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답사는 독립운동 역사 여행의 일환
[김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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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제우는 1864년 1월 6일 이래 경상감영 감옥에 갇혀있다가 그해 3월 10일 처형되었다. 사진은 경상감영 터의 선화당(관찰사 집무소)이고, 감옥 건물은 없어졌다. |
| ⓒ 김명희 |
일본의 침략 야욕과, 부패·무능한 조선왕조 봉건 지배층의 외세 의존 및 보수 유생의 체제 수호의 벽에 좌절하였으나, 1894년 이후 전개된 의병항쟁, 3·1독립운동과 항일 무장 투쟁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회개혁 운동과 자주적 국권 수호운동으로서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민중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으나,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변화시키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을미의병 활동,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모태로서 오늘날 평등사상과 자유민주화의 지평을 연 근대 민족사의 대사건이었다.
위 인용문은 동학 답사의 성격이 1894년 이후 독립운동 유적을 찾아다니는 역사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즉 독립운동에 높은 관심을 가졌다면 '의병항쟁, 3·1독립운동과 항일 무장 투쟁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동학 유적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민중운동의 근간'을 알게 된다.
반월당 관덕당 터에서 동학 답사 출발
누리집의 '유적지' 항목에 따르면 대구에는 동학 유적이 다섯 곳 있다. '대구 관덕당 터', '대구 최제우 순도비', '대구 최제우 구금지 경상감영지', '대구 최제우 나무', '대구 최제우 동상'이 그들이다. 지난 22일, 대구 중심부 반월당의 관덕당 터에서 출발해 달성공원 안 최제우 동상까지 위치 순서대로 답사를 다녀본다.
'대구 관덕당 터'는 동학교조 최제우가 1864년 3월 10일 좌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 아래 순교한 곳이다. 대구가 최제우 순교지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서울로 압송되어 가던 최제우와 그의 제자 23명이 철종 승하 사태를 맞아 대구로 환송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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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제우 처형지 '관덕당 옛터'의 안내문 |
| ⓒ 김명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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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제우 순도비 |
| ⓒ 김명희 |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선생은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자 1860년 4월 5일 동학을 창명(創明: 새로 밝힘)하여 시천주(侍天主: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심)의 진리를 펴시다가 좌도난정(左道亂正: 유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주장으로 세상을 어지럽힘)의 죄목으로 1864년 3월 10일 대국 관덕정에서 순도(殉道: 동학의 교리를 위해 목숨을 바침)하셨기에 (1907년 7월 17일 신원 되심)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 이 비를 세웁니다.
포덕 158(2017)년 5월 26일
천도교 수운 최제우 선생 순도비 건립위원회
일반 대중이 알기 쉽지 않은 어휘에 풀이를 달아둔 친절이 눈길을 끈다. 순도비를 세운 '천도교 수운 최제우 선생 순도비 건립위원회' 인사들이 종교인들이라서 배려의식이 일상에 뿌리를 내렸나 보다. 바람직한 종교인의 전형을 만나는 듯하여 순도비를 바라보는 마음에 넉넉함이 찾아든다.
종로를 지나 경상감영 터로 이동
'대구 최제우 구금지 경상감영지(경상감영 터)'는 중구 경상감영길 99 일원이다. 1863년 12월 9일 붙잡힌 최제우는 이듬해 1월 6일 대구감영 감옥에 도착했다. 당시 감옥 옆에는 수령이 약 240년가량 된 큰 회화나무가 있었는데, 최제우가 잡혀오고 끌려나가는 장면을 모두 보았다. 그래서 후대인들이 종로초등학교 교정의 그 나무에 '최제우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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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달성공원 최제우 동상 앞 안내판 |
| ⓒ 김명희 |
천도교 제1세 교조이신 수운 대신사(崔濟愚) 님께서는 포덕 1년(서기 1860년) 4월 5일(음력)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으시어 동학(천도교)를 창도하셨다.
수운 대선사님께서는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시천주侍天主 신앙으로 만민의 평등, 인간의 존엄성, 보국안민(輔國安民)의 큰 뜻을 펴 나가든(필자 주: '던'의 오기) 중 당시 위정자들이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사교로 지목, 포덕 5년(서기 1864년) 3월 10일(음력) 좌도난정률로(필자 주: 좌도난정의 죄를 저질렀다는 법률에 따라) 참형을 당하셨다.
그 후 동학의 후예들은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갑오동학혁명운동, 갑진개혁운동, 기미독립운동 및 신문화운동 등을 통하여 이 나라 이 겨레의 활로를 열어왔다. 민족과 인류의 대 스승님의 순도 100주년을 맞아 참형 당하신 이 고장에 동상을 세웠다. 수운 대선사님은 한국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분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기미독립운동'이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온다. 동학의 후예들이 "이 나라 이 겨레의 활로를 열어왔다"는 표현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하릴없는 역사의 가정에 빠져본다. 동학농민혁명이 성공했더라면 우리나라와 이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보국안민은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망해가는 나라를 도우려니 외세에 대항해야 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니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싸워야 했다. 보국안민은 동학 사람들이 구한말 의병이 되고 일제강점기 항일투사가 되는 까닭을 말해주는 어휘이다. 대구 동학 유적을 답사하니 자연스레 독립운동에 삶과 죽음을 바친 지사들께 고마움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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