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덮친 사모대출 ‘펀드런’ 공포…美아폴로 환매 절반만 수용

미국 월가에서 사모대출 위기가 부각되면서 ‘펀드런’(대규모 환매) 위험이 커지고 있다. 돈을 돌려 달라는 투자자들의 요청이 속출하자 주요 운용사들이 빗장을 걸어 잠갔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대형 운용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는 이날 투자자 서한에서 사모대출펀드 ‘아폴로 부채 솔루션스’에 대해 순자산 대비 11.2% 규모의 환매 요청을 받았지만, 환매 한도를 5%로 제한했다고 밝혔다. 요청 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펀드의 순자산은 2월 말 기준 151억 달러(약 22조5000억원)다.
최근 월가에서는 이런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모건스탠리와 클리프워터, 블랙록 자회사 HPS 인베스트먼트 등은 환매 요청이 급증하자 환매 한도를 순자산의 5~7% 수준으로 제한했다. 블랙스톤은 7.9%의 환매 요청을 소화하기 위해 임직원 자금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블루아울은 일부 펀드의 환매를 영구 중단했다.
사모대출은 미국 당국의 은행 규제 강화 이후 은행 대출이 어려운 중견·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로 급성장했다. 사모펀드나 자산운용사 같은 비은행 투자기관이 투자자 자금을 모아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구조다. 투자자 입장에선 높은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선 비싼 금리를 감수하더라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문제는 사모대출이 경기 둔화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이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준 투자자 사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졌다. 사모대출을 이용하는 기업 상당수는 자기자본이 크지 않아 만기가 돌아오면 돈을 갚는 게 아니라 새 대출로 갈아타는 방식을 이용해왔다. 기업이 계속 성장한다는 전제 하에 돌아가는 구조라 외부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투자자 손실이 연쇄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운용사가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값을 더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김선경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현재 사모대출 시장은 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환경에서 규제·감독 공백을 틈타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며 “중동 사태로 경기가 둔화하고 물가 상승 압력 확대로 금리 인하가 어려워진다면 사모대출의 부실이 증가하고 하이일드채권, 레버리지론 등 여타 시장으로 위험이 확산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반론도 있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사모대출이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규모나 비중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는 비교되지 않게 적은 수준”이라며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은행권 총자산 중 부동산 대출은 33%인 반면, 현재 은행권 총자산 중 사모신용기관 대출은 1.2%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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