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10년을 향한 도전: 더불어 사는 상생의 가치 중요

곽승지 2026. 3. 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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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연탄'과 연변 조선족 동포 간의 10년 사랑 이야기 3] 인구, 정책 변화 등 도전 저해 요인 많아

[곽승지 기자]

기자말
사단법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이사장 이동섭/ 이하 사랑의연탄)은 한반도 밖에서 어렵게 사는 동포들을 위한 에너지 지원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사업은 10여 년 전 조선족동포들이 모여 사는 연변에서 시작됐다. 조선족동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장정에 나선 것이다. '사랑의연탄'이 '연변조선족지체장애인협회'(회장 이춘자/ 이하 장애인협회)와 협력관계를 맺고 힘겹게 추운 겨울을 보내는 장애인동포들에게 석탄을 지원해 온 지 10주년을 맞아 3월 초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행사가 현지에서 열렸다. 뜻깊은 행사에는 이 사업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십 수 명의 한국인과 현지 장애인동포 30여 명이 참가했다. 행사장은 긴 여정에서 쌓인 끈끈한 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어우러져 후끈 달아올랐다. 마음을 적시는 진한 감정은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만큼 누군가는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이 글은 '사랑의연탄'이 석탄을 매개로 하여 연변 장애인동포들과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동행 보고서이다. 이 글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새로운 길을 나서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설레는 일이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기에 두렵기도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발자취를 남긴다는 것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사랑의연탄'과 '장애인협회'는 관계를 맺은 지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 새로운 길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했다. 양측이 결의한 천금 같은 약속은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결실 위에서 더 큰 열매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던 것처럼 또 다른 10년을 향한 도전도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더 단단한 마음 가짐과 열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단지 양측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크고 넓고 깊게 그리고 빠르게 변하고 있어 양측 관계와 관련한 환경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자 간 관계는 필히 주변 환경의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우선 석탄을 매개로 한 양자 관계에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제 연탄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탄광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을 뿐 아니라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도 얼마 남지 않았다. 중국도 비슷하다. 석탄에서 나오는 매연이 공기 오염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석탄 사용이 제한되는 가운데 생산량마저 크게 줄이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석탄값이 배 이상 오른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석탄을 연료로 난방을 하는 것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연변 조선족인구, 호구 상 60만 명 안 돼... 실거주자 20여 만 명

'사랑의연탄'은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고민을 거듭하며 여러 가지 대안을 살피고 있다. 커피박으로 만든 펠릿이나 태양열 패널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 연변 방문길에도 이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해 현지에 적용 가능한지를 면밀히 살폈다. 그러나 이 역시 간단치 않다. 각각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세하게 살피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사랑의연탄'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지금도 고민중이다.

연변지역 조선족사회의 변화도 커다란 변수 중의 하나이다. 연변은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다. 행정구역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줄여서 지칭하는 말이지만 조선족이 모여 사는 이 지역을 보통명사화 한 표현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연변은 1800년대 말 간도를 건너 조선인들이 이주해 모여 살던 곳으로 북간도 동만(주) 등으로도 불렸다. 그래서 연변은 중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동포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불린다. 실제로 연변은 조선족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부문의 중심지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최근 연변의 그 같은 위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두 가지 부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조선족 인구가 크게 줄고 있는 점이다. 10년을 주기로 실시하고 있는 중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조선족의 수는 감소해 왔다. 2000년에 192만 3천800여 명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20년에는 170만 2천400여 명으로 줄었다. 20년 사이에 11.5% 가까이 준 것이다. 연변 지역의 감소 비율은 더 높다. 호구 상의 인구가 80만 명이 훨씬 넘었으나 이제는 60만여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연적인 인구 감소와 함께 농촌 지역인 연변 지역에서 도시로 혹은 한국 등 해외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탓이다.
▲ 중국 연길 연변대학 앞 야경 조선족의 마음의 고향인 연변은 최근 중국 국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데 그 중에서도 연변대학 앞의 야경은 한글이 혼재되어 있어 특별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더욱 심각한 것은 실제 중국 동북 지역 및 연변에 거주하는 인구는 그보다 현저히 적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족동포는 한중 수교가 될 무렵인 1990년대 초 5만여 명 정도만 동북 지역 밖에 살았다. 그러니까 전체 조선족의 대부분인 97%가 동북 지역에서 생활했다. 그중 76%는 진(鎭)급 이하의 농촌 지역에서 살았다. 그런데 호구조사 중심의 인구조사와 달리, 현재 동북 지역 전역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조선족은 50여 만 명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변 지역에도 20만여 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2010년대 초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가 40여 만 명을 웃도는 정도였으나 지금은 한국 국적을 회복하거나 취득한 사람을 포함하면 80만여 명이 훌쩍 넘는다. 유동인구를 감안하면 100만 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10년 후 연변에 조선족동포가 얼마나 남아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이 크게 바뀌고 있는 점이다. 중국은 정권 수립 직후부터 다민족사회로서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추구해 왔다. 그 정책에 힘입어 조선족동포들은 말과 글은 물론 우리의 문화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2020년대 들어 중화민족공동체를 강조하며 소수민족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꾀하며 기존의 정책을 대부분 바꿔왔다. 소수민족 학교를 없애 학생들이 민족 구분 없이 섞여 중국어 중심으로 공부해야 하고 소수민족 언어로 보던 시험도 폐지했다. 조선족과 관련된 연변의 주요 역사 유적도 민족 색채를 배제하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기대어 조선족의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은 연변의 장래는 이같은 정책 변화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물론 한국 사회의 변화 양상도 간단치 않다. '사랑의연탄'은 일반 시민과 기업의 후원을 받아 사업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잘 유지되느냐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개인주의적 사고가 확산하면서 후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랑의연탄'으로서는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당면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공여자와 수혜자가 아닌 동반자...더 큰 비전 공유해야

'사랑의연탄'과 '장애인협회'는, 일련의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또 다른 10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방향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뿔뿔이 흩어진 이후 지역과 나라를 달리해 살아오며 크고 작은 갈등과 대립을 경험해야 했던 한민족이 함께 잘 사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민족 모두가 잘사는 그런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기실 연변 장애인동포들에게 석탄을 지원하는 것이 인간애와 민족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전 만들기는 이미 시작됐다. 양측은 석탄 공여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아니라 당면한 비전을 만들어가는 동반자로서 그 길에 나선 것이다.

이에 더해 나라와 민족을 넘어 동북아시아 모든 나라와 민족이 어깨 걸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꿈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오늘날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눈앞의 이익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20세기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역사 및 영토 갈등도 여전한 상황이다. 동북아시아의 이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겨내어야만 동북아시아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함께 잘 사는 그런 꿈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은 요원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으면 그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그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 비전을 주변에 널리 알린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국가가 풀지 못하는 일은 민간이 나서 길을 만들어야 한다.
▲ 연변 장애인협회 간부들의 서울 나들이 연변 장애인협회 간부들이 2023년 10월 '사랑의연탄'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사랑의연탄' 건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일본의 석학 와다 하루키 교수는 일찍이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만들 꿈을 꾸며 그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주체로 한민족을 꼽았다. 20세기에 겪은 슬픈 역사 때문에 한민족은 한반도 주변국에 널리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2025년 말 재외동포청이 발표한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 184만여 명, 일본에 96만여 명,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에 44만여 명이 살고 있다. 하루키 교수는 이들에게 주목했다. 동북아시아 곳곳에 산재해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이 함께 같은 꿈을 꾼다면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꿈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 노학자의 혜안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지 않는가.

어려움은 많다. 당장 중국이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비전에 대해 어떻게 나올 것인지 불확실하다. 한국과 적대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북한을 다시 대화로 끌어내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중국은, 비록 중국 국내정치 차원의 주장이지만, 중화민족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면서 주변국들을 대상으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자고 주장해 왔다. 북한은 남북 교류협력 과정에서의 불만 때문에 한국에 등을 돌리고 있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우리는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한민족이다.

이춘자 회장은 연변 장애인동포들이 행복한 삶을 이어 가기를 바라며 지금까지와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또 다른 10년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장애인동포들은 자신을 추스르는 것마저 버거워 세상의 변화에 일희일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란다. 이동섭 이사장은 더 큰 생각을 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전에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맞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있는 듯하다.

또 다른 10년을 향한 주사위는 던져졌다. 양측이 올바른 방향을 정하고 힘있게 앞으로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연변 조선족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그곳에 남아있는 장애인동포들은 연변의 마지막 보루이다. '사랑의연탄'은 장애인동포들이 더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람을 막아주는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사랑의연탄'과 연변 장애인협회가 10년 동안 맺어온 사랑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는 10주년 행사를 중심으로 기술했고, 제2부는 양측이 긴 세월 좋은 관계를 맺어온 과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다뤘다. 이번 3부에서는 또 다른 10년을 만들어 가기 위한 각오와 함께 어떤 난관이 있을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건지에 대해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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