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왕과 사는 남자’ 보며 회개한 이유

2026. 3.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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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45일 만에 1400만 관객이 관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2026)의 흥행과 함께 단종 신드롬이 일고 있다. 왜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역사를 간단히 살피면 1453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적인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축출한 후 사사한다. 이후 12살에 왕이 된 단종은 지속해서 압박을 받다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긴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노산군으로 낮추고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시킨다. 영화는 유배된 단종을 돌보는 엄흥도와 청령포 평민의 일화를 중심으로 마지막 단종의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단종을 비극적 운명의 왕으로 여기며 아파해 왔는데 이 영화 한 편이 단종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역사를 보면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세조가 단종보다 훨씬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단종은 12살에 왕위에 오른 까닭에 직접 통치하기보다 대신들이 정국을 주도했다. 무슨 업적을 이루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반면 세조는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단단히 세웠고 의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호조 병조 등 6조 직계제를 도입해 왕권을 강화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진족을 토벌하며 북방을 튼튼히 했고 토지 제도를 개혁했으며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보급하기도 했다. 단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국가행정 시스템을 갖춘 왕이었다. 그런데도 세조가 아니라 단종 신드롬이 일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극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시대를 지나온 억울한 사건들과 참사, 그리고 그 희생자들을 끝내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회개의 정서가 단종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난 듯했다. 그동안 우리는 세조 같은 이들을 보며 그가 이룬 성공과 번영을 이유로 많은 것을 용인하고 덮어주곤 했다. 그 과정에서 군사정권 아래 희생된 박종철, 이한열 같은 아들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단종을 마주한 순간만큼은 의를 세우지 못하고 외면해 온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고 그 눈물은 회개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끝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어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둬 장사한 엄흥도가 더욱 고마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뭇사람들이 만류하는데도 엄흥도가 ‘의로운 일을 하고 화를 당하는 것은 내가 마음에 달게 여기는 바요,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자막을 넣고 그 출처를 1796년 정조 때 편찬된 인명사전격 자료인 ‘국조인물고’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장은 실제 국조인물고에 실린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1469년 편찬된 세조실록 세조 1년 7월 5일자에 나오는 세조의 전교, “수의수화 오소감심, 피화위의 오소실구(守義受禍 吾所甘心, 避禍違義 吾所實懼)”와 더 유사하다. 이는 “의를 지키다가 화를 받는 것은 내가 달게 여기는 바이지마는, 화를 피하려고 의를 저버리는 것은 내가 진실로 두려워하는 바이다”라는 뜻이다. 반면 국조인물고에 실린 엄흥도의 말은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즉 “선을 행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달게 받는 바이다”라는 문장에 그친다.

감독이 세조의 전교를 엄흥도의 말처럼 인용한 것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모든 권력이 스스로 의(義)를 명분으로 일을 꾸미지만 엄흥도의 행위가 진정한 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의가 왜곡되고 사라지는 세상을 보면서 말하고 싶었던 감독의 숨은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순간 이 영화의 메시지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경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말씀하셨는데 의를 세우기는커녕 사유화된 교회의 소식이나 비도덕적이고 천박한 모습의 목회자들, 세상의 기업과 전혀 다르지 않은 교회와 교단의 모습들 때문이다. 내가 울며 회개한 이유다.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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