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터뷰] "정신 차려보니 올림픽 동메달 주역이 되어 있었다" 은퇴하는 황석호의 축구인생 ①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황석호는 조용한 선수였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 당시 전경기 풀타임을 소화한 단 4명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스포트라이트를 피해갔다. 심지어 너무 짧게 뛰어서 화제가 된 김기희보다도 이름이 덜 거론됐다.
선수 경력을 통틀어 봐도 그리 튀지 않았지만 늘 수준급 선수였던 황석호가 지난해를 끝으로 프로 14년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를 만나 선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함께 돌아봤다. 축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스스로를 과소평가했지만, 돌아보면 늘 생각보다 좀 더 괜찮은 선수였다.
▲ 갑자기 사는 세상이 뒤집혀버린 초고속 홍명보 호 발탁
"원래 육상을 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갈 즈음 축구부 감독님께서 한 번 게스트로 뛰어 보라고 대회에 데려가셨어요. 축구 훈련도 거의 안 받은 상태에서 첫 경기를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골을 좀 많이 넣었어요. 그 맛을 봐 버렸죠. 그길로 육상부에 가서 저 그만둡니다, 축구하러 갑니다라고 말했어요."
학교에서는 제일 뛰어난 선수였지만, 전국구 유망주가 되진 못했다. 대학에 진학할 즈음에는 학비를 걱정해야 했다. 대구대에서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던 황석호의 선수 경력은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새 선수를 찾고 있던 홍명보 감독의 눈에 들며 단숨에 점프했다.
"대학 춘계 대회 당시까지 측면 수비수였는데, 한 경기에서 선수가 부족해지는 바람에 센터백을 봤어요. 그 경기에서 잘 했나 봐요. 전 대표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홍명보 감독님, 김태영 박건하 김봉수 쌤이 오셨다는 것도 몰랐죠. 그 다음 경기는 원래 포지션인 사이드백으로 돌아갔는데 그렇게 잘했던 것 같진 않아요. 얼마 뒤 대학 선수로만 올림픽 대표 후보군을 뽑아서 평가전을 했는데, 그때 불려갔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황석호는 소위 '홍명보의 아이들'에 뒤늦게 합류했다. 2009년 U20 월드컵, 2010년 아시안게임을 통해 이미 굳어져가고 있던 선수단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행운도 따랐다. 원래 주전 센터백 후보였던 홍정호, 장현수가 차례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황석호가 그들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
"U23 대표팀에 불려 갈 때마다 늘 하던 대로, 꾸준히 또 성실하게 훈련했어요. 올림픽을 앞두고 명단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종 평가전이 있었는데 저와 (김)기희가 센터백을 봤어요. 시리아 상대로 기희가 두 골을 넣었기 때문에 다들 기희가 최종명단에 들겠구나 생각했죠. 전 스스로 경기를 꽤 잘 했다고 생각하고 돌아왔어요. 소속팀 히로시마에서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버스에서 통역사 형이 전화를 바꿔주기에 받았는데 최종 명단에 들었다는 연락이었어요. 정말 깜짝 놀랐죠(* 김기희는 이후 부상자 대체 발탁으로 합류)."
▲ 올림픽 승부차기를요? 제가요?
홍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 순간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올림픽에서 김영권과 붙박이 조합을 이뤄 전경기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만큼 집중력이 좋은 팀에서 뛰어보기란 힘들어요. 다들 동기부여가 잘 돼 있었어요. (기)성용이 형이 항상 버스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크게 틀곤 했어요. 다들 각성해서 훈련이고 경기고 제대로 하라고요. 장난 같은 행동일 수도 있지만, 모든 선수들이 한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동기부여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황석호는 런던에 있는 내내 경기가 정말 잘 풀렸다고 기억한다. 신장 183cm로 센터백치고 작은 편이지만 당시 물오른 점프력과 빠른 발을 활용해 경합에서 거의 지지 않았다.
"심지어 승부차기까지 찰 줄은 몰랐죠. 영국전(8강)에서 제가 3번 키커를 맡았어요. 사실 저보다 잘 차는 선수가 많으니까 전 연습도 전혀 안 했거든요. 대학에서는 제 승부차기 실축 때문에 팀이 진 적도 있어요. 그런데 연장전 끝나고 승부차기 준비할 때 김태영 코치님이 갑자기 '석호 3번'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가슴이 쿵쾅거렸는데 성용이 형이 짧은 시간 동안 잘 안정시켜줬어요. 그냥 한 곳 정해서 차 버리자 생각했고, 그대로 들어갔죠. 대회 내내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에도 집중력이 좋았어요. 영국측 관중이 그렇게 응원하고 있는데도 전혀 안 보이고 골대와 공만 딱 보이더라고요."
▲ 유럽 진출을 망설였던 아쉬움
올림픽 동메달팀의 주전 센터백인만큼 각국 구단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 산프레체히로시마에서 고작 반년 뛴 황석호에게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그리스 올림피아코스가 제안을 했다. 그러나 황석호는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지금처럼 유럽 진출이 활성화된 시기가 아니었고, 얼마 전까지 등록금을 걱정하던 선수가 단숨에 유럽파가 되는 자신을 상상하는 게 쉽지 않았다. 히로시마에서도 겨우 적응해가던 중이었다.
"올림픽 경기를 관전한 스카우트 중에 절 좋게 본 팀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땐 별 게 다 무서웠어요. 이제야 일본어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영어를 다시 공부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소한 환경까지. 물론 지금 같으면 무조건 가죠. 도전해야죠. 그때는 너무 어렸어요."
황석호는 가끔 유럽에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한다. 뛰는 무대뿐 아니라 포지션과 역할까지 송두리째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뛰던 황석호의 최대 장점은 30대 초반까지 스피드였다. 그 스피드를 제대로 활용하는 법, 거기 걸맞은 포지션을 유럽에서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모리야스 감독은 14년 전에도 그런 축구를 했다
황석호는 일본에서 여러 지도자를 거쳤는데, 그 중에는 모리야스 하지메 현 일본 대표팀 감독도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현 대표팀 감독을 모두 거친 셈이다. 황석호는 홍 감독이 자신을 발탁해 준 만큼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은사로 꼽았다. 두 번째로 많은 영향을 받은 시기가 히로시마의 모리야스 감독 및 코칭 스태프와 함께 했을 때다.
"사실 모리야스 감독님보다 먼저 와 계셨던 요코우치 아키노부 코치님(현 몬테디오야마가타 감독)이 전술을 더 많이 짰고, 모리야스 감독님은 프로 감독으로서 첫해라 그분도 배워가는 입장이셨어요. 근데 전술은 지금 일본 대표팀과 비슷해요. 스리백인데, 정말 좋은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제가 스리백의 스토퍼로 배치됐을 때도 경기 상황만 맞으면 얼마든지 공격에 가담할 수 있었어요. 앞서간 축구였고, 많이 배웠죠."
황석호는 히로시마에서 데뷔하자마자 2년 연속으로 J1리그 우승을 맛봤다. 요코우치 코치가 다져놓은 기존 전술 완성도에 모리야스 감독의 수비 완성도를 더해 팀이 크게 성장했던 시기다. 또한 어린 선수들은 휴가 다음 날 따로 모아서 추가 훈련을 했다. 팀 입장에서는 전술을 더 가르쳐야 전력으로 쓸 수 있으니 훈련시킨 것이었지만 황석호 등 유망주들 입장에서는 공짜 과외인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가시마앤틀러스 시절 코치였던 오이와 고가 지금 일본 올림픽 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데, 센터백 출신인 오이와 코치에게 수비 노하우도 많이 익혔다.
"특별히 기억나는 건 시미즈S펄스에 있던 2020년인데, 그때 피터 클라모프스키라는 감독님이 오셨어요. 앤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수석코치였던 분이죠. 그분들 축구는 요코하마에서 함께 할 때부터 지금까지 비슷해요. 그러니까 압박 강도가 높고 엄청나게 뛰어야 하는, 토트넘을 통해 많이 보셨을 그 축구를 한 거죠. 진짜 재밌긴 했어요. 스프린트 횟수가 엄청나게 많고요. 근데 토트넘과 똑같은 건 햄스트링 부상자가 엄청나게 나왔어요. 센터백이 하프라인까지 올라가 있다가 상대 역습을 당하면 전속력으로 뛰어야 하니까 센터백이 다칠 수밖에 없더라고요."
▲ 하향세에서 나간 월드컵의 아쉬움
황석호의 국가대표 경력은 순식간에 정점에 오른 만큼 내려오는 것도 빨랐다. A대표팀 기록은 단 4경기가 전부다. 런던 올림픽 이후 A대표로 데뷔했는데 띄엄띄엄 친선경기를 소화하다가 2014 브라질 월드컵 첫 경기에서 러시아 상대로 교체 출전한 게 마지막이었다.
"왜 그렇게 대표팀 출장 횟수가 적었냐면, 부상이 많았거든요. 대표팀 명단발표됐을 때는 제 이름이 있고, 소집 전 마지막 프로 경기에서 다쳐서 제 이름이 빠지고, 그런 일의 반복이었어요. 큰 부상도 아니에요. 발목이 돌아간다든지, 햄스트링이 좀 안 좋아진다든지.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월드컵에 차출됐을 때 사실 제대로 된 몸 상태가 아니었죠. 브라질 넘어가기 전 마이애미 최종 전지훈련에서 몸 상태는 올리려고 노력했는데, 경기 감각이나 여러 면에서 준비가 미흡했던 게 사실이에요."


▲ K리그 3연패를 이어간 울산 경력, 아쉬움으로 남은 마지막 수원
히로시마, 가시마에 이어 톈진터다, 시미즈S펄스, 사간도스까지 외국에서 프로 경력을 이어가던 황석호는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2024년 울산HD로 이적하며 K리그에 데뷔했다. 홍 감독과 김영권 등 런던 세대로 익숙한 선수들이 잔뜩 있는 팀이었다. 적응하긴 편했지만 '은퇴할 때가 되어가는 홍명보의 아이들만 잔뜩 수집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제가 프로 생활 막바지인 건 사실이었죠. 한국 사람으로서 은퇴하기 전에 K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었어요. 이미 울산이 2년 연속 우승한 상태에서 저처럼 나이 많은 선수가 쫙 영입되니까 저희끼리는 오히려 위기의식이 강했어요. 전부터 있던 영권이, 청용이 형 등이 '우리가 잘 해서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며 분위기를 잡았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팬들의 의심은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동기부여가 된 셈이었죠."
황석호는 지난해 하반기 수원삼성에서 뛰었으나 결국 팀의 승격을 이끌지 못했고, 그게 프로 마지막 경력이 됐다. 승격이 간당간당했던 수원에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로 합류했지만 부상과 그 전후로 찾아온 경기력 저하를 이길 수 없었다. 황석호는 여전히 프로 마지막 시즌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야죠"라며 새로운 방식으로 축구를 접할 거라 밝혔다.
사진= 풋볼리스트, 울산HD 제공
Copyright © 풋볼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복 여신' 손나은 오키나와 일상 파격 공개...'매혹 원피스'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트럼프는 틀렸다” 한국이 마다한 미국인 감독의 뚝심… 현재 직장 캐나다에 충성 - 풋볼리스
- 'EPL 활약' 국가대표 'S군' 상습 불법 베팅 혐의..구단 공식 입장 '없다'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직무대행도 놀랄 '김건희 칼각 거수경례'... 카메라에 잡혔다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성추행' 국가대표, 보석 출소...'금메달리스트-국민영웅 봐주기?'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취재파일] 뮌헨, 올여름 제주도 친선경기 추진한다! ‘홍콩+서귀포’ 투어로 아시아 시장 공략 -
- “국제적 테스트 기회” 코리아풋볼파크 플랫폼 활용, ‘불안한 국제정세’로 뜻밖의 시험대 [
- 박주영, 은퇴식은 소외된 아이들 위한 행사로! 자선 바자회 통해 현역 생활 마침표 - 풋볼리스트(
- ‘김다솔까지 성공적 복귀’ 안양의 든든한 골키퍼 전력, ‘무한 경쟁’으로 시너지 기대 [케현
- ‘헤타페전 폭력 논란’ 부인했던 뤼디거, 대표팀 오자 “내 책임이고 선 넘을 때 있기도” -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