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세울 것인가"... 세계는 AI 데이터센터 분쟁 중
인공지능은 더이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법정에 서서 심판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법정 기록과 판결문, 각국의 입법과 행정지침을 토대로, 인공지능을 둘러싼 갈등이 실제로 어떻게 ‘사건’과 ‘판결’의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기자말>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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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전 세계 법정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AI 소송은 AI를 돌리는 건물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둘러싼 분쟁이다. |
| ⓒ scottrodgerson on Unsplash |
AI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라고 하면 저작권 침해나 딥페이크를 떠올리기 쉽지만, 지금 전 세계 법정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AI 소송은 AI를 돌리는 건물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둘러싼 분쟁이다. 컬럼비아대 로스쿨 사빈센터 연구진은 2026년 2월 데이터센터 소송을 기후소송의 '부상하는 전선(emerging frontier)'으로 소개했고, 실제로 칠레에서는 구글 데이터센터의 지하수 사용에 대해 추가 환경영향평가를 명령하는 판결이 나왔으며, 아일랜드에서는 국가 전력 수요의 약 20% 이상을 차지하는 데이터센터 확장이 자국 기후법과 EU 환경법을 위반한다는 소송이 고등법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올리언스와 챈들러 등 여러 지방정부가 데이터센터 건설 모라토리엄을 도입하고, 영국에서는 버킹엄셔 우드랜즈 파크 데이터센터 승인에서 환경영향평가 생략이 '심각한 논리적 오류'로 지적되며 승인이 취소됐으며, 캘리포니아 피츠버그 시에서는 CEQA 소송을 계기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과 재활용수 냉각, 옥상 태양광 설치 등을 조건으로 한 합의가 이뤄졌다.
수원지법, 같은 용인시에 다른 판결 – 행정심판도 엇갈렸다
한국의 인허가 법적 분쟁은 2023년부터 본격화되었다. 2023년 경기 용인시는 통학로 안전을 이유로 다우기술 데이터센터의 착공 신고서를 반려했으나, 수원지법은 용인시의 착공 신고 반려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착공 신고서 접수 시 형식적 하자만 심사해야 하며, 통학로 안전 같은 실체적 사유로 반려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2025년 11월, 수원지법은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 데이터센터 건축허가 불허에 대해서는 용인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인근 건축물(12~16m)보다 과도하게 높은 건물(23.1m)을 짓고 냉각시스템을 상시 가동하는 것이 주거환경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용인시의 주요한 주장이었다.
행정심판에서는 사업자가 연달아 승소했다. 2024년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김포 구래동 디지털리얼티와 고양 덕이동 마그나PFV 에 대한 착공 신고 반려를 모두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3년간 최소 4건의 법적 분쟁이 확인되지만, 어떤 사유가 적법한 불허 근거가 되는지에 대한 일관된 기준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고양시, 데이터센터 허가는 해주고 착공은 막았다
이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곳이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이다. GS건설 계열사 마그나PFV는 덕이동 309-56번지에 연면적 16,945㎡, 지하 2층·지상 5층, 높이 49.84m, 총공사비 1500억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축허가를 2023년 3월 받았다. 경의선을 사이에 두고 2500여 가구 아파트 단지와 초·중학교가 위치한 곳이다.
고양시는 2023년 3월 이 데이터센터의 건축허가를 직접 내주었다. 그러나 2024년 6월 사업자가 착공 신고서를 제출하자 주민 반발이 본격화되었고, 고양시는 4차례에 걸쳐 보완을 요청한 끝에 8월 착공 신고를 반려했다. 허가는 해주고 착공은 막은 것이다. 마그나PFV는 법원이 아닌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에 불복했고, 10월 반려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고양시는 건축허가 직권취소도 검토했으나, 법률 자문 결과 부적정하다는 답을 받았다. 결국 10월 31일 착공이 수리되어 공사가 시작되었고, 현재 2026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워회, 시행사 손을 들어주다
착공은 되었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탄중덕이일산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촛불집회를 열었다. 1만 4000여 명의 서명과 탄원서가 행정기관에 제출되었고, 2025년 초에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대위원장이 삭발식까지 진행했다. 주민대책위는 행정소송을 포함한 추가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다.
갈등은 고양시 전체로 번졌다. 고양시에는 운영 중이거나 건설·허가 진행 중인 데이터센터가 10곳에 달한다. 시의회는 2025년 9월 임홍열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위를 출범시켜 10곳 전체를 조사했다. 운영 중 3곳의 세수 기여액이 연간 약 8억 원, 전체 시 세수의 0.1%에 그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임홍열 의원은 2025년 2월 '식사동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해 본회의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양시장 예비후보 민경선 전 경기교통공사 사장은 식사동 데이터센터 예정 부지가 국유지인 점을 들어, 매각을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데이터센터가 2026년 지방선거의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갈등의 뿌리는 같다. 허가 서류 어디에도 주민은 없다. 현행 인허가 체계에서 주민은 설명회에 참석하고 민원을 넣을 수 있을 뿐, 허가 과정에 법적 구속력 있는 의견을 제출할 통로가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수십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소비하고, 24시간 냉각수를 순환시키며, 수백 대의 비상발전기를 갖춘 시설이 현행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의 대상 사업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데이터센터 특별법, 법적 기준은 제공할까?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6년 2월 국회 과방위 법안소위에 데이터센터 특별법안이 상정되었다. 배경에는 전력 수급의 병목도 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수도권에서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기 사용 신청 195건 중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한 것은 4건에 불과했고, 신청 전력 용량은 원전 20기에 해당하는 20GW였다.
정동영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장겸 의원(국민의힘), 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이 각각 발의한 이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데이터센터를 국가 전략 인프라로 규정하고, 세제 지원, 인허가 일괄처리,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 전력 직접거래(PPA) 허용 등 산업 촉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AI 산업 활성화와 데이터센터 진흥만을 위해 규제는 완화하고 비용은 사회가 부담하도록 하는 특혜 패키지라고 비판하면서, RE100 원칙도 없이 국가가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법은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공백을 메우되, 주민 참여의 법적 지위와 환경영향평가 대상 확대가 함께 논의되어야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이전 연재에서 AI가 무엇을 먹고 컸는가를 묻는 저작권 소송을 다루었다면, 이제 AI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묻는 법적 분쟁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용인에서는 행정소송, 김포와 고양에서는 행정심판, 덕이동에서는 촛불집회와 삭발식, 고양시의회에서는 반대 결의안과 특위 조사, 그리고 서울 독산동까지 번진 갈등. 다음 회에서는 같은 질문에 영국과 미국의 법원이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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