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억 기부한 '얼굴 없는 천사'…12억 들여 기념관 짓는 전주, 왜

김준희 2026. 3. 24. 14: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노송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확인하고 있다. 액수를 세어 보니 9004만6000원이었다. 지난해까지 26년간 ‘얼굴 없는 천사’의 총 기부액은 11억3488만2520원에 달한다. [뉴스1]


“기부 문화 확산…6월 준공 목표”


전주시가 나눔·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을 짓고 있다. 하지만 이미 기념 공간·시설·조형물이 여럿 있는 데다 사업비가 ‘얼굴 없는 천사’가 26년간 기부한 총액인 11억여원보다 큰 것을 두고 “선행은 널리 알려야 하지만,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전주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13일 중노송동에서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착공식을 열었다. 2000년부터 26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노송동 주민센터에 성금을 기부해 온 익명 기부자의 숭고한 나눔 정신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전주시는 국비·지방비 12억7000만원을 들여 지상 2층, 연면적 165.63㎡ 규모로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오는 6월 준공이 목표다. 1층은 ‘얼굴 없는 천사’의 나눔을 기념하는 전시실과 시민 휴게 공간, 2층은 기부 역사·기록으로 꾸민 자료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름과 직업은 물론 모든 게 베일에 싸인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해 12월 30일에도 9004만6000원이 든 상자를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두고 사라졌다. 26년간 ‘얼굴 없는 천사’의 총 기부액은 11억3488만2520원에 달한다. 전주시는 2024년까지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 등 소외 계층 7241가구에 현금이나 쌀·연탄·난방 주유권 등으로 지원했다. 지난해 성금도 지역 학생을 위한 장학금 등으로 쓰였다.

지난 13일 전북 전주시 중노송동에서 열린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착공식에서 우범기 전주시장(가운데 한복 차림)과 남관우 전주시의회 의장 등 관계자들이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 전주시]


“조용한 선행 훼손 우려” 지적도


전주시는 그간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조형물·시설 등을 만들었다.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 마을을 ‘천사마을’로 부르고, 주변 도로를 ‘천사의 거리’로 조성했다. 기념비·쉼터·안내판도 곳곳에 설치했다. 노송동 주민센터 한쪽엔 작게나마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이 운영 중이다.

여기에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 기념관을 새로 짓는 것을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노동식 얼굴없는천사축제 조직위원장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기부 문화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직위는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해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조직위 측은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대한민국 나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기념관이 그의 나눔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자 공동체 회복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중복·과잉 투자”라는 시각도 있다.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얼굴 없는 천사’의 핵심은 익명성과 조용한 선행인데, 과도한 기념 시설은 외려 그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선행은 기념할 가치가 있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너무 과하면 아니한만 못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30일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얼굴 없는 천사'가 몰래 두고 간 성금 상자. [연합뉴스]


“전임 시장 때 추진…행정 복합문화공간 확장”


‘사업비 논란’에 대해 전주시는 “기념관 하나만 보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여러 곳에 흩어진 ‘얼굴 없는 천사’ 기념 공간·시설을 한 공간으로 통합해 관리·정비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념관 건립은 시작일 뿐 장기적으로 노후화한 주민센터 신축을 포함해 행정 복합문화공간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주시에 따르면 기념관 건립 사업은 전임 시장 때인 2020년 말 결정됐고, 2021년부터 부지 매입과 건축 설계 등이 추진됐다. 전주시 관계자는 “이 사업은 천사마을 주민들이 원해 시작됐다”며 “애초 시는 조용히 진행하려 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이를 알려 기부 참여와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일부 주민 요청으로 착공식도 하게 됐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