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영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호국신산’ TSMC 가동 멈출라… 대만, 탈원전 철회

11~12일 치 비축… 30% 이상 중동산
이란 전쟁 장기화 땐 블랙아웃 우려
중국 ‘대만섬 봉쇄’ 시나리오도 영향
대만이 사실상 탈원전 정책을 철회했다. 지난해 5월 마지막으로 가동 중이던 마안산 원전의 상업 운전을 중단하면서 탈원전에 성공한 지 10개월 만이다. ‘핵없는 국가’를 가리키는 ‘비핵가원’(非核家園)은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정체성과 같았지만, 인공지능(AI) 산업의 전력 수요 확대와 이란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 앞에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만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 21일 “제2·제3 원전이 재가동 조건을 충족한다”면서 원전 재가동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원전이 없어도 대만의 전력 공급은 2032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지만, 저탄소 발전과 AI 관련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전력공사(TPC)에 따르면 AI 산업의 확장으로 대만의 신규 전력 수요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00만kW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증가량의 2~2.5배다.
‘비핵가원’은 민진당 소속인 차이잉원 전 총통이 2016년 집권하면서 내세운 핵심 공약이다. 민진당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발생한 후 일본처럼 지진이 많아 불안해하던 대만의 민심을 적극 공략했다. 차이 총통은 제1·제2·제3 원전에 각 2기씩 가동 중이던 총 6기의 원자로를 2025년까지 폐쇄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1·제2 원전에 이어 지난해 5월 17일 제3 원전인 마안산 원자로의 상업운전을 중단하면서 대만은 ‘탈원전 국가’가 됐다.
차이 정부는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2025년까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LNG 50%, 신재생에너지 20%, 석탄 30%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TPC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의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비중은 천연가스 47.8%, 석탄 35.4%, 재생에너지 11.9%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대만이 전력생산의 절반을 의존하는 LNG는 100% 수입에 의존한다. 영하 160도 이하의 초저온에서 보관해야 해서 대량 장기 보관도 어렵다. 야당은 LNG 수입이 막히면 대만의 ‘호국신산’으로 불리는 반도체 회사 TSMC의 가동이 멈출 수 있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TSMC는 대만 전체 전력의 12.5%를 사용한다. 중국이 대만섬을 포위·봉쇄하면 LNG 수입이 막혀 10일을 버티기 힘들다는 안보 우려도 에너지위기론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8월 제3 원전 재가동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결정타였다. 라이 총통은 반대표를 촉구했지만, 찬성 표가 434만여표(74.2%)로 반대 151만여표(25.8%)의 3배에 육박했다. 유권자의 25%가 찬성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지만, 여론의 향배는 확실히 드러났다.
줘룽타이 대만 행정원장(총리)은 지난해 11월 입법원 대정부 질의에서 “원전이 안전하다면 재가동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만 경제부는 같은 달 폐로에 들어간 제1 원전을 제외하고 상업 발전을 종료한 제2, 제3 원전은 재가동 가능하다는 ‘원전 재가동 현황 분석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달 들어 이란전쟁이 발발하면서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대만의 LNG 비축량은 11~12일 치에 불과한데 3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규모 정전인 ‘블랙아웃’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TPC는 이달 말까지 원전 재가동 계획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대만 경제부는 2028년부터 순차적으로 재가동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가능하다고 본다.
라이 총통은 22일 “비핵가원 목표를 지난해 성공적으로 달성했기 때문에 정책을 번복한 것은 아니다”라며 “전력 수요 증가와 기후변화 대응, 지정학적 변화에 따라 에너지 전략 재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이번 결정을 정당화했다.
원전 재가동을 주장해온 야당은 민진당의 뒤늦은 정책 뒤집기를 비난했다. 제1야당인 국민당 왕훙웨이 의원은 이날 “민진당이 무모하게 제3 원전을 폐쇄했다가 1년도 안 돼 수조 원을 들여 재가동하려 한다”며 “잘못된 정책이 부패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양즈위 대변인은 “민진당이 원자력 에너지를 낙인찍고 왜곡하며 에너지 정책을 이념 투쟁으로 끌어올려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공격했다.
탈원전을 지지해온 환경단체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대만 어머니기후행동연합 사무총장이자 대만국립대 명예교수인 쉬광중은 “제2 원전은 산자오 단층에서 수㎞ 거리에 있고 제3 원전 아래에도 단층 구조가 존재한다. 전 세계 어디에도 단층 위에 건설된 원전은 없다”며 “라이 총통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듣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야생생태협회 소속 차이야잉 변호사도 “라이 총통은 ‘핵 안전 확보, 핵폐기물 해결, 사회적 합의’라는 원전 재가동 3대 원칙을 제시했다”면서 “핵 안전은 애초에 보장할 수 없고 고준위 핵폐기물도 현행 법규와 부지 선정 문제로 해결 불가능한 상황에서 폐기물을 더 늘리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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