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해!

한선남 2026. 3. 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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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뒷부리도요를 찾아서 ②]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에 가다

"큰뒷부리도요을 찾아서, 수라갯벌과 뉴질랜드를 잇-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3월 25일 뉴질랜드 황아누이에서 열리는 큰뒷부리도요 환송식으로 향하는 한국 방문단의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기자말>

[한선남 기자]

▲ 황아누이 강 하구 갯벌에서 만난 큰뒷부리도요 황아누이강 하구 갯벌에서 AJD라는 인식표를 달고 있는 큰뒷부리도요는 매년 3월 25일 오후 5시에 황해를 향해 날아간다. 날아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 한선남
큰뒷부리도요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거리를 이동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를 출발해 한국 서해안과 중국연안을 거쳐 알래스카까지 총 3만km를 이동한다. 새만금 지역에서 어업을 하던 어민들은 큰뒷부리도요를 '쫑쨍이'라 불렀다 했다. 뉴질랜드 마오리부족은 '쿠아카', 알래스카 유픽부족은 '추헤르팍'이라 부른다.

푸코로코로에서 차로 6시간을 달려 더 남쪽으로 향했다.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초원처럼 넓고 평평했던 땅들이 어느새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구릉지대로 변하더니 깊고 높은 산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황아누이강을 만났고 드디어 황아누이 공동체의 마을회관이라고 소개받았던 머래이(TE AO HOU MARAE)에 도착했다.

그런데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잠깐 문 밖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황아누이 일정을 준비해 준 빌리 활동가가 아직 오지 않은 어르신들이 있다고 했다. 포휘리(Powhiri)라는 환영의식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전혀 감을 못잡았는데, 문밖에서 기다리라 하니 잔뜩 긴장이 됐다. 20여 분 후 여성 어르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손짓으로 문 밖에 선 이방인들을 불렀다. 어르신의 손짓을 따라 중앙홀로 들어가니 지역을 대표하는 어르신들이 앉아 계셨다.

마을의 대표 역할을 맡고 있는 제프리 히팡요님의 첫마디는 'Welcome back home,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였다. 지구 반대편에 누구하나 아는 사람은 없는 이곳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우리들에게 집에 온 걸 환영한다니.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을 때, 어르신들은 각자 이름과 소개를 해 주셨다. 직업이나 나이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마오리 공동체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러면서 '쿠아카는 우리의 조상이자 가족이므로 쿠아카가 머무는 지역에서 온 너희들 역시 우리에게는 가족과 다름없다'고 하셨다.
▲ 황아누이 마오리 선생님들과 함께 큰뒷부리도요를 찾아 뉴질랜드에 온 한국방문단과 마오리 공동체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 세 번째 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에스텔 톰슨이다.
ⓒ 한선남
다음날 에스텔 톰슨씨를 만나 쿠아카의 의미에 대해 듣고 나서야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에스텔은 알래스카 유픽부족 출신이지만 지금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다. 큰뒷부리도요의 번식지인 알래스카에 살며 참석하게 된 포럼에서 뉴질랜드 마오리부족 제프리를 만나게 됐고 그들은 가족이 됐다. 에스텔은 "쿠아카는 우리의 조상이자 가족, 인생의 선생님"이라고 했다. 마오리부족은 쿠아카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배를 타고 구름에 가려졌던 뉴질랜드에 도착했다고 했다. 쿠아카를 따라나선 여정 끝에 현재의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니 쿠아카를 조상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에스텔은 쿠아카에게 배운 것을 소개해 줬다.

자신이 나고 자란 알래스카는 쿠아카가 번식을 하고 이제 막 태어난 어린새들이 뉴질랜드를 향해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에스텔은 "새들도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찾아 나서는데, 우리도 무엇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힘을 받을수 있었다고 했다. 또 무리를 지어 이동을 할 때 리더는 혼자이지만 주변의 동료들이 언제든 리더의 역할을 번갈아 가며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지 않고 누구라도 리더가 될 수 있고 그 역할을 해낼 준비가 되어 있기에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도 더 자신감을 갖고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에스텔은 "쿠아카는 우리에게 공동체에서의 역할과 관계, 리더쉽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맑은 가을하늘 아래 황아누이 강가에 앉아 에스텔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소설같기도 하고 꿈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텔은 폴리네시아의 많은 지역이 새와 관련한 전설이 있고 새를 통해 배우는데, 한국은 어떻냐고 물어왔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그러한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도 전에 갯벌이 사라졌다고, 우리는 사계절 찾아오는 서로 다른 새들을 배우기도 전에, 그 이야기를 남겨줄 어른들이 살던 고향이 파괴 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우리에게도 무언가 전해질 역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우리에게도 세계를 여행하는 새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딘가에는 남아 있지 않았을까.
▲ 큰뒷부리도요 황아누이 갯벌에 있던 큰뒷부리도요가 만조가 되자 상류로 이동하고 있다.
ⓒ 한선남
문득 바다를 보는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AJD가 나타났다. 발목에 흰색에 검은 글씨로 AJD라는 인식표가 붙여진 쿠아카다. 2008년 처음 인식표를 붙였는데, 관찰 결과 매해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황아누이를 떠나 황해로의 여행을 나선다고 했다. 3월 25일 오후 5시다. 올해로 18년째 AJD를 관찰하고 있다하니 아마도 20살은 넘었을 쿠아카는 손자 손녀들과 가족을 이뤄 황아누이 강가에 왔다. 이미 많은 새들이 뉴질랜드 각지와 호주를 출발해 한국 서해안으로 이동했지만 이들은 언제나 3월 25일에 출발한다. 그런 이유로 AJD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아졌고 이들의 안전한 여행과 무사귀환을 바라는 환송식이 매년 열리고 있다. 뉴질랜드 황아누이 사람들에게 쿠아카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조금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East Asian-Australasian Flyway, EAAF)는 중국과 한국이 공유하는 황해의 갯벌이 핵심적인 중간기착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전 세계의 갯벌 중에서도 한국 서해안이 갖는 의미는 먼거리를 여행하는 새들이 가장 지친 상태로 도착하는 지역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들이 이곳에서 충분히 먹고 쉬지 못하면 번식에 성공하기 힘들고 이는 곧 생물종이 절멸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질랜드 북섬, 황아누이 강을 끼고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이 쿠아카로 연결된 한국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곳 사람들과 연결될 수는 없을까.
 "큰뒷부리도요을 찾아서, 수라갯벌과 뉴질랜드를 잇-다" 프로젝트
ⓒ 한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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