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장기화땐, 대만은 전력부족이 반도체 타격”-옥스포드 이코노믹스

미국-이란 전쟁이 6개월 이상으로 장기화되면, 중동산 액화천연가스(LNG)에 전력원 의존도가 높은 대만은 전력 부족으로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단기적으로는 전력을 다른 부문보다 반도체 산업에 우선 공급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영국 싱크탱크인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23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올린 ‘반도체 산업의 아킬레스건은 에너지 공급이다(Silicon’s Achilles heel is energy supply)’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주요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미국-이란 전쟁과 카타르산 LNG 수출 중단으로 사실상 전 세계 LNG 공급의 약 20%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는 아시아의 에너지 집약적인 기술 사이클에 중대한 충격을 가하고 있다.
위험은 석유, 천연가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걸프 지역 정유시설 가동 차질로 공급이 흔들리고 있는 정유 부산물 황(sulphur) 역시 구리와 코발트 추출에 필수적이다. 이 두 금속은 모두 반도체와 전동화 공급망의 핵심 투입재다.
대만과 한국은 첨단 반도체 생산의 핵심 축에 있고, 일본은 주요 파운드리 업체들이 사용하는 정밀 소재와 제조장비의 상당 부분을 공급한다. 이들 모두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다. 그중에서도 대만은 전력 구조상 역내 다른 국가들보다 구조적으로 더 큰 노출을 안고 있다.
대만의 핵심 취약 지점은 전력 생산이다. 대만은 발전에서 LNG 의존도가 높으며, 특히 지난해 마안산 원전 폐쇄로 에너지망의 핵심 안정 장치 하나가 사라진 뒤 그 의존도가 더욱 두드러졌다. LNG 저장 능력도 약 10~14일분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의 약 3주, 한국의 30~60일분이라는 외부 추정치와 비교하면 크게 뒤처진다.
한편 대만의 첨단 반도체 생산은 점점 더 에너지 집약적으로 변하고 있다. 가장 앞선 반도체인 3나노·5나노 칩 생산에는 막대한 전력과 극도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AI(인공지능) 관련 제조업이 이미 대만전력공사 전체 발전량의 20%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대만의 전력망은 전국 단위로 통합돼 있지만, 전력 수요는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 가장 큰 산업용 전력 부하는 최첨단 공정 팹이 몰려 있는 남부 과학단지에 집중돼 있는 반면, 주거 및 서비스 부문 전력 소비는 북부에 크게 몰려 있다.
이 같은 지리적 집중은 에너지 수요가 높아지는 시기, 특히 겨울철에 중요해진다. 이때 대만 전력 시스템은 사실상 섬 내부에서 전력 차익 배분(intra-island energy arbitrage)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국면에서는 기저부하 전력 용량이 남부의 반도체 생산 클러스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쪽으로 적극 재배분되는 것으로 보이며, 그 대신 북부와 중부 지역은 계획된 부하 차단과 경우에 따라 전력 공급 불안정을 통해 그 조정 부담을 떠안는다. 이런 현상은 2017년 중반 다탄 가스 공급 차질과 2021년 중반 싱다 발전소 고장 당시에도 나타났는데, 당시에도 반도체 단지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력 공급이 조정됐다.
거시지표도 이런 전력망 우선 배분 판단을 뒷받침한다. 모든 에너지 충격은 발생 시점의 조건이 다르고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기술 공급망 상류에서 발생한 에너지 차질에 대한 대만 및 역내의 대응에서는 여전히 직관적인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표준 충격반응함수 분석에 따르면, 대만의 LNG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 경우 국내 전체 산업생산은 통상 즉각적으로 약 0.5% 줄어든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에 대한 초기 충격은 이보다 뚜렷하게 작아, 대략 그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는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에너지 충격의 초기 단계에서는 가동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그 결과 향후 몇 달 동안은 표면적인 생산지표도 비교적 견조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보호에는 상당한 대가가 따른다. 인위적인 에너지 부족이 즉각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초래하고, 다른 부문에서는 물류 비용 부담을 키우면서 곧바로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 압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진다. 충격 발생 후 약 6개월이 지나면 충격반응 계산상 산업생산은 기준선보다 약 0.7%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생산 경로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고 더 지속적인 하향 이동을 겪는다는 뜻이다.
이 같은 모멘텀 상실의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력망 우선 배분의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다른 일부는 첨단 반도체 제조가 가진 냉혹한 물리적 제약을 반영한다. 웨이퍼 제조는 매우 경직된 연속 공정으로, 칩의 복잡성에 따라 생산 주기가 최대 3개월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최첨단 팹에 쓰이는 장비, 특히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처럼 미세한 회로 패턴을 ‘인쇄하는’ 시스템은 극도로 안정적인 전압을 필요로 한다. 이 정도 정밀도에서는 밀리초 단위의 전력 변동만으로도 웨이퍼 한 로트 전체가 폐기될 수 있다.
거시경제적으로 보면 이는 일종의 히스테리시스(hysteresis, 자기이력 현상)를 만들어낸다. 에너지 충격이 단지 일시적으로 생산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는 물론 더 넓은 산업 생산 경로 전체를 장기간 더 낮은 궤도로 밀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능력의 약 60%를 차지한다. 따라서 대만 전력 시스템에 차질이 생기면 글로벌 기술 생산, 특히 아시아의 기술집약적 공급망에 상당한 공급 측면 위험이 된다.
다만 아시아 제조업에 대한 즉각적인 영향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류 전자제품 생산은 통상 상류 반도체 제조보다 구조적으로 시차를 두고 움직이며, 이는 최근 보고서에서 확인했듯 공급 충격이 역내 제조업 전반으로 전이되기 전 일종의 완충장치 역할을 한다.
재고 흐름도 이런 지연 효과를 강화한다. 모든 재고 축적이 기술 부문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태국을 예외로 하면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몇 분기 동안 재고 재축적 국면을 거쳤다. 이는 전자 공급망 안에서 단기적 완충 여력을 더해준다.
따라서 상류 반도체 차질의 핵심 위험은 초기 충격의 규모 자체보다는 그 지속 기간에 있다. 재고 완충이 소진되기 시작하는 시점, 보통 2~3개월 뒤가 되면 하류 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역내 제조 공급망 전반에서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다. 모델에 따르면 산업활동에 대한 하방 압력은 초기 상류 에너지 충격 이후 대략 3분기째부터 통계적으로 유의미해진다.
단순한 국지적 생산 차질과 달리, 현재 중동 전쟁은 아시아 전반에 대한 더 광범위한 에너지 공급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높은 에너지 가격, 상승하는 발전 비용, 더 비싸진 산업 투입재라는 여러 경로를 통해 동시에 충격이 전파되면서 역내 생산 여건이 전반적으로 더 빡빡해질 것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이런 충격이 산업생산에 전가되면서 더 큰 비용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시아 지역은 이 초기 충격을 비교적 이례적으로 잘 극복하고 있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전쟁 관련 가정은 산업활동이 다소 둔화하는 쪽을 시사하지만, 이러한 둔화가 아시아 전역에서 진행 중인 AI 주도 제조업 사이클 자체를 꺾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시장 가격은 현재의 LNG 공급 차질이 몇 주가 아니라 몇 달간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해상 운항 차질이 5월 중순 이후까지 계속된다면, 대만이 카타르산 공급을 대체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대만은 이론적으로는 다른 공급처로 수입선을 다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약이 상당하다. 호주는 이미 대만 LNG 수입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호주 LNG의 상당 물량은 일본, 한국, 중국과의 장기계약에 묶여 있어, 물량을 신속히 다른 곳으로 돌리기 어렵다.
대서양권 물량, 즉 통상 유럽이나 미주 시장으로 향하던 LNG 화물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더 긴 운송 항로와 더 높은 운임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대만 당국은 미국산 수입을 늘리고, 알래스카 LNG 개발 같은 미국 내 LNG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대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조치는 중기적으로는 중요한 지리적 헤지 수단이 되겠지만, 단기적으로 정책당국은 현물시장의 가혹한 경제성과 맞서야 한다. 이제 아시아 LNG 현물가격이 2분기에 추가 상승해 평균 MMBtu당 18달러 안팎(전쟁 이전인 올해 2월 20일 기준 10.66달러)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과거 사례를 보면 아시아의 기술 제조업체들은 가스 가격 상승에 대응해 생산을 줄이는 경우가 드물다. 대신 그 재정적 부담은 대체로 국영 전력회사의 재무제표로 옮겨간다. 이는 특히 대만과 한국에 더 우려스러운 문제다. 이들 국가의 전력 공급기관들은 이미 높은 부채 수준과 낮은 재무 완충장치를 안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높은 현물가격에 LNG를 조달하게 되면,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이 곧바로 공공 부문 재무제표로 이전돼 국가 재정을 더욱 압박하게 된다.
정재형 경제정책 스페셜리스트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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