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유산에서 눈에 띈 노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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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구미성리학역사관을 다녀왔다.
구미성리학역사관에서 오는 4월 26일까지 특별전 '봉곡의 충효세가'가 열리고 있다.
구미시 봉곡동은 산업화되기 전부터 밀양 박씨와 벽진 이씨의 집성촌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구미에 지역구를 두었던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박세직, 김영삼 정권 시절 검찰총장을 지낸 박순용도 봉곡동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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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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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미성리학역사관 |
| ⓒ 여경수 |
이곳에서 조선 후기 밀양 박씨 경주부윤공파는 문무 과거 합격자와 효자와 열녀를 두루 배출한 노론 명문가로 성장했다. 역사적으로 구미 지역은 남인 세력의 본거지였다. 그런 지역에 서인(노론) 계열인 밀양 박씨가 자리를 잡고, 우암 송시열과 직접 교류를 했다는 사실은 이 집안의 정치적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구미에 지역구를 두었던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박세직, 김영삼 정권 시절 검찰총장을 지낸 박순용도 봉곡동 출신이다.
나의 큰고모할머니가 봉곡동으로 시집을 가셔서, 어릴 적부터 봉곡동의 옛 이름인 '별남'을 '고모네 동네'로 자연스럽게 불렀다. 둘째 누님도 한때 이곳에 살았고, 지금도 처가 막내동서가 봉곡동에 살고 있으니 이곳과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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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미성리학역사관: 묘지석 |
| ⓒ 여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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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비 문서 |
| ⓒ 여경수 |
이번 전시에서 밀양 박씨 가문의 교지, 묘지석 등도 흥미롭게 살펴보았으나, 나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문서는 노비 문서였다. 한 노비가 빚을 갚지 못해 12살과 9살의 자녀를 노비로 바친다는 내용의 문서이다. 조선후기 신분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면서도, 당시 양반가문이 아닌 이들의 스산했던 삶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름없이 살아간 그들의 삶도 우리의 역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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