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만주 출생,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현역 조각가

김형순 2026. 3. 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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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1세대 김윤신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 호암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김형순 기자]

  '김윤신조각전'이 열리는 용인 삼성 호암미술관 로비 입구 장면
ⓒ 김형순
한국 여성 1세대 조각가 김윤신(1935~)의 대규모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열린다.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티노 세갈이 '비물질' 조각전을 열어 주목을 받았다면, 호암미술관에서는 구순을 넘긴 조각가의 '물질'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70년간 1500개 작품 중 170여 점을 이번에 선보인다.

작가는 "우리가 분리된 존재인가 연결된 존재인가?"를 물으며,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라는 개념어를 만들었다. 이는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모든 것은 결국 하나로 만난다는 한국 전통 사유와 연결된다.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되어, 또 다른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는 메시지다.

최근 김윤신은 한국에 다시 정착하면서 국제갤러리 개인전(2024), 서울시립미술관 회고전(2023),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2024) 본전시에 초대작가로 참여하는 등 현역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대 풍파 속 피어난 예술혼
 김윤신 I '부재시리즈' 캔버스에 판화잉크 1971-1972. 초기 작품
ⓒ 김형순
김윤신 조각가는 1935년 만주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원산에서 보냈고 해방과 분단과 한국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었다. 625 전쟁 통에 행방불명된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던 오빠를 찾고 있었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고, 그때 서울 거리에 처절하게 쌓인 수많은 시체를 봐야 했다. 그럴수록 작가는 어린 마음에도 "어디서든 죽기 살기로 버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녀는 홍익대(1955~1959)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64년 '파리 국립미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에서 이응로 화백을 만나 4년간 예술가로 교류하기도 했다. 그때 동양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번 전시의 주제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1969년 귀국 후에는 한국 현대조각의 기반을 넓혔고, '한국여류조각가회(1974년)'도 발족시켰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미술사 발전에도 기여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팔로 산토(Palo Santo) 나무 181.3×51.4×44.1cm 1987-1988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 작품에 선 김윤신 작가.
ⓒ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작가는 나무를 너무 사랑해 나무가 그 자신 그 자체이다. 1983년 말, "여기엔 좋은 나무가 많아!" 하던 아르헨티나 조카의 말에 솔깃해 잠시 여행 갔다가 이주를 결심했다. 이게 그녀는 인생을 확 바꿔놓았다. 이렇게 이곳에서의 40년이 시작되었다.

그곳 나무의 환경적 독특함이 작가의 예술적 결정을 특징지었다. 한국의 나무와는 비교가 안 되게 나무가 단단해 전기톱을 사용해야 했다. 그곳은 한국과 다르게 좋은 목재가 풍부했고 작업 조건이 월등히 좋았다. 게다가, 한국 지형과 달리 다채로운 풍광과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가 작가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
 김윤신 I '합이합일 분이분일(1995-562)' 1995
ⓒ 김형순
작가는 나무의 결을 지우지 않고 원목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건 인간과 자연의 합작이라 할 만하다.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는 것이다. 그의 예술철학인 '합이합일 분이분일' 개념으로 동양적 사유와 서구적 조형을 결합했다.

그녀가 만약 아르헨티나로 떠나지 않았다면, 이 작가의 작업은 글로벌한 세계성을 획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서가 만나면 뭔가 새로운 제3의 미술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국적 조각이 아르헨티나 원시미술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김윤신은 나무와 인간, 동양과 서양, 생명과 물질을 '하나로 묶는 조각가'다.

김윤신의 특징은 한국의 정신성, 유럽의 현대적 조형성, 그리고 중남미의 원시적 에너지가 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단순한 조각가만이 아니라 작품으로 세계 문명을 연결하는 철학자 역할도 했다. 2000년대부터 김윤신은 조각과 상응하는 회화에도 열정적으로 몰입했다. 200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김윤신미술관'이 생길 정도로 이곳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거기서 '나무의 영혼을 살려주는 조각가'로 불리게 되었다.

재료와의 대화, 나무에서 돌까지
 김윤신 I '합이합일 분이분일(1989-211)' 오닉스 45×87×55cm 1989
ⓒ 김형순
작가는 파리 시절부터 다양한 재료와 접촉했다. 아르헨티나에 와서는 알가로보(Algarrobo) 통나무에 몰입했다. 1989년과 2001년에는 멕시코와 브라질의 채석장을 오가며 오닉스(Onyx), 소달라이트(Sodalite) 같은 단단한 원석으로 작업하는 돌조각에도 도전했다. 작가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는다는 면에서 돌과 나무가 다를 것이 없다. 그 돌 속에 숨겨진 선과 면을 찾으려 애썼다.
이제 1층과 2층의 전시장을 들러보자.
 1전시실, 김윤신 I '합이합일 분이분일' 시리즈 작품을 선보인다
ⓒ 김형순
 2전시실, 김윤신 I '합이합일 분이분일'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 김형순
1층에는 '기원쌓기(Stacking Wishes)' 연작이 소개된다. 70년대 작가의 초기작도 보여준다. 작가의 분신 같은 목재 구조를 맞물려 짜맞추는 전통 한옥 방식이다. 불국사 다보탑에서 보는 것 같은 수직적 구조 미학을 연상시킨다. 작가도 종교인이라 그런지, 하늘로 치솟는 조각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2층에는 다양한 목조각과 원주민 문양과 회화조각도 선보인다. 그 중에서 아르헨티나 원주민 '마푸체(Mapuche)' 부족의 색채와 문양을 덧칠한 작품도 눈에 띈다. 게다가 작가는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이곳의 자연과 문화를 흡수해 더 풍부하게 확장된 그만의 양식을 개발했다.

코로나19 때 작가는 목재, 재료 수급이 힘들어지자, 조각 표면에 아크릴 채색을 입히는 방식을 도입했다. 나이프로 물감을 긁거나 주변 나뭇조각을 모아 붙인 뒤 원색의 색을 입혔다. 그림과 조각이 하나가 되고, 평면과 입체의 경계가 없는 <회화조각(Painting-Sculpture)>도 그렇게 창안됐다.

최근 작업, '노래하는 나무'를 세우다
 김윤신 I '합이합일 분이분일(2013-16)' 알가로보 135×202×56cm 2013
ⓒ 김형순
 김윤신 I '노래하는 나무(2013-16V1)' 알루미늄에 아크릴 135×202×56cm 2025 이 작품은 채색조각 시리즈 중 하나 구순 노장의 예술적 열망과 집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작가는 위에서 보듯 2013년부터 아크릴로 채색한 나뭇조각도 자주 선보였다. 이는 안데스산맥의 장대한 풍광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그 숭고함과 웅장한 경이로움을 표현했다.

2025년 신작 '노래하는 나무'는 이번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강렬한 원색을 입혀 작가의 대자연의 웅장함과 삶의 환희를 동시에 뿜어낸다. 10대에 한국전쟁을 겪으며 극복한 트라우마가 오히려 고령에도 거침없이 전기톱을 휘두르는 작가의 저력이 된 듯싶다.

미술관 자료에는 김윤신의 예술을 "현대적이면서 자연에 가깝고, 한국적이면서 이국적인, 지역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작품으로 한국 현대미술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남미의 원시적 야성과 한국 사상의 뿌리가 되는 합일 철학으로, 물질 속에 숨겨진 우주의 역량을 일깨우는 조각가"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호암미술관 연계 행사] 호암미술관 강당에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월 27일(금)에는 김윤신 작가가 자신의 삶과 작업을 돌아보는 아티스트 토크 / 4월 24일(금)과 5월 15일(금)에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는 대중강연 / 6월 13일(토)에는 한국 조각사와 아시아, 남미에서의 모더니즘 안에서 김윤신 작업의 의미를 조명하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 모든 프로그램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통해 참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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