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비적대적 선박만 통과"…'1척당 30억' 통행료 노린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미국에 내밀 핵심 협상 카드이자 전략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란은 24일(현지시간) 국제해사기구(IMO) 회원국들에 발송한 서한에서 “비적대적 선박에 한해 이란 당국과의 조율 및 안전·보안 규정 준수를 조건으로 통과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침략자(미국·이스라엘) 또는 침략 행위에 가담한 세력과 연계된 선박의 통행을 제한한다”고 했다. 다만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란 외무부는 지난 22일 각국 정부와 에너지 기업에 ‘안전한 통항을 위해 테헤란과 직접 조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비적대적 선박 통과 허용”을 직접 언급한 건 이례적이다. 블룸버그는 “테헤란이 해협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지나는 핵심 경로를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호르무즈해협을 전쟁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뿐 아니라 수익원으로 삼겠다는 계획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당장의 명분은 “전쟁 손실을 보상하는 자금원”(이란 일간지 자반)이지만, 추후에도 경제적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미 선박 한 척당 약 200만 달러(약 30억원) 수준의 통행료가 거론되고 있으며, 일부 유조선에는 부과가 시작됐다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도 나왔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호르무즈 해협을 재정적·지정학적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며 “전후 협상 구조까지 염두에 둔 장기 전략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23일 태국 유조선 한 척은 태국 정부와 이란 당국 간 외교 협조를 통해 별도 통행료 없이 해협을 통과한 사례도 확인됐다. 25일 CNN이 해상 추적 및 해운 정보 제공업체 '마린트래픽'을 인용해 지난 24시간 동안 유조선 3척과 화물선 1척 총 4척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도 보도했다.
이란 국영 메흐르통신과 고위 군사고문 모흐센레자이와 연계된 타브낙은 해협을 국가 수익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언론인 자반은 배럴당 과금과 선박 국적 및 적대 행위 연루 정도에 따른 차등 과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관련 선박은 제3국 국기를 달더라도 통항을 금지해야 한다면서다.

미국에서도 관련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는 최근 S&P 글로벌 행사에서 “지금 승리를 선언하고 물러나면 이란이 해협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될 것”이라며 “통과 선박에 사실상의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보수성향 정치매체 워싱턴이그제미너는 이날 칼럼을 통해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단순히 봉쇄하는 단계를 넘어, 종전 이후에도 이를 영구적인 수익 모델로 삼으려는 ‘테헤란 톨게이트’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인질로 잡은 “조직적인 보호비 갈취”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이란이 제재 회피를 위해 통행료를 위안화로 받으며 중국 금융기관과 밀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군사적 긴장은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휴전을 언급하고 있지만, 군사적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24일 이스라엘에서는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발사체 공격으로 인한 첫 사망 사례가 나왔다. 걸프 지역에서는 드론 공격으로 쿠웨이트 국제공항 연료 저장시설에 화재가 발생했다. 미국 의료기관을 겨냥한 이란 연계 해커들의 랜섬웨어 공격 정황도 포착됐다.
이란의 핵심 인프라 역시 위협에 노출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이란 부셰르 원전 부지에 발사체가 낙하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원전 피해나 방사능 유출은 없었지만, 군사 충돌 속 핵 시설 안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자제를 촉구한다는 게 IAEA의 입장이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4일 군 참모총장과의 회담에서 “리타니강까지 이어지는 안보 구역을 통제할 것”이라고 밝혀 남부 레바논에서의 장기 주둔 가능성을 시사했다. 같은 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X(옛 트위터)를 통해 “협상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이란과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26일로 전망되는 미국과 이란 간 협상에는 이스라엘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의 발언까지 나오면서 협상 전망에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미국 역시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24일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82공수사단 병력 2000~4000명의 중동 추가 배치를 검토 중이다. 이는 이미 약 5만명 수준인 역내 미군 전력에 더해지는 조치로, 필요 시 이란 본토 인근 작전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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