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산> 이럴 거면 제목을 바꿔야겠네

김지은 2026. 3. 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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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그거 봤어?] 기안84와 이토 준지의 만남을 보며... 인생의 변화는 사람으로부터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20일 오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어린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를 만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 이토 준지와 만난 기안 84 자신의 마음을 일본어로 이토 준지에게 전하는 기안 84
ⓒ MBC
기안84는 6개월 정도밖에 배우지 않은 일본어로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단어를 조심스럽게 고르며 대화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토 준지에게 자신이 그린 초상화를 선물하고, 손수 만든 도시락을 건네며 연신 감격스러워했다. 또 이 만남을 위해 힘써주고 통역을 도와준 강남에게도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감동적인 장면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 제목을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나 혼자 살 수 없다> 혹은 <혼자지만 함께 산다>, <혼자서는 못 살아> 이런 걸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들

프로그램 초창기엔 혼자 사는 유명인의 날것 그대로의 일상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무지개 회원들끼리 운동회나 모임을 하는 '함께' 하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또 출연자 단독 출연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나올 때가 더 많아졌다. 이들은 혼자 살지만, 결코 혼자 살지 않는다. 홀로 있는 시간에 비축한 에너지를 타인과 나누고, 다시 그들에게서 새로운 기운을 얻으며 살아간다.

나는 스스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 혼자 일한 지난 몇 년간,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쌓인 에너지를 타인과 나누고 또 다른 에너지를 얻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지인과 함께 운동을 하고, 독서 모임을 갖는다. 사람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힘과 온기가 있다.
▲ 기안84의 우상 이토 준지 일본의 저명한 공포 만화 작가 이토 준지
ⓒ MBC
기안84가 이토 준지를 만나 감격하는 장면을 보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는 기안84처럼 저렇게 만나고 싶은 롤모델이 있어?" 남편은 고개를 저었고, 나 역시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도, 취미도 자주 바뀐 탓에 특별히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대상이 없다는 게 내심 아쉬웠다. 기안84를 보니 누군가를 향한 동경이 현재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틀 뒤인 22일 참여한 'HEAT & RUN' 마라톤에서 뜻밖의 답을 찾았다. 이 마라톤은 '프로야구 팬들을 위한 단 하나의 마라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하는 대회로 각자 응원하는 팀의 야구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라톤이다. 나는 롯데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 출발 전, 대기하고 있는 참가자들 출발 지점과 도착지점 표시가 'HOME'이라고 되어 있다.
ⓒ 김지은
주로에는 10개 구단의 다양한 선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앞서가던 한 참가자가 지친 기색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는 삼성 구자욱 선수의 이름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아니, 구자욱 선수 유니폼을 입고 이러시면 안 되죠. 힘내세요!' 신기하게도 내 응원이 닿았는지 그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나 역시 걷고 싶을 때마다 내가 입은 유니폼에 마킹된 '이대호' 이름을 떠올렸다. 비록 이대호 선수가 빠른 발로 유명하진 않지만(오히려 그 반대지만), 그의 끈기와 투지를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거창한 롤모델은 없을지라도 인생의 굽이마다 기대고 의지해 온 '순간의 이름'들은 늘 있었다.

학창 시절 "넌 잘될 거야"라며 등을 두드려준 선생님, 재수 시절 도서관 옆자리를 지켜준 친구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야구 선수들까지. 나는 매 순간 그 이름들에게 힘을 얻고, 기대며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 덕분에 내가 산다
▲ 이토 준지 덕분에 시작하게 된 일본어가 재미있어진 기안84 난생 처음 공부가 재미있어졌다는 기안84
ⓒ MBC
다시 방송 이야기로 돌아가, 이토 준지를 만나고 온 뒤 기안84는 강남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꿈같은 하루였다고 말했다.

방송 말미에서 그는 이토 준지 선생님 덕분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가 재밌는 건 처음이라며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강남에게 네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토 준지와 강남으로 인해 기안84의 삶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생의 변화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이대호에게 달리는 힘을 얻고, 글을 쓰면서는 성심성의껏 기안을 돕는 강남을 닮고 싶어졌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 마음과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실히 살다 보면, 어쩌면 기안84가 경험한 '꿈 같은 하루'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역시 인생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나 혼자는 결코 못 산다'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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