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있는 윤동주의 마지막 모습... 여기에서 웃었다

김용국 2026. 3. 25.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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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생존기] 교토역에서 30분 우지시, 그곳에 남아 있는 윤동주 시인의 흔적

도톤보리, 글리코상, 타코야키, 유니버설스튜디오, 우메다, 난바.... 오사카,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 여기,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 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 <기자말>

[김용국 기자]

▲ 교토 히가시혼간지 교토시의 히가시혼간지. 왼쪽에 보이는 곳은 교토역 맞은편 교토타워이다. 내가 오사카에서 교토에 갈 때 자주 다니는 길이다.
ⓒ 김용국
바야흐로 봄이다. 요사이 일본은 마치 벚꽃만을 바라보고 사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지역별로 벚꽃 개화와 만개 시기, 축제 명소와 관련 행사장, 상품 소개에 정신이 없다.

일본인뿐 아니다.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등 간사이 지역은 올해도 벚꽃을 보기 위해 어김없이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항공료, 호텔도 비싸고, 인파도 어마어마하지만 벚꽃 구경을 위해서라면 다 감수하겠다는 듯하다.

가끔 지인들로부터 오사카나 교토 지역 벚꽃 명소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겨우 석 달을 일본에서 보냈고, 그것도 대학에서 주로 생활해 왔지만, 그래도 그동안 보고 들은 풍월이 있어서 몇 군데 얘기해 줄 정도는 된다.

오사카에 살고 있는 덕분에 걸어서, 자전거로, 혹은 전철로 갈 수 있는 벚꽃 명소도 제법 된다. 오사카성과 오사카조폐국은 다들 알고 있는 명소니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지내는 오사카대학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엑스포 '70 기념공원(반파쿠공원)이다. 12품종 약 5500그루의 벚꽃이 있는 이 공원은 '일본 벚꽃 명소 100선'에도 선정된 곳이다.

교토에서 고즈넉한 벚꽃 구경을 원한다면

교토는 특정 장소를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그래도 유명한 한 군데를 꼽는다면 마루야마공원을 추천한다. 기온거리에서 야사카신사를 거쳐 공원으로 올라가면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청수사(기요미즈데라)까지 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명소는 사람에 치인다는 단점이 있다.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몰리니 자칫 사람에 떠밀려 다니기 쉽다.

교토에서 벚꽃도 보고 조용하고 사람이 덜 붐비면서 고즈넉한 곳은 없을까. 한 군데가 있다. 바로 우지시다. 하루면 웬만한 곳을 다 둘러볼 수 있다. 지난 주말 벚꽃이 피기 전에 미리 한 번 다녀와봤다. 벚꽃 구경 뿐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본 '최초' '최고(最古)' 수식어가 붙은 곳이 많고, 우리 역사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교토역에서 전철로 20분, 녹차향이 진동하는 도시

교토역에서 나라선을 타고 20여 분만 가면 우지에 도착한다. 전철 요금도 240엔으로 싸다. 우지는 일본차로 유명한 곳이다. 13세기 가마쿠라시대부터 차 재배가 시작되었고 역대 권력자들의 장려와 차가 자라기 좋은 기후조건이 맞물려 우지는 차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역에서 내리지마자 녹차 향이 진동을 한다. 각종 차를 파는 상점가를 구경하며 10분 정도 걸으니 우지강이 나온다. 우지강변에 자리 잡은 우지공원에만 2천 그루가 넘는 벚꽃나무가 있다. 벚꽃 축제를 열 정도로 화려하다. 교토 시내보다는 덜 붐비는 장소이니 여기서 실컷 꽃구경을 해도 좋겠다. 하지만 벚꽃 하나만 보기 위해서라면 굳이 여기까지 올 이유는 없을 것이다. 여기저기 명소가 많다.
▲ 우지교의 전경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우지교. 그간 수차례 파손과 유실을 겪어서 지금의 다리는 1999년 복원한 것이다.
ⓒ 김용국
오래된 다리 우지교가 눈에 보인다. 646년, 그러니까 약 1400년 전에 지어졌단다.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그간 수차례 파손과 유실을 겪어서 지금의 다리는 1999년 복원한 것이다. 우지교 앞에는 석상이 하나 있다. 주인공은 일본 최초의 장편 고전소설 <겐지이야기>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이다. 일본 최고의 문인을 뽑는 투표에서 나쓰메소세키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고, 초상화가 2천 엔권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인물이다. 우지는 겐지이야기의 마지막 무대로 등장한다.
일본 최초 찻집과 최초 신사를 가다
▲ 일본 최초의 찻집 우지교를 건너면 일본 최초의 찻집, 츠엔이 있다. 12세기에 창업을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내부에 들어가면 창가로 우지강과 우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 김용국
우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찻집이 하나 있다. 일본 최초의 찻집이라는 츠엔이다. 12세기에 창업을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들러 차와 다과를 주문했다. 창가로 우지강과 우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 우지가미 신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로 알려진 우지가미신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1060년 지어졌다는 본전(오른쪽)과 그 뒤 만들어진 배전((拜殿)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 김용국
여기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가장 오래된 신사로 알려진 우지가미신사가 나온다. 신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1060년 지어졌다는 본전과 그 뒤 만들어진 배전((拜殿)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바로 아래쪽에는 우지신사가 있으니 함께 들러볼 만하다. 우지신사에는 토끼 상징물이 많이 보인다. 이 신사의 신은 우지노와키 이라츠코라는, 고대 천황의 아들인데 그가 길을 잃자 토끼 한마리가 나타나 계속 뒤돌아보면서 길을 안내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학업 성취와 여행 안전을 기원하는 신사가 되었다고 한다.
극락정토가 의심스러우면 가보는 곳
▲ 뵤도인의 봉황당 전경 1052년 지어져 일본 불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뵤도인의 봉황당.‘극락정토가 의심스러우면 뵤도인을 가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려한 불상과 잔잔한 연못이 특징이다. 봉황당은 일본 돈에 2번이나 등장한다. 10엔짜리 동전 앞면에는 봉황당 전경이, 1만 엔권 지폐(2004~2024년 발행)에는 봉황당 지붕 위의 봉황이 사용되었다.
ⓒ 김용국
다시 강을 건너오면 우지를 대표하는 사찰이 있다. 바로 뵤도인(평등원)이다. 1052년 지어져 일본 불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애초 헤이안 시대의 시골 별장이었으나 당시 최고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별장을 절로 개축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053년 극락정토를 꿈꾸며 본당인 봉황당을 짓는다.

'극락정토가 의심스러우면 뵤도인을 가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려한 불상과 잔잔한 연못이 특징이다. 뵤도인은 일본 돈에 2번이나 등장한다. 10엔짜리 동전 앞면에는 봉황당이, 1만 엔권 지폐(2004~2024년 발행)에는 봉황당 지붕 위의 봉황이 사용되었다.

뵤도인에는 세계문화유산인 봉황당을 비롯, 봉황, 범종 등 일본 국보가 여럿 있다. 봉황당은 바깥에서 보는 경치가 좋지만,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예약을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 봉황당 안에는 국보인 아미타여래좌상과 운중공양보살상이 있다.

경내에서 보이는 봉황당 위의 봉황과 범종은 진품이 아니고 최근 만든 것들이다. 진품은 별도로 마련된 박물관에 다른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뵤도인은 중생 누구나 평등한 세상, 극락정토 구현을 꿈꾸며 만들어졌지만, 이곳에는 살벌한 역사도 숨어 있다. 일본 최초의 할복 장소가 바로 뵤도인이다.

12세기 헤이안 시대 잘 나가던 무사인 미나모토노 요리마사. 중앙 정계까지 진출한 그는 대격변의 시대 전쟁에 나섰다가 패배하였다. 그는 더 이상이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뵤도인에서 자신의 부채를 펼쳐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때가 1180년으로, 일본 할복 역사의 시작이다. 그 후 할복은 사무라이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지금도 관음당 근처에 오기노시바(부채의 잔디라는 의미)라는 이름으로 장소가 보존돼 있다.

우지에서 만난 윤동주 시인
▲ 아마가세 구름다리 아마가세 구름다리. 1943년 윤동주 시인이 우지에 소풍을 와서 벗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소이다. 뵤도인에서 강의 상류 쪽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 김용국
마지막으로 가볼 곳이 있다. 아마가세 구름다리다. 윤동주 시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장소이다. 뵤도인에서 강의 상류 쪽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1943년 초여름 당시 교토 도시샤대학을 다니던 윤동주는 우지 강변으로 벗들과 소풍을 가게 된다. 이 무렵 윤동주는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소풍은 윤동주의 송별회를 위한 것이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윤동주는 이날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윤동주 일행은 우지강을 거슬러 올라가 아마가세 구름다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것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윤동주의 마지막 모습이다(이 사진은 2017년 최초로 공개되었다).

그해 7월 윤동주는 교토 하숙집에서 일본 경찰의 급습을 받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일본 법정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45년 2월 16일 옥사한다. 향년 27세.

댐 하류에 자리 잡은 아마가세 구름다리는 길이 50미터 정도로 작지만, 전망이 좋아서 주변을 산책을 하는 주민들이 보였다. 다리 위로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윤동주 일행이 사진을 찍었던 장소를 바라본다. 만일 그가 무사히 일본을 벗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인생과 우리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 아마가세 구름다리 위의 윤동주시인 아마가세 구름다리. 1943년 윤동주 시인(사진 왼쪽에서 2번째)이 우지에 소풍을 와서 벗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소이다. 그해 7월 윤동주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뒤 수감중이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16일 숨을 거둔다. 이 사진은 윤동주 시인의 최후 사진이 되었다.
ⓒ 시인윤동주기념비 건립위원회
▲ 윤동주 시인이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소 아마가세 구름다리. 1943년 윤동주 시인이 우지에 소풍을 와서 벗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소이다. 사진 속의 장소와 동일한 각도에서 촬영을 해보았다,
ⓒ 김용국
근처에 있다는 추모비를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추모비는 강 상류 쪽으로 400미터 정도 더 올라간 외진 곳에 있었다. 다리 근처도 아니고 눈에 띄지 않는 응달에 있어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 우지의 윤동주 시비 우지에 있는 윤동주 시비. 일본어로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라고 써있고, 시 <새로운 길>이 우리말과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시비 뒤쪽에는 2017년 10월 “윤동주가 살았다는 증거를 미래에 전하게 위해 시 <새로운 길>을 적은 비를 이곳에 세운다”는 취지를 일본어로 기록해 놓았다.
ⓒ 김용국
시비에는 일본어로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라고 쓰여 있고, 시 <새로운 길>이 우리말과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시비 뒤쪽에는 2017년 10월 "윤동주가 살았다는 증거를 미래에 전하게 위해 시 <새로운 길>을 적은 비를 이곳에 세운다"는 취지를 일본어로 기록해 놓았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새로운 길> 원문 전문)

그러나 친구들과 아리랑을 부르며 새 출발을 다짐했을 그의 길은 중단되고 만다. 일제에 의해 사상범으로 몰린 그는 후쿠오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것도 조국 해방을 반년 남겨둔 채 옥중 의문사를 한 것이다.
길을 지나는 일본인 노파에게 "이곳에 일본 감옥에서 사망한 한국의 유명 시인을 추모하는 비가 있어서 왔다"고 말을 걸자. "아, 그래요?" 하면서도 영 불편해하는 눈치다. 노파는 "그래도 여기(외진 곳)까지 오느라 운동이 되었겠네요"라고 엉뚱한 말로 얼버무린다. 주위를 보니 산책 삼아 다리를 건너는 사람,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다들 슬픈 역사를 모르겠지. 아니 관심조차 없겠지.
▲ 도시샤대학의 윤동주 시비 교토 도시샤대학의 윤동주 시비. 도시샤 대학에는 1995년 추모 시비가 세워졌고, 작년 2월에 대학은 시인에게 명예문화박사학위를 수여했다.
ⓒ 김용국
일본 내 윤동주와 관련된 장소를 찾은 건 세 번째다. 이곳 외에도 2023년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와 올해 3월 교토 도시샤 대학을 가보았다. 도시샤 대학에는 1995년 추모 시비가 세워졌고, 작년 2월에 대학은 시인에게 명예문화박사학위를 수여했다. 3월 도시샤대학 방문에 동행했던 박현국 교수(류코쿠대학 국제학부)는 "이곳 외에도 몇 군데 시인과 관련된 시설이 있다"라고 귀띔해주었다. 시인이 최후를 맞은 후쿠오카형무소는 현재 구치소 자리로, 방문도 어렵고 시인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허무한 벚꽃... 우리 청춘도 그러하던가
▲ 다이키치야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우지 시내 전경 우지가미 신사 바로 위에 있는 다이키치야마 전망대. 걸어서 20분만 오르면 우지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우지의 해가 지는 모습을 담았다.
ⓒ 김용국
어느새 사방엔 어스름이 깔려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숨은 명소를 갈 시간이다. 높은 건물이 없는 우지에도 전망대가 있다. 우지가미 신사 바로 위에 있는 다이키치야마 전망대다. 걸어서 20분만 오르면 우지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험한 산이 아니라서 운동화로 산책하듯이 너끈히 올라갈 수 있다. 그곳 정자에 앉아서 우지강을 한참 바라보다 내려왔다.
오사카, 교토, 고베 등 간사이 지역은 곧 벚꽃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만일 덜 붐비고 고즈넉한 장소를 찾는다면 우지가 제격이 아닐까 싶다.
▲ 성급하게 핀 벚꽃 우지시 뵤도인 인근에 성급하게 벚꽃이 피었다.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있다.
ⓒ 김용국
그나저나 벚꽃은 피기 바쁘게 이내 질 때를 걱정하게 만든다. 비바람이라도 불면 후드득 떨어지고 만다. 흰색 혹은 연분홍 꽃은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그 화려함은 단 며칠에 불과하다. 벚꽃만큼 허무한 꽃도 없다. 우리 청춘도, 인생도 그러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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