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한 'K드라마', 결국 큰 일 냈다

박은영 2026. 3. 2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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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의 일본 앞담화] 세계에서 유일하게 <겨울연가>를 영화로 상영중인 일본

[박은영 기자]

"준상이 맞지? 너 맞지?"

죽은 줄 알았던 준상(배용준)을 만난 유진(최지우)이 걸음을 멈추자 극장 안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미안해, 몰라봐서 정말 미안해."

유진이 울음을 터트리자 객석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울연가>가 돌아왔다. 이번엔 TV가 아닌 스크린으로다.

지난 3월 6일 <영화 겨울연가>가 일본 전국 60여 개 극장에서 개봉됐다. 1400분 분량의 이야기를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2시간으로 압축했다. 원작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윤석호 감독을 비롯 주요 제작진들이 그대로 영화에 참여했다.

이번 영화는 <겨울연가>의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가 일본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기획·제작했다. 드라마의 영화화를 바라는 일본 팬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이 아닌 일본의 극장에 <겨울연가>가 걸리게 됐다.

평일 오전, 상영관 중 하나인 신주쿠 피카딜리를 찾았다. 내 한국어 제자이자, 오랜 겨울연가 팬인 지인이 동행했다. 벽 한편에 걸린 <겨울연가> 포스터 앞에는 관객들이 상기된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상영관 안은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여성과 동행한 남성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신주쿠 피카딜리 극장에 걸린 '영화 겨울연가' 포스터
ⓒ 박은영
커다란 스크린으로 돌아온 겨울연가. 화질은 더욱 선명해졌고, 음악은 오케스트라 연주로 풍성해졌다. 아름다운 두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언제 봐도 심금을 울렸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존재가 <겨울연가>의 명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2004년 NHK를 통해 처음 일본 지상파에 방영된 <겨울연가>는 20%를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영시간이 심야였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수치였다. 쿨하고 도시적인 당시의 일본 드라마와 달리,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낸 것이 중장년 여성들에게 제대로 통했다.

무엇보다 흥행의 일등 공신은 강준상(기억을 잃은 후의 이민형)으로 분한 배우 배용준이다. 부드럽고, 배려심 깊으면서도 사랑 앞에 솔직한 준상(민형)은 일본 여성들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그 자체였다. 배용준은 하루아침에 일본의 '국민 첫사랑'이 되었다.

2004년 11월, 배용준의 첫 일본 방문 때는 하네다 공항에 5000여 명의 팬들이 몰리기도 했다. 공항 개통 이래 최대 규모의 인파였다. 일본 매체들은 앞다투어 '겨울연가'와 '욘사마'를 조명했다. 방송사들은 주말극, 일일극 가릴 것 없이 한국 드라마의 판권을 사들였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도 급속히 증가했다.
 2004년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배용준 기다리는 일본 팬들
ⓒ 연합뉴스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케이팝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 뛰어난 음악성과 세련된 안무,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무장한 한국 가수들이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케이팝이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 여론도 변했다.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등의 설문 조사 결과가 물 밀듯이 쏟아졌다. 본격적인 '한류'의 시작이었다.

일본에 사는 내 삶도 바뀌었다. "저 한국 사람이에요"라는 말 만으로 호감을 표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관계 맺기에 소극적인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와 가수 이야기를 접점 삼아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다. 2021년 둘째 아이 출산 때의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문병 오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병원 생활이었다. 그러나 간호사들을 만나며 상황이 바뀌었다.

"사실 제가 샤이니의 오랜 팬이에요. 한국 사람을 만나 너무 기뻐요."
"한국 여성들은 왜 다 피부 미인이에요? 저도 내일 한인타운에 갈 건데 화장품 좀 추천해 주세요."

코로나로 한국 출산을 포기하고, 미역국 대신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로 산후조리를 했지만, 한국에 애정을 가진 일본인들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외롭지 않은 입원 생활이었다. 이 때 만난 간호사들은 나에게는 '출산 선물' 같은 소중한 인연으로 남아있다.

평범한 교민인 내가 실생활에서 변화를 체감할 만큼, 한국을 선망하는 일본인들이 확연히 늘었다. 최근에는 연애, 결혼 상대로 한국인을 선택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2025년 한일 국제결혼이 사상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40%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영화 겨울연가 일본특별판' 포스터
ⓒ KBS
일본 언론들은 한국 문화를 동경하는 일본 여성들이 많아진 것을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꼽았다. 동시에 <겨울연가>를 계기로 한국에 호감을 가진 부모·조부모 세대의 영향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한 편이, 인생의 반려를 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2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인들에게 <겨울연가>가 얼마나 특별한 작품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내 평생 <겨울연가>는 절대 못 잊을 거야. 죽을 때 <겨울연가> 디비디도 같이 묻어달라고 할 거야."

영화가 끝난 후, 붉어진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지인이 내게 말했다.

"한번 더 보러 올래?"라는 그녀의 말에 "그러자"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관 문을 나섰다. 한 시대를 뒤흔든 그 사랑이, 다시 일본 열도를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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