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학한림원 “영남 산불, 광범위한 신체·정신 피해 확인”

김판,김지훈,이강민 2026. 3. 23. 17: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연구 용역 중간 보고서 입수
“산불은 단순 화재 아닌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 규정
400명 대면 설문조사…건강 영향 첫 확인
지난해 3월 영남 지역 대규모 산불 발생 당시 경북 의성군 옥산면 일대.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이 민가를 덮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발주한 연구 용역에서 영남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이 산불 발생 이후 장기간 광범위한 신체·정신적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발생한 영남 산불 피해의 장기간 건강 영향을 평가한 첫 공식 연구 결과다. 재난 피해자의 신체·정신적 건강 영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한국형 산불 건강 영향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산불피해 이재민의 장·단기 건강 영향조사 모델 개발 및 시범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이 지난해 산불 발생 이후 발주한 용역 과제를 국내 의학계 최고 석학 단체인 의학한림원이 맡았다.

이번 연구는 대형 산불이 이재민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국내외 사례와 대응 체계 등을 두루 분석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팀은 산불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나 화재 사고가 아닌 지역 주민의 삶과 건강을 흔드는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인프라와 IT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규제와 부처 간 장벽으로 재난 건강 관리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구팀은 구체적으로 산불의 건강 영향을 직접적으로 분석하는 통계 체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주로 피해면적, 사상자 수, 재산 피해 중심으로 현황을 관리할 뿐 건강 영향 평가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응급실 방문자료, 소방청 119 구급자료 등 활용 가능한 자원이 많지만 현재는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건강 영향 평가안도 설계했다. 위성데이터를 통해 산불 연기 확산 경로를 확인하고,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해 산불 발생 전후 의료 이용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재민 400명을 대상으로 대면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지난달 실시한 대면 조사에는 산불 이후 주민들에게 다양한 신체·정신 증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으로 파악됐다. 새롭게 발생한 증상을 묻는 질문(복수 선택)에 응답자 286명(71.5%)이 우울증 등 정신 증상을 겪었다고 답했다. 호흡기 증상도 221명(55.2%)으로 절반 이상에서 보고됐다. 이 외에도 안구 증상(24.2%), 전신 증상(19.0%), 피부 증상(14.0%) 등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호흡기 질환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응답자는 산불 발생 전 25명(6.2%)에서 이후 140명(35.0%)으로 증가했다. 정신질환 역시 15명(3.8%)에서 188명(47.0%)으로 크게 늘어났다.

의료기관 이용 빈도 역시 증가했다. 산불 발생 전 1년간 ‘한 달에 2~3회 이상’ 의료기관을 이용한 응답자는 27명(6.8%)이었으나, 산불 이후에는 59명(14.8%)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면 ‘한두 번만 방문함’과 같이 의료 이용이 낮은 군은 74명(18.5%)에서 48명(12.0%)으로 감소했다. 산불의 영향으로 실제 의료 이용이 확대된 것이다.

산불 발생 전 본인의 건강상태를 ‘나쁨’이라고 응답한 인원은 81명(20.2%)이었지만 산불 이후에는 220명(55.0%)으로 크게 증가했다. ‘매우 나쁨’ 응답 역시 3명(0.8%)에서 35명(8.8%)으로 늘어났다.

특히 정신건강 분야에서 위기 신호가 포착됐다. 연구팀은 응답자의 34.3%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했다. 응답자의 24%는 중증도 이상 우울감을 호소했다. 회복 탄력성이 낮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문제에 더 취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시점 기준 최근 한 달간 산불과 관련한 악몽을 꾸거나 관련 경험이 떠오른 적이 있다는 응답률은 56.3%에 달했다. 최근 2주간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또는 ‘자해할 생각을 했다’는 응답도 20%로 나타났다.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깬다는 응답은 산불 이전엔 34.8%에서 산불 이후 72.8%로 급증했다.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는 응답도 68.4%에 달했다.

연구팀은 국가 차원에서 건강 고위험군을 장기적으로 추적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 결과는 다음 달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이슈탐사팀=김판 김지훈 이강민 기자 pa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