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인생 '탈옥' 영화, 그 속에 숨은 깨알 장치들
[김상목 기자]
|
|
| ▲ <쇼생크 탈출> 스틸 |
| ⓒ 롯데컬처웍스(주) |
하지만 오늘날 명성이 무색하게, 이 영화는 초반 흥행에 실패했고, 개봉 당시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긴 데 그쳤다. 기사회생을 노린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쟁쟁한 경쟁자에 밀려나 '무관의 제왕'으로 그쳤다. 겨우 적자만 면한 개봉 실적, 상복 없는 작품이라면 금방 기억에서 희미해져야 마땅할 터, 그러나 오늘날 본 작품의 위상은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사실 무척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례다.
최상의 조합이 이룩한 결과물
현존하는 미국 대중 문학 거장으로 스티븐 킹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상업적 성과는 자타공인, 과거 홀대 받던 문학성도 재평가 중이다. 무엇보다 '유혹하는 글쓰기'란 작문 지침서를 낼 정도로 독자가 빠져들게 만드는 필력은 명불허전이다. 주로 공포 문학 작업으로 유명하지만, 장르불문 종횡무진 범위를 자랑한다. '사계' 시리즈라 불리는 중편 모음집이 대표적이다. 대다수가 영화화되어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그중 최고봉은 역시 <쇼생크 탈출>일 테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수십 편 넘게 영화화된 바 있지만, 상당수는 원작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자신의 소설 영상화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거장 스탠리 큐브릭에 의한 <샤이닝>조차 성에 차지 않을 정도다. 그런 작가가 이상적인 영화화로 인정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각색을 허락하는 드문 경우가 바로 <쇼생크 탈출>을 연출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다. 심지어 <쇼생크 탈출>은 감독의 공식 첫 장편 영화다.
감독은 장편 데뷔 전 연출한 여러 단편에서 이미 스티븐 킹 작품을 훌륭하게 소화한 바 있다. 창작을 돕기 위해 작가가 단편의 경우 소재 활용 허용 폭을 넓힌 덕분이다. 그렇게 꾸준히 갈고 닦으며 소화한 덕분에 높은 이해도를 갖춘 상태에서 야심 차게 도전한 결과는 원작자를 매료 시켰고, 이후에도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그린 마일>과 <미스트>를 잇달아 선보였다. 이들 작품은 감독의 대표작인 동시에 작가 역시 가장 호평 하는 영화화 작업이다. 그만큼 궁합이 찰떡이다.
훌륭한 각색은 그저 100% 재연에 그치지 않는다. 다라본트는 원작의 팬 일부가 훼손이나 왜곡이라 분격할 정도로 과감한 결말 수정을 선보이곤 한다. 주로 여운 위주로 마무리하는 소설의 종막을 좀 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마침표 찍는 식인데, 스티븐 킹은 대개 전적으로 감독의 판단을 지지하는 편이다. 사전 협의 없이 알아서 수정하거나 변경해도 원작자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물이란 점이 이채롭다.
시나리오 각색의 모범 교본
|
|
| ▲ <쇼생크 탈출> 스틸 |
| ⓒ 롯데컬처웍스(주) |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시간성' 약화는 어쩔 수 없는 휘발 효과로 돌아온다. 주인공이 탈옥 시도를 숨기기 위해 벽에 부착한 '핀-업' 포스터는 원작에선 시대 변화를 암시하기 위해 당대 섹시 심볼로 계속 바뀌지만, 영화에선 어쩔 수 없이 간소화한다. 원작 제목인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처럼 처음 앤디가 친구 '레드'에게 부탁해 얻은 포스터는 리타 헤이워드, 그가 탈옥할 때 빈 감방에 붙어 있던 건 <공룡 100만 년> 속 라켈 웰치의 선정적인 사진이다. 배경만으로 연도를 예측할 수 있는 셈이다. 중간을 건너뛴 게 아쉽지만, 매우 잘 압축한 장면이다.
오히려 교도소가 교정 대신 격리에 치우친 문제를 각인하는 순간들, 레드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체포 후 환갑 때까지 가석방 심문을 받는 장면이나, 50년 복역 후 풀려났으나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브룩스' 일화에서 제약이 두드러진다. 20세기 초 구속된 브룩스가 반세기 후 세상에 나왔으니 적응은 불가능하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금주법과 뉴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지나갔으니 말이다. 앤디 역시 2차 대전 종전 직후부터 베트남 전쟁, 흑인 민권운동과 히피 운동이 터지는 동안 세상 구경 못 했으니 아무래도 따라잡기 쉽지 않았을 테다.
역지사지로 만약 관객(독자)이 21세기 초 <올드보이> 속 오대수처럼 감금되었다가 지금 풀려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나마 오대수는 TV 시청으로 동시대를 추적할 수 있었지만, 영화 초반에 헤매는 것처럼 적응이란 쉽지 않은 노릇. 스마트폰 쓸 줄 모르는 것만으로도 아마 애먹을 테다. 대통령만 역대로 수차례 바뀐 걸 고려하면 체감이 확 된다. 감동 뒤편에 현대 교정 행정 관련 통찰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
| ▲ <쇼생크 탈출> 스틸 |
| ⓒ 롯데컬처웍스(주) |
교도소장의 냉소처럼 당국이 교도소 예산 증액에 투입할 여지는 단 두 가지, 더 많은 교도관을 채용하거나 담장을 더 높게 쌓는 데 쓸 재원 뿐이다. 하지만 앤디는 매주 답장 없는 청원 편지를 보낸다. 교도소 도서실에 책을 늘려 달라는 요청은 몇 년간 메아리가 없었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내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보낸 약간의 예산에 주인공은 편지를 두 배로 늘린다. 그 결과 헌 책 몇 권 굴러다니던 창고는 그가 쇼생크를 벗어날 때는 방 셋을 가득 채우고 문맹에 가깝던 재소자들의 학력 인정 검정고시 학원으로 탈바꿈한다.
영화 속에서 익살맞게 묘사되던 동료 재소자들의 터무니 없는 지적 상태는 촌철살인의 원작 서술을 맛깔나게 살린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이름 'Dumas'를 멍청이, 바보를 뜻하는 속어 '덤애스(Dumbass)'로 잘못 이해하는 동료 '헤이우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장르 분류를 묻자 레드가 뇌까린 것처럼, 탈옥을 다루니 '교육' 항목이라 답하는 것까지 근사하게 영상화한다. 이런 교양 수준 결여는 재소자 뿐 아니라, 교도관에게도 적용된다.
아마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명장면으로 다들 꼽을, 악질 간수 해들리를 앤디가 유산 상속세 회피 아이디어 제안으로 회유하는 것 역시 미국 세법의 난이도와 함께 지식이 힘으로 변환되는 세상 이치를 풍자하는 대목이다. 비록 무기수로 전락했지만, 희망과 자존감을 잃지 않은 전직 은행장 앤디가 폭압적인 간수장을 무력화하는 장면은 친구 레드가 회고할 때 표현하듯 죄수와 간수가 아니라 지적 우위에 선 상담원이 쩔쩔매는 고객을 응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통쾌한 찰나를 넘어서는 그림인 셈이다.
|
|
| ▲ <쇼생크 탈출> 스틸 |
| ⓒ 롯데컬처웍스(주) |
주인공의 통쾌한 탈옥과 응징의 쾌감도 잠시, 종적을 감춘 주인공의 이후 행적은 친구 레드의 회고로 암시된다. '지와타네호', 국경 너머 멕시코의 태평양 연안 관광지에서 앤디는 20년 간의 고초를 치유하려 한다. 모든 기억이 지워진 땅이란 지명의 유래를 레드에게 들려주던 앤디의 짤막 대화가 복선이다. 여기에 결정적 한 수, 원작에선 친구를 찾아가는 레드의 독백에서 끝나던 것을 영상 예술 특성에 천착해 정말로 화면 가득 지와타네호를 구현하고 모두가 보고 싶던 장면을 추가한다.
|
|
| ▲ <쇼생크 탈출> 포스터 |
| ⓒ 롯데컬처웍스(주) |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미국|드라마
2026.03.18. (재)개봉|142분|15세 관람가
감독/각본 프랭크 다라본트
주연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수입/배급 롯데컬처웍스(주)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라니까 했다"...이 대통령의 질책이 드러낸 민주주의 중대문제
- 잔혹하게 폭행하고 사회적 불구로... 가해자의 이름 공개합니다
- 이재명, '그알'에 사과 요구한 이유...박철민 판결문에 해당 방송 적시
- 윤석열의 말을 듣는 순간 예감했다, 정권이 망하겠구나
-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추미애, 가산점이 뭐길래
- 한동훈, 왜 개헌에 반대하나
- 한때 독일 지폐에 등장했던, 숲속에 숨은 아름다운 성
- '친문 저격'에 고민정 반발하자, 송영길 "전체 친문 지칭 아냐"
- 이 대통령 "일터에서 각종 사고 지속, 국정 책임자로서 송구"
- 보철거시민행동 "기후부와 합의, 금강 세종보 천막농성 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