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지려고 작정한 듯한 당의 공천

공천이 원래 시끄럽다지만 보수 쪽에서 유독 그랬던 건 2000년과 2008년이었다. 탈당자들의 당까지 급조됐다.
이회창 체제인 2000년 공천은 ‘학살’로 불리곤 했다. 계파 보스들이 배제됐는데 김윤환(허주)·이기택 등이 포함됐다. 허주는 특히 이 전 총재에겐 ‘정치적 은인’이었다. 부담이 컸던 이 전 총재는 “왜 공천 개혁을 하려는가” “나의 사심이나 이기심이 동기가 되지 않았나” 등을 두고 고심했다고 적었다. 결국 민국당이 창당됐고 4월 초엔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발표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구도에서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1당을 유지했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청산’이란 명분이 있었고, 그걸 뒷받침할 새 인물들이 있었다. 오세훈·원희룡·김부겸 등이다. YS의 차남 김현철이 주도한 1996년 총선이 홍준표·이재오·김문수 등으로 보수의 이념 지평을 넓혔다면, 2000년 총선은 ‘민주당 쪽과 결이 다른 386’으로 세대 지평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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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이래 한심했던 보수 공천
이번에도 '개혁'이라며 '윤 어게인'
무능·무개념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갈등 와중인 2008년에도 ‘학살’ 얘기가 나왔다. 들여다보면 좀 다른 풍경인데 “박 전 대표 측은 미흡하지만 (지역구) 공천 결과를 받아들였다”(강창희)고 했다. 사달이 난 건 비례대표 쪽이었다. 그래도 한나라당이 과반(153석)을 했고 친박연대(14석)·친박무소속(12석)도 선전했다. ‘폐족(廢族)’(안희정)을 자처할 정도로 노무현 정권이 외면받은 덕에 보수 쪽에 인재들이 몰렸다.
공천을 정당 엘리트의 충원이라고 본다면 보수 정당에서 제대로 공천이 작동한 건 여기까지다. 조금 더 후하게 보아도 보수·진보 총동원령 속에 치러진 2012년까지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은 “1996~2012년까지만 그런대로 괜찮았고 그다음부터는 갈수록 한심한 공천”이라고 평한다.

실제 2016년, 박 전 대통령은 더 편협해졌다. 그나마 이명박·박근혜란 둘은 리더십이라도 있었는데 그 이후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보다 훨씬 못했다. 보수가 지역·세대·이념·계층 모두에서 밀리는 비주류가 됐는데도 이들은 주류인 양 나른했다. 2020년 공관위원장을 지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당에서 추천한 사람 중엔 쓸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훨씬 더 그럴 것이다. 누가 이 당에 오려고 그러겠나”라고 토로했는데, 공관위원장 시절 그 역시 초반엔 물갈이, 후반엔 돌려막기를 하다가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더 나빠졌다. 연이은 참패로 수도권에서 충원이 안 되면서 민심에 둔감한 이들이 당을 장악했다. 그사이 민주당은 선거에 도통하게 되고 국민의힘은 숙맥이 됐다.
이 지경이면 비상한 접근이 필요한데, 당 지도부는 물론이고 이정현 공관위원장은 여전히 ‘개혁’ ‘교체’를 외칠 뿐 좌충우돌하고 있다. “첫날부터 야전 잠바를 입고 나오는 퍼포먼스는 이정현이 얼마나 무개념인가를 알 수 있다. 생각 없고 열정만 가득한 게 가장 위험하다. 높은 국정 지지도, 큰 격차의 정당 지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콘셉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이 그냥 변화와 쇄신을 말로만 하면 소구가 되나”란 정치컨설턴트 박동원의 비판에 공감한다. 경기도지사 선거판도 못 짜 쩔쩔매니 말해 무엇하겠나. 더욱이 컷오프·낙천으로 비워낸 자리에 부정선거론자나 ‘윤 어게인’파가 어른거린다니?
생전의 정두언은 ‘개혁 공천’을 두고 이렇게 냉소한 일이 있다. “(공천) 교체율을 높이면 공천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신나게 된다. 부탁받은 걸 반영할 소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교체율을 높이더라도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바꿔야 개혁이지, 그 밥에 그 나물식으로 교체하는 게 무슨 개혁인가.”
이젠 그 나물에 그 밥만도 못하다. 지려고 작정한 당 같다. 오랜 당료 출신으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정치인마저 이러는 걸 보면 국민의힘이 얼마나 속까지 무능해졌는지 절감하게 된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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