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그 꼴을 봤는데... 우리는 왜 그 팀을 떠나지 못할까

김은식 2026. 3. 2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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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는 최강이 아니다.

낙방과 탈락, 질책과 거절 따위의 세상에 다시 낯을 들고 싶지 않은 무참한 수모를 겪고도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표정 가다듬고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처럼, 야구선수들도 대역전패를 당하고 연속 실책을 저지른 다음 날 어김없이 그라운드에 선다.

이번 시즌 각자의 팀이 어떤 성적표를 남기든, 우리는 또 그 시간을 함께 지나갈 것이다.

우리가 야구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시간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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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의 야구팬의 탄생] 프롤로그-우리는 왜 떠나지 않는가

[김은식 기자]

 지난 12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KIA 타이거즈의 시범경기. 야구팬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야구는 최강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이 응원하는 팀 역시 무적이 아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사실 그리 막강하지도 않다. 그 팀은 간혹 기대 이상의 짜릿한 승리를 안겨주지만,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우리를 괴롭혀왔다.

올해도 아주 운이 좋은 한두 팀의 팬들을 제외하면, 환호성보다 비명을 더 자주 지를 것이고, 뿌듯함보다 분노와 아쉬움에 뒤척이는 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시즌의 개막을 맞는 이 무렵, 우리의 마음은 단순하지 않다. 설렌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긴장에 가깝다. 올해는 좀 다르지 않을까? 아니면, 올해도 또다시?

하지만 우리는 안다. 개막 18연패쯤 당해도, 신인왕 후보라던 선수들이 줄줄이 2군행 버스에 올라타도, 수십억 원을 안겨주며 데려온 '귀하신 몸'들이 병원 신세를 지며 '먹튀'라는 연관검색어에 이름을 올려도, 우리는 결국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몇 번쯤은 눈을 질끈 감고 저녁 6시 반에 다른 약속을 잡으며 '야구'를 금지어로 올려놓겠지만, 어느새 본능처럼 휴대폰 중계창을 열고 순위표를 확인하게 되리라는 것도 말이다.

우리는 늘 실패하면서도 다시 모인다
 2016년 10월 2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대 롯데경기. 1루 관중들이 기회를 못살리는 롯데선수들을 보고 아쉬워하고 있다. 롯데는 올 시즌 NC와 상대 전적 1승 14패에 13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왜 이기지도 못하는 팀을 떠나지 못하는가. 최강이 아님을 알면서도 최강이라 외치고, 무적이 아님을 알면서도 무적이라 우기며, 주말보다 더 간절히 화요일을 기다리는가.

아마도 승패 자체보다도 매일 도전하고 실패해도 또다시 도전하는 일이, 우리에게 각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꼭 불굴의 투지와 근성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도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주저앉을 수도 없으니 허우적대기라도 하는 그 모습에 대한 공감이다. 당장 지더라도, 심하게 되풀이해 지더라도 어떻게든 일어나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길 수 없음을 콧등 시리게 되새긴다는 이야기다.

야구가 원체 그렇다. 대부분의 타석은 1루에도 닿지 못한 채 끝나고, 대부분의 이닝은 무득점으로 지나가며, 대부분의 시즌은 우승에 실패한 채 끝난다. 그럼에도 다시 다음 타석에 서고, 다음 이닝에 나서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무료하지만 팽팽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떠올린다.

낙방과 탈락, 질책과 거절 따위의 세상에 다시 낯을 들고 싶지 않은 무참한 수모를 겪고도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표정 가다듬고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처럼, 야구선수들도 대역전패를 당하고 연속 실책을 저지른 다음 날 어김없이 그라운드에 선다. 아무리 난타를 당해도 9회까지 가야 하고 아무리 승률이 처참해도 마지막 경기까지 치러야 하는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우리는 묘한 위로를 얻으면서도 긴장한다. 야구와 우리 삶에 KO패나 기권패가 없다는 것은 일단 안심이지만 또 질리는 일 아니던가.

다만 그 고단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조금 더 버틴다. 함께 탄식하고 함께 욕하다가 드물게 찾아온 한 번의 승리에 부둥켜안던 사람들. 함께 웃었던 순간으로 시작해 그 몇 배의 시간 동안 함께 울었던 날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그렇게 함께 쌓은 시간들이 자부심이 되어 야구팬이라는, 끈질긴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우리는 늘 실패하면서도 다시 모이는 법을, 기껏해야 미완의 성공에 허탈해하면서도 다시 싸우는 법을 야구장에서 조금은 배웠는지도 모른다. 패배의 불안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몇 번이고 흩어졌다가도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법 말이다.

이번 시즌 각자의 팀이 어떤 성적표를 남기든, 우리는 또 그 시간을 함께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승리는 기록에 남겠지만, 함께 버틴 시간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야구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시간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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