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니까 했다"...이 대통령의 질책이 드러낸 민주주의 중대문제

강명구 2026. 3. 2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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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뉴욕 직설] 숙의 민주주의, 왜 선언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가

[강명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가 숙의하라고 그랬잖아요. 숙의를 하라. 논의해서 결정을 하라는 거잖아요."

지난 17일,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검찰개혁 입법 과정에서 숙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자 자성의 의미로 읽혔다. 어려운 의제일수록 끝까지 토론해야 수용성이 높아지는데, 현실은 "뭐 그냥 하라니까 했다"는 식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이 발언을 듣는 순간, 한때 같은 학교에 몸담았던 동료 학자 조지프 베셋(Joseph Bessette)이 떠올랐다.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라는 개념을 처음 학문적으로 정식화한 인물이다. 그에게 이 개념을 만든 계기를 물었더니 동기는 의외로 소박했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에서 9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의원들이 법안들을 꼼꼼하게 따져 묻는 과정 없이 표결에 임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따져 묻는 과정,' 즉 숙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란 것이다. 이 문제의식이 1980년 논문이 됐고, 이후 회자하는 개념이 됐다.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의 발언 날,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가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전 세계 민주주의 수준을 국가별로 측정해 등급을 매기는 보고서다. 2026년 보고서에는 '숙의민주주의 지수'라는 항목이 있다. 정치적 결정이 공개적 토론과 합리적 논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도를 측정한 것이다. 한국은 이 지수에서 48위에서 7위로 뛰어올랐다. 비상계엄 내란을 시민이 되돌리고, 탄핵을 헌법 절차로 관철시킨 경험이 반영된 수치다. 종합 순위에서도 한국은 41위에서 22위로 올라 자유민주주의 지위를 되찾았다.

같은 보고서에서 미국은 종합 순위 24위에서 51위로 추락하며 50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탈락했다. 숙의민주주의 지수는 더 처참하다. 91위다. 보고서는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지목한다. ▲ 정부가 정책 결정에 대해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정도 ▲ 시민사회가 정책 토론에 참여하는 정도 ▲ 주요 결정 전 자문 범위, 이 세 지표 모두에서 미국이 급락 국가 명단에 올랐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4년,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10년 걸린 민주주의 훼손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단 1년 만에 달성했다는 것이 연구소의 평가다.

솔직히 민주주의에 순위를 매기는 작업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 정치에서 숙의 과정이 해체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숙의는 왜 무너지는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미국에서 숙의가 사라지는 과정
 20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숙의가 안 되면 저 사람이 독선적이라서, 저 사람이 남의 말을 안 들어서라고 사람 탓을 하기 쉽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바꿔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 트럼프 2기는 숙의의 구조적 해체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연방 공무원 감축은 단순한 인력 조정이 아니었다. 인사관리처(OPM) 국장 스콧 쿠퍼에 따르면 2025년 한 해에만 약 31만 7천 명의 연방 공무원이 정부를 떠났다.

<사이언스>(Science)가 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공계 박사급 전문가만 1만 명이 넘었다. 국제 원조를 담당하던 기관이 해체되고, 질병 관련 정보공개 사무실이 문을 닫았으며, 해외 방송을 맡던 기관은 위성 계약이 끊겨 방송 역량을 잃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정책 전문성이 1년 만에 증발한 것이다. 정책을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할 전문가가 사라지면, 숙의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두 번째는 토론의 통로 자체를 우회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에게는 행정명령이라는 도구가 있다. 의회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 서명만으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제도다. 역대 대통령들도 이 도구를 사용했지만, 취임 100일간 평균 19.8건 수준이었다.

트럼프는 첫해에만 228건을 발동했다. 역대 평균의 7배가 넘는다. 더 주목할 점은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당이 의회를 지배하는데도 의회를 거치지 않은 것은 토론이 귀찮았기 때문이 아니라, 토론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의회가 스스로 입법 권한을 내려놓은 셈이다.

세 번째는 반대 의견을 내는 비용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국립인문학기금(NEH) 보조금 폐지 소송에서 공개된 23시간 분량의 법원 증언 기록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효율부(DOGE)에서 파견된 인력은 연방 기관 현장에서 시간 압박으로 프로그램 폐지를 밀어붙였고, 한 증인은 "기관이 아니라 클럽 같았다"고 진술했다.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없었지만 그래봤자 본인만 피해를 입을 것이기에 프로그램 폐지에 따른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사안에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제시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거의 해체해 버렸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면 결과는 분명하다. 의회 동의 없이 시작된 이란 군사작전에서 보듯, 전쟁과 평화마저 대통령 한 사람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숙의가 작동하려면
 2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대외 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전직 직원들이 USAID 해체 1주년을 기억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AP 연합뉴스
미국에서 숙의가 해체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숙의가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가 역으로 드러난다. 숙의는 더 나은 논거가 나오면 기꺼이 결론을 바꾸는 과정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말하고 나서 안전해야 한다. 발언 이후에 밉보이거나, 찍히거나, 잘리는 구조에서는 아무도 진짜 생각을 꺼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스케줄 F'라는 제도로 공무원의 신분 보장을 박탈하는 방식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보다 익숙한 형태로 작동한다.

회의에서 말하기 전에 윗사람의 의중을 먼저 계산하는 것, 인사에서 불이익받을까 봐 다른 의견을 삼키는 것, 분위기를 읽고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대했다가 찍히는 비용이 입 다물고 있는 비용보다 큰 환경에서는,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존 기술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하에서 "자유롭게 말해 보라"고 한들 자유롭게 말할 사람은 없다.

둘째, 반론이 딴죽이나 발목잡기가 아니라 기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말을 해도 그 말이 배신이나 도전으로 읽히는 문화에서 사람들은 결국 입을 닫는다. 숙의가 되려면 공론의 장에서 직책도, 나이도, 연차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말의 내용으로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계급장 떼고 얘기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 직급이 높은 사람이 먼저 말하면 그 뒤에 나오는 발언들은 이미 그 방향으로 수렴하기 시작한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반론은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을 등에 업은 트럼프의 미국에서 전문가의 반론이 기득권의 저항으로 낙인찍혔듯, 한국에서는 아랫사람의 반론이 조직의 화합을 깨는 행위로 읽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결정적으로, 토론에 의해 결정이 실제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앞의 두 조건은 무의미하다. 말해도 안전하고 반론도 환영받지만, 어차피 결론이 정해져 있다면 사람들은 곧 깨닫는다, 형식은 토론이지만 실질은 통보라는 것을. 그리고 다음번에는 아예 말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뭐 그냥 하라니까 했다"는 태도는 게으름이나 무관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토론해 봐야 결론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조직 전체가 몸으로 학습한 결과다. 애초부터 숙의하란다고 숙의가 될 수 없었단 얘기다.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이냐를 놓고 갈라진 핵심 이유다.

이 세 조건 중 하나라도 없으면, 대화와 토론은 숙의가 아니라 동의 확인 의식이 되어 버린다.

광장 이후의 과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숙의 없는 정치가 점점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행정명령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의회는 이를 추인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적으로 낙인찍힌다. 이 과정이 매일 반복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숙의의 부재가 일상이 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 후퇴의 마지막 단계다.

한국은 어쩌면 그 반대 과정을 겪고 있다. 권력이 헌법을 짓밟았을 때 시민들은 이를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느꼈고, 거리로 나왔고, 헌법적 절차를 끝까지 관철시켰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들불처럼 타오르는 시민의 힘과, 일상적 정치에서 매일 작동하는 숙의의 구조는 다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광장의 힘을 국회와 일상의 정치로 옮기는 것이다.

작은 일상과 정책결정 과정부터 그 구조를 바꿔야 한다.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인정받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반론을 묵살한 결정이 실패했을 때 그 결정권자에게 책임을 묻는 관행이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덜 두려워하게 된다. 토론 결과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고, 최종 결정이 그 토론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하도록 하면 요식행위는 줄어든다. 거창한 제도 개혁이 아니다. 내일 당장 회의실에서 시작할 수 있는 변화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따져 묻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따져 물어도 괜찮은 정치, 아니 따져 묻는 것이 당연한 정치,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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