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보이지 않는 불, 풍경 안에 남은 '인간의 기척'
'Silent Fire' 주제로 화이트스톤 갤러리서 4월12일까지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지 묻고 싶었다"
색이 가라앉아 있는 전시 공간, 화면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오래 눌러 쌓인 안료의 결이 표면에 남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풍경에는 막 누군가 지나간 자리 같은 기척이 어른거린다. 화이트스톤 갤러리에서 4월12일까지 열리는 후타가와 가즈유키의 국내 첫 개인전 'Silent Fire'는 풍경을 보여주는 전시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그림은 산과 물, 바람과 빛을 그리고 있으되, 그 외형을 보여주는 데 오래 머물지 않는다. 더 오래 남는 것은 표면 아래의 시간이고, 눈앞의 형상보다 그 안에 스며 있는 감각이다. 이번 전시 제목 'Silent Fire'는 그 낮은 온도를 가리킨다.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힘, 자연 안에도 인간 안에도 함께 남아 있는 조용한 불이다.
후타가와는 자신을 일본화를 '형식으로서 계승'하는 작가로 보지 않았다. 그가 붙드는 것은 양식의 외곽이 아니라 그 안에 오래 배어 있는 시선의 태도다. 그는 일본화의 본질을 "오랜 시간 속에서 길러져 온 자연을 바라보는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이라는 말이 흔히 기법과 형식으로 기울어 갈 때, 그의 말은 보는 법의 문제 쪽으로 되돌아간다. 무엇을 얼마나 닮게 그리느냐보다, 세계를 어떤 감각으로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일본화는 과거를 반복하는 장르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오늘의 화면 위에서 다시 묻기 위해 불러오는 오래된 감각의 이름이 된다.

그는 이번 작업의 핵심을 비교적 분명히 밝혔다.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지를 묻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후타가와의 화면이 왜 조용하면서도 비어 있지 않은지를 설명해준다. 그의 그림에서 자연은 인간이 감상하는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고, 인간 역시 풍경을 장악하는 중심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둘은 같은 세계 안에 놓인 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배경이 되지 않는 자리, 설명보다 기척이 먼저 남는 자리. 후타가와의 풍경은 그 사이에서 재현보다 관계에 가까운 화면으로 바뀐다.
광물안료와 화지 같은 재료 역시 이 질문과 떨어져 있지 않다. 후타가와는 광물안료를 두고 "단순한 기법적 선택이 아니다"고 했다. 수억 년의 시간을 지나 형성된 광석의 입자가 화면 위에 놓일 때, 그 위에는 단순한 색채 이상의 시간이 함께 얹힌다는 것이다. 그는 그 안에서 "지구의 시간과 자연의 흔적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색을 올리는 작업이라기보다 시간을 포개는 작업에 가까워 보인다. 안료의 층은 시각적 효과를 만드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자연이 스스로를 형성해 온 긴 시간을 화면 안으로 데려오는 통로가 된다. 후타가와의 표면이 잠잠하면서도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 이유도 그 시간의 밀도에 있을 것이다.
그의 풍경에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면인데도 묘하게 공허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후타가와는 "우리가 풍경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시선이 존재한다"고 했다. 누군가의 기억과 응시가 이미 풍경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인간은 전면에 선 인물로 드러나기보다 흔적과 기척으로 남는다. 그는 "인간이 중심에 놓인 풍경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같은 세계 안에 함께 존재하는 풍경"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인간이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풍경은 비로소 배경을 벗고, 화면은 자연주의적 재현보다 관계의 감각 쪽으로 기운다.

전시 제목 'Silent Fire'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후타가와는 이 제목에 자연의 힘과 인간 내면의 힘을 함께 담았다고 설명했다. 불이라고 하면 흔히 분출과 파열, 격렬한 움직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가 붙든 것은 "분출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존재하는 힘"이다. 지구 내부 어딘가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에너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힘. 그는 그런 힘이 인간 안에도 있다고 본다. 쉽게 꺼지지 않는 감정, 오래 남아 있는 의지,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계속 움직이는 내면의 에너지다. 그가 말한 "침묵 속에 있으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힘"은 이번 전시를 읽는 하나의 열쇠이자, 그의 풍경을 끝내 풍경에만 머물지 않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후타가와는 스스로를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오래 붙드는 것은 자연이 어떻게 보이는가보다 인간과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 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설명보다 여운에 가깝고, 장면보다 태도에 더 가까워진다. 전통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손쉽게 '전통의 현대화'라고 부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전통은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오래된 감각이며, 지금도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시선의 깊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들이 서로를 밀어내듯 지나가는 시대다. 그런 바깥의 속도와 비교하면 후타가와의 그림은 느리다. 그러나 그의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머무는 방식에 가깝다. 눈앞의 형상을 붙잡기보다 그 안에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시간을 오래 바라보는 태도, 자연을 대상화하기보다 그 안에서 인간의 자리를 다시 살피는 시선. 후타가와의 'Silent Fire'는 결국 풍경의 전시라기보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아직도 남아 있는 조용한 관계의 온도를 더듬는 작업에 가깝다.
화면 위에 직접 드러나지 않은 인간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자연 역시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둘은 같은 세계 안에서 서로를 비추고 스미며 존재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풍경의 표면이 아니라, 그 표면 아래에서 오래 식지 않고 남아 있는 보이지 않는 불인지 모른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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