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상병 엄마, 아들 10주기 현충원에서 "대통령님" 부른 까닭

소중한 2026. 3. 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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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 홍정기 상병 떠난 지 10년 추모제... 여전히 국가보훈부는 국가유공자 인정 안 해

[소중한, 이정민 기자]

▲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 군 복무 중 아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리고도 부실한 의료체계로 인해 목숨을 잃은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인 24일 오전 유가족들과 지인들,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이정민
"대통령님께 묻고 싶어요. 이 나라를 믿고 우리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도 되느냐고요."

10년 전 오늘 군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는 지금도 아들을 온전히 추모하지 못한 채 국가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 홍정기 상병(사망 당시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아들의 10주기에 현충원에서 읽어 내려간 편지에는 곳곳에 뼈가 담겨 있었다.

"정기야. 엄마가 너를 잃고 알게 된 세상, 너도 그곳에서 보고 있지? 국가 수호를 위해 의무복무로 군에 보냈더니 전쟁도 아닌데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 (네 죽음이) 국가 수호와 관계가 없다고 하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기가 찬다. 네게 군복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태어난 운을 돌려주는 기회'였지. 그 대한민국이 상식적이고 정의롭다면 네 영전에 사과하고 합당히 명예를 회복시키리라 믿는다. (중략) 정기야. 미안하고 사랑해."

홍 상병은 2016년 군복무 중 급성 백혈병 증상을 보였는데도 제때 치료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훈련까지 하다 결국 숨졌다. 홍 상병의 죽음을 순직 3형(국가안보·국민보호와 직접 관련 없는 직무수행 중 사망)으로 처분했던 국방부는 그나마 2024년 그의 죽음을 순직 2형(국가안보·국민보호와 직접 관련 있는 직무수행 중 사망)으로 수정했지만, 국가보훈부는 여전히 그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숨진 병사의 명예회복, 유족 구하는 길"
▲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 군 복무 중 아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리고도 부실한 의료체계로 인해 목숨을 잃은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인 ?24일 오전 유가족들과 지인들,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이정민
박씨는 2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아들의 10주기 추모제를 지낸 뒤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가를 믿고 국가 수호를 위해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에게 돌아온 건 '네 자식의 죽음은 다르다'는 답변이었다"라며 "(아들을 잃었을 때) 10년쯤 지나면 좀 괜찮으려나 생각했는데 여전히 국가는 '네 자식의 죽음은 중요한 죽음이 아니다'라고 저를 밀어내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내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걸 받더라도 제 일상은 온전히 되찾을 수 없다. 지난 10년 뼈저리게 느낀 것"이라며 "진심을 다해 우리를 위로한다고 해도 그 아픔을 보듬으면서 살기가 쉽지 않은데 왜 아직도 국가는 우리를 길 위에 세워두고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님께서 조금만 살펴본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며 "병사 한 명을 구하는 건 한 가족을 구하는 것이며, 숨진 병사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 또한 유족을 구하는 것과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10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또한 "국방부가 (홍 상병의 죽음을) 국가수호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해 순직(2형)으로 인정했는데도 국가보훈부가 그렇지 않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곳간의 쌀이 한정돼 있으니 국가유공자를 남발해선 안 된다는 발상으로 유가족들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더해 "여기(현충원) 장군 묘역이 따로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국가보훈부는 병사들에 대한 적절한 처우와 보상보다는 장군 보훈 같은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라며 "대한민국 국민들이 봤을 때 '돈 없고 백 없으면 우리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구나'라는 관념을 계속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법까지 바꿔낸 엄마의 10년 발자취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어머니 박미숙씨와 군 사망사건 유가족, 현역 장병 부모 모임, 군인권센터가 지난해 8월 2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국가배상 항소심 재판부 탄핵 청원 개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중 박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전선정
박씨는 지난 10년간 의미 있는 발자취들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2024년 12월 이뤄진 국가배상법 개정은 박씨가 거리, 법원, 국회에서 끊임없이 호소한 데에 따른 결과물이다.

1964년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 파병 후 용사·유가족에게 줘야 할 배상금이 늘어나자 군경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국가배상법을 바꿨다. 이러한 이중배상금 조항은 1972년 유신헌법에 아예 못 박혀버렸고 1987년 개헌 때도 수정되지 못한 채 최근까지 살아 있었다.

홍 상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때도 이 점이 문제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1심 재판부는 2023년 2월 홍 상병 유족과 국가에 화해를 권고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의 법 테두리 안에선 배상할 방법이 없으니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25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합의를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유족은 1심에서 패소했다.

이후 박씨는 국가배상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냈고 2024년 12월 국회는 군경 당사자의 배상청구권과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을 분리해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유족에게 배상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이 개정 후 많은 군 사망사건 유족들이 더 이상 홍 상병 유족과 같은 일을 겪지 않게 됐다.

그런데 정작 박씨는 본인의 2심 재판부로부터 이해하기 힘든 판결문을 받아야 했다. 2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800만 원(다른 가족 포함 총 19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소송 비용의 80%도 유족이 부담하도록 했다. 박씨는 "내 자식이 개값만도 못하냐"라고 항의하며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함께한 다른 유족들... 아버지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 군 복무 중 아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리고도 부실한 의료체계로 인해 목숨을 잃은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인 24일 오전 유가족들과 지인들,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이정민
한편 이날 10주기 추모제엔 다른 군사망사건 유족들도 참석했다. 고 황인하 하사 아버지 황오익씨, 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 안미자씨, 고 박세원 수경 어머니 박서현씨와 고 백주민 일병·고 심준용 상병·고 김도현 상병 유족이 홍 상병에게 애도를 표하고 유족에게 위로를 건넸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모임인 '아말다말(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무사귀환 부모연대)' 회원들과 군인권센터 활동가들도 추모제에 자리했으며 김민석 국무총리는 조화를 보냈다.

홍 상병의 아버지는 이들을 향해 "아들이 떠난 지 벌써 10년이다. 변함없이 매번 자리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덕분에 저희는 위로를 얻는다. 여러분 덕에 힘내서 살아가고 있다"라며 "매년 개나리가 필 때 즈음이면 우울하다. 그 마음을 떨치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녀 보기도 하지만 자식놈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그게 유족의 운명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홍 상병의 아버지가 "10주기를 맞아 아들이 좋아할 10년 된 와인을 준비했다"라고 하자 홍 상병의 형이 와인을 동생 영정 앞에 올렸다.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놈 하나 더 있어서, 이렇게 술이라도 한 잔 더 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울먹였다.

아래는 어머니 박씨가 아들 영정 앞에서 낭독한 편지의 전문이다.

사랑하는 정기야. 너를 안아보고 만져보지 못한 세월이 10년이구나. 개나리는 이때만 되면 시리게 노랗게 10번 피는데, 너는 한 번 떠난 뒤로는 안 오는구나. 일년에 한 번 다녀가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네가 간 그곳은 너무 멀어 못 오는가 보다. 10년 여전히 너는 똑같은 모습으로 내 가슴속에 있구나. 아침에 눈 뜨면 네 생각이 나고 어딜 가든 너를 느낄 수 있었고 밤에 잠을 잘 땐 꿈속에서 네가 와주길 늘 고대하지만 꿈에 널 보는 것도 어렵구나. 자주 꿈 속에서라도 찾아와 주면 좋겠어.

정기야. 엄마가 너를 잃고 알게 된 세상, 너도 그곳에서 보고 있지? 청년 정책 소리치고 출산율 갖고 정치인들 소리치는 거 보면 비웃어 주고 싶다. 귀하게 애지중지 키워 국가 수호 위해 의무 복무 보냈더니 전쟁도 아닌데 죽음으로 보내놓고 국가 수호와 괸계 없다 하니 말 같지도 않는 소리에 기가 찬다. 답답하겠지만 조금 더 기다려 줘.

너에게 군복무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태어난 운을 돌려주는 기회"였지? 그 대한민국이 상식적이고 정의롭다면 너의 영전에 사과하고 합당히 명예를 회복시키리라 믿어. 오늘 여기 너를 기억하며 네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주시는 분들도 같이 자리해 주고 계신다. 하늘에서 이분들에게도 좋은 기운, 복 보내주고 곳곳에 상식적이지 못하고 약속하고 이용만 하는 사람들,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게라도 벌을 주렴.

정기야 미안하고 사랑해.

너를 잃은 10년 되는 날 엄마가.
▲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 군 복무 중 아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리고도 부실한 의료체계로 인해 목숨을 잃은 고 홍정기 일병(추서 계급 상병) 10주기인 ?24일 오전 유가족들과 지인들,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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