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의 실리외교? 헌법 9조를 국익 추구 수단으로 쓰는 일본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6. 3. 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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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군사대국화 추구하면서도 자위대 파견은 피해

[김종성 기자]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 자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번에는 '여자 광해군'처럼 대응했다. 지난 19일(워싱턴 시각) 미일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진주만 공습의 역사까지 환기시키며 일본의 이란전쟁 파병을 압박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국의 우호국인 이란의 핵개발을 비판하면서도, 헌법 제9조를 이유로 자위대 파견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위대의 영향력 강화와 군사대국화 추진에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 그 같은 이유 때문에도 여자 아베로 불리고 있다. 그런 그가 헌법상의 전쟁 포기와 무력사용 금지 규정을 이유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 대해 사실상의 중립을 취했다. 헌법 제9조 개정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 이번에는 그 뒤에 숨어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은 22일 후지TV에서 내각의 입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모테기 대신은 이란전쟁이 정전된 이후에 기뢰 제거를 위해 자위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했다. 미국의 압력에 맞서 '정전 이후에 다시 이야기하자'라며 주의를 돌린 셈이다.

헌법 9조 뒤에 몸을 숨기는 일본

'정전 이후에 파견할 수 있다'라는 방침은 1990년 10월 6일 일본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안쪽인 페르시아만에 자위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이후에 단계적으로 정착됐다. 미국 등 34개국이 쿠웨이트를 돕고자 이라크와 싸운 걸프전쟁(1990.8~1991.2)이 진행 중이던 이 시점에, 일본은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면서도 평화유지임무를 수행할 자위대를 그 주변에 파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1991년 9월 10일에는 자민당과 공명당·민사당이 "분쟁 당사자 간에 정전합의가 성립"될 때 자위대를 파견한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1992년 6월 6일 참의원을 통과해 법률로 성립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의 제3조는 '무력분쟁의 정지 및 이것을 유지한다는 분쟁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어야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정전 이후에 파견'은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합리화할 목적으로 1990년대 초반에 생겨난 원칙이다. 이것이 이번 미일정상회담 때는 파병을 회피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그런데 이 원칙이 항상 관철된 것은 아니다. 이라크전쟁(2003~2011) 중인 2004년에는 육상자위대가 이라크에 주둔했다. 그해 2월 9일 자 KBS <뉴스광장>은 "육상자위대 본대 1진 60명이 쿠웨이트를 거쳐 어젯밤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도착했습니다"라며 "일본 육상자위대 본대가 사실상 전투 지역에 들어가기는 2차 대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정전협정과 관계없이 자위대가 파견된 사례가 있는데도 다카이치는 트럼프에게 파병 불가 방침을 밝혔다. '정전협정 이전에는 갈 수 없다'가 아니라 '이번에는 갈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헌법 제9조를 붙들고 흔들어대며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그것을 붙들고 그 뒤에 몸을 숨기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할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제1항 하단),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제2항 단서)라고 선언한다. 이 조문은 1946년 11월 3일 헌법 공포 이래로 한 글자도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른 조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제9조를 마치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이리저리 해석을 변형해 가며 국익을 추구해 왔다. 일본은 자위권에 기반한 교전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표명했던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무력이 아닌 자위권은 부정될 수 없다'는 해석을 1950년에 도출하더니 이를 토대로 1951년에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체결했다. 교전권을 포기한다던 나라가 군사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1954년에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는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무력행사는 금지되지 않는다'라며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를 창설했다. 1997년의 미일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 개정 당시 하토야마 류타로 총리는 '후방에서 미군을 지원하는 것은 무력행사가 아니다'라는 이상한 해석을 도출했다.

2001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분쟁 중이라도 비전투 지역에는 파병할 수 있다'는 해석을 이끌어냈고 이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활용됐다. 이는 '정전 이후 파병'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정교하면서도 위선적으로 추진되는 군사대국화
 2023년 5월 29일 다국적 해양차단훈련 ‘이스턴 앤데버23’에 참가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함이 욱일기의 일종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부산 남구 백운포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한 모습.
ⓒ 김보성
실리외교라면 실리외교랄 수 있는 그 같은 모습은 베트남전쟁(1960~1975,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때도 확인됐다. 일본은 헌법 제9조를 이유로 이 전쟁 참전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미국은 종전 이후의 평화유지를 위해 자위대를 보내줄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일본 외무성이 2018년 12월 19일 공개하고 이날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베트남전쟁 당시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전황이 불리해진 뒤인 1969년 10월에 국방차관보와 주일대사 등을 통해 그런 문의를 했다.

이때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의 부대신들은 헌법 제9조를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표시했다. 이들은 "헌법과 자위대법을 바꾸지 않고 자위대를 전투 목적으로 외국에 파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면서 자위대원들을 민간인 형태로 파견하는 문제를 언급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불필요한 참전을 피하고자 이처럼 헌법 제9조에 숨은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한국 이상의 이익을 이끌어냈다. 자국의 역할을 병참기지로 자리매김한 일본은 전쟁 특수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영토상의 이익까지 추가로 획득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빼앗긴 오키나와(옛 유구왕국)를 도로 차지하는 오키나와 반환협정이 미·일 간에 체결된 것은 베트남전쟁 중인 1971년이다. 이것은 일본의 간접적 전쟁 지원에 대한 미국의 보답이었다.

이는 1879년부터 일본에 강점된 오키나와인들의 독립 열망을 짓밟는 것이었다. 한편, 일본은 간접적인 대미 지원과 오키나와 획득을 통해 베트남인들의 독립전쟁을 명분 없이 방해한다는 비난을 덜 받으면서 영토상의 이익을 확보했다.

일본은 패망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도모하면서도, 명분 없고 부담스러운 전쟁에 대해서는 자위대 파견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한껏 강조하다가 연인원 34만이나 되는 대군을 베트남에 파견해 북한의 무장공비 대거 파견이라는 안보위기를 자초한 박정희 정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파병에 대한 다카이치 총리의 태도는 자위대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와 일본의 군사대국화 추진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정교하면서도 위선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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