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기계 닮은 나이키 운동화, 50년 만에 다시 대박 난 사연 [비크닉]
패션 아이템으로 부활
지난 22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출국했다. 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 유럽 원정 A매치 평가전을 치르기 위해서다. 바야흐로 축구의 시간이 도래했다.

패션의 세계에서 ‘스포츠’는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스포츠웨어는 선수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무기인 동시에, 일상 패션 영역에서는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는 뮤즈가 된다. 축구의 계절을 맞아 우리 곁을 지켜온 한 운동화가 떠오른다. 1974년 탄생해 스포츠화로,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스니커즈로 이어져 온 ‘나이키 아스트로그래버’다.
인조잔디 움켜쥔 와플 솔의 혁신
아스트로그래버는 미식축구에서 출발한 신발이다. 나이키 창립 초기 공동 창립자 빌 바우어만이 직접 만든, 그의 집념이 깃든 결과물이다.


이름은 이 운동화의 기능을 가감 없이 설명한다. 아스트로그래버(Astrograbber)는 ‘인조잔디(AstroTurf)를 붙잡는(Grab) 신발’이라는 의미다. 1966년 세계 최초 돔 경기장인 미국 휴스턴 애스트로돔에 사용한 인조잔디 브랜드 ‘아스트로터프(AstroTurf)’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와플 기계에서 영감을 얻은 돌기 형태의 ‘와플 아웃솔’은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접지력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인조잔디 환경에서 경기력을 향상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1970년대 나이키의 철학인 ‘장식 없는 기능적 디자인’을 충실히 따른 이 모델은 미식축구와 야구 등 필드 스포츠의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고기능성 전문화들이 등장하며 아스트로그래버는 잠시 역사 속으로 몸을 숨겼다. 50여 년 전 나이키가 추구했던 ‘기능을 위한 단순함’은 훗날 이 신발이 패션 아이템으로 부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보디’ 감각으로 깨어난 50년 아카이브
잊혔던 전설을 깨운 것은 뉴욕의 패션 브랜드 ‘보디(Bode)’였다. 2024년, 빈티지 코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보디의 손길을 거쳐 아스트로그래버는 50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나이키 스포츠웨어 신발 디자이너 마커스 구글리엘모는 이 작업의 핵심을 “재발명이 아닌 보존”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아카이브를 파고들수록 디자인의 단순함과 높은 활용도에 감탄했다”며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실루엣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런 기조에 지나친 디자인 변화나 기능 추가는 불필요했다. 단순함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단순히 과거의 형태를 복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착용감을 위해 라스트(신발 틀)와 내부 구조를 개선했다. 보디와의 협업을 통해 쌓은 높은 미적 기준은 아스트로그래버를 단순한 운동화 이상의 ‘헤리티지 아이템’으로 격상시켰고, 이는 곧 대중적인 리프레시 모델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일상이 된 스포츠 DNA
부활한 아스트로그래버의 진정한 가치는 소재와 품질에 있다. 마커스 구글리엘모는 “가치를 담기 위해 품질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며 “단순히 아카이브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제품이 프리미엄하게 느껴지기를 원했다”고 강조했다. 70년대 오리지널 모델의 소재를 재현하기 위해 부드러운 가죽과 고급스러운 스웨이드, 섬세한 메쉬 소재를 사용했다. 아일렛, 백 탭 등에서 볼 수 있는 빈티지 디테일은 초기 제품에 대한 오마주다.

필드 위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기능성 신발이었던 아스트로그래버는 이제 명확한 ‘라이프스타일 슈즈’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깔끔한 디자인 덕분에 어떤 스타일에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50년 전의 혁신적인 아웃솔이 오늘날 가장 세련된 패션 포인트가 된다는 점은 오직 나이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저력이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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