을 때 반발계수가 예년보다 높게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쓰던 공이 아니라 올시즌을 위해 준비한 공인구인데 특별한 이상이 발견된 건 없었다"는 설명이다. 현지 생산 공장의 원료 공급이나 공정상에도 문제가 될 만한 점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KBO 공인구 반발계수 합격 기준은 0.4034 이상 0.4234 이하다. 2020년 시즌 초반에도 홈런이 급증하자 탱탱볼 논란이 일었고 KBO는 같은 말을 했다. 당시 1차 수시검사 결과 반발계수는 평균 0.4141로 기준 범위 안이었다. 2024년 역시 경기당 홈런이 2.00개로 치솟았지만 KBO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올해 공인구 반발계수 1차 수시검사 결과는 다음 주 월요일 발표될 예정이다. 기준 범위를 초과하는 수치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범위 안에서 다소 높은 수치가 나올지는 지켜볼 일이다. KBO 관계자는 "공인구 이야기는 매년 시즌을 앞두고 늘 나왔던 이야기"라면서도 "시즌 초반 경기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고 원인을 분석해 보겠다"고 말했다.
홈런을 날린 정현창(사진=KIA)

하이패스트볼에 홈런 펑펑, 타자들의 적응?

공인구 의혹이 말 그대로 의혹의 영역이라면, 분명하게 데이터로 확인되는 부분도 있다. 바로 하이 패스트볼을 공략한 홈런의 증가다. 지난해까지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높은 볼 홈런이 이번 시범경기에서 유독 자주 눈에 띄었다. 21일 잠실 KIA-두산전에서는 그날 나온 홈런 거의 대부분이 하이볼 홈런이었다.

KBO리그는 2024년 세계 최초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을 도입했다. 도입 첫해부터 스트라이크존 상단 판정 비율이 크게 늘었다. 과거 심판들이 높은 코스에 보수적 판정을 내리던 경향이 사라진 것이다.

투수들도 이 변화를 빠르게 활용했다.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 계열 투구 비율이 ABS 도입 후 치솟았고, 2스트라이크 이후 결정구로 쓰는 비율도 높아지며 하이볼이 투수들의 주요 무기로 자리 잡았다. 특히 외국인 에이스와 국내 강속구 투수들은 존 상단으로 솟아오르는 패스트볼을 앞세워 재미를 톡톡히 봤다. 반면 타자들은 높은 공에 당황하고, 분노하고, 배트를 내밀다 멈추거나, 그냥 지켜보다가 스트라이크를 먹었다.

그런데 이번 시범경기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시범경기 코스별 홈런 비율을 보면 가운데 높은 코스에서 6.00%(25개)로 가장 많은 홈런이 나왔다. 우타자 기준 몸쪽 높은 코스는 2.44%(8개), 좌타자 기준 몸쪽 높은 코스가 3.80%(12개)였다. 높은 코스에서만 홈런 45개가 터진 셈이다. 이는 가운데 높이(51개)와 비교해 큰 차이 없는 수준이다.

2021~2025년 정규시즌 5년간 평균과 비교하면 가운데 이번 시범경기에서 가운데 높은 코스 홈런 비율은 153% 증가했고, 우타자 기준 몸쪽 하이볼 홈런도 103% 늘었다. 한가운데 홈런이 25%, 가운데 낮은 코스 홈런이 63% 증가하는 데 그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치다. 이번 시범경기 홈런 폭증의 주된 원인이 '하이볼'이란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두산 베테랑 외야수 정수빈(사진=두산)

"타자들이 그 높이를 스트라이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수도권 구단의 한 타격코치는 이에 관해 "타자들이 ABS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하고 노력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우리 팀 타자들도 겨울에 준비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따로 하이 패스트볼을 공략하기 위한 드릴이나 별도 훈련을 진행한 것은 없다. 좀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한 방송사 해설위원은 "타자들이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아니겠나"란 의견을 내놨다. "지난해까지는 '이 높이가 스트라이크라고?'라는 식으로 높은 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타자들이 많았다면, 올해는 높은 공을 처음부터 스트라이크로 받아들이고, 높은 공에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기 시작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는 추론이다. 투수들은 2년 동안 그 높은 존을 무기 삼아 재미를 봤다. 타자들은 2년 동안 당하면서 학습했다. 이번 시범경기는 그 학습의 결과물일 수 있다.

원래 높은 코스는 장타 위험이 큰 구역이다. 존 상단으로 수직 무브먼트가 살아있는 속구를 정확히 집어넣을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 어중간한 투수가 높은 존과 가운데 경계 어딘가에 공을 던졌다간 홈런이 되기 쉽다. 분명한 건, 지난 2년간 하이볼로 재미를 봤던 투수들에게 시범경기에서 나타난 타자들의 변화가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단 점이다. 
수치: 인플레이 타구 대비 HR% / 괄호: 홈런 수 / 변화율: 2021-2025 정규시즌 대비(출처=세이버패럿)

물론 섣부른 결론은 금물이다. 시범경기는 팀당 12경기에 불과한 스몰 샘플이다. 정규시즌 들어 외국인 투수들과 각 팀 에이스들이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오르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KBO 관계자는 "시범경기 피홈런 공 데이터를 보면 이전보다 3km 정도 구속이 느렸다는 분석도 있다"며 투수들의 전력투구와 에이스들의 등판이 판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른 해설위원은 "보통은 시범경기에서 홈런 흐름이 정규시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올해도 그럴 지는 지켜볼 대목이라"라고 했다. "하이볼에서 홈런이 나온다는 걸 투수들과 구단들도 인지했다면 시즌 때 충분히 대응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8일이면 정규시즌이 시작된다. 공인구 1차 수시검사 결과는 다음 주 초에 나온다. 원인이 탱탱볼인지, 타자들의 진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해마다 반복되는 이 질문의 답은 그때 가서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때쯤 되면 다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잊어버릴 가능성이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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