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 넘치는 남학생들의 돌발행동... 남교사의 대응법

이준수 2026. 3. 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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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목표, 건강하고 평화롭게 힘을 다루기... 기력충만한 우리 반의 도전은 계속된다

[이준수 기자]

교실에서 영화를 보다가 단체로 팔 굽혀 펴기 대회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반은 좀 특이하다. 강원동 양양 하조대 시골에 있지만 우리 반에는 수도권에서 온 유학생만 있다. 여덟 명 모두 남학생이다. 담임인 나까지 남자. 하루의 대부분을 남자 아홉이 함께 보내는 셈이다.

교실에서 팔 굽혀 펴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성평등을 배우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인도의 여성 레슬러 이야기를 다룬 영화 <당갈>을 보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두 딸을 레슬러로 키우기 위해 맹훈련시킨다. 새벽 일찍 일어나 달리고, 팔 굽혀 펴기를 한다. 소녀들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낑낑거리며 훈련을 받는다. 그때 우리 반 아이가 말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팔 굽혀 펴기 해봤어."

슬슬 사춘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5학년 교실이다. 영화 속 인물을 보고도 경쟁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여학생이 몇 명이라도 있었다면 '남자애들이 그렇지 뭐'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우리 반에서는 달랐다. 희미한 아드레날린의 향기가 났다.

"내가 태권도 2품인데 옛날에 훈련했어."
"어? 나도 태권도 2품인데?"
"나는 유도 검은띠."

잠시 교실이 소란스러워져 영화를 일시정지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픈 남학생의 입은 쉴 수 없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무술 도장에 다닌 경력을 조사해 보았다. 유도 검은띠 한 명, 태권도 2품 다섯 명, 1품 한 명.

여덟 명 중 일곱 명이 상당한 무술 수련자라니. 알고 보니 우리 반은 소림사였던가. 그래서 우리 반이 이토록 시끄럽고 혈기왕성하다는 말인가. 나는 비로소 우리 반이 초특급 에너지로 넘실거리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알고보면 마음이 여린 남자들
ⓒ 이준수
"팔 굽혀 펴기 정도는 너희에게 껌이겠다?"

나는 진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유단자들의 숙련된 솜씨를. 설마 한 팔로 몸을 들어 올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손가락으로만 가능한가. 여덟 명 중 무려 검은띠가 일곱 명아닌가. 우리 교실 뒤편에는 나무로 된 널찍한 평상이 있다. 팔 굽혀 펴기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팔 굽혀 펴기를 해 보세요. 보여 주세요!"

나는 남학생의 에너지를 억누르고 싶지 않다. 종종 남학생의 에너지는 학교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거칠고 통제하기 힘들어서 공동체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현상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나뉜다. 나는 올해 만난 친구들을 특별한 인연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반의 목표는 '건강하고 평화롭게 힘을 다루기'. 그렇기에 이번 팔 굽혀 펴기 활동은 좋은 기회였다. 자부심도 채우고, 근력도 기르고 일석이조.

"얼른 나와요. 유단자님들!"
"아, 그런데 태권도를 이 년 전에 끊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이들의 자세가 영 어색했다. 영화 볼 때의 기세등등함은 어디 갔을까. 어딘가 꾸물거리는 모양새였다. 평상 앞에 모인 아이들은 서로 순서를 미뤘다. 무술 경력은 자랑할 때는 언제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번호 순서대로 하기로 결정이 났다.
 팔씨름은 남학생 간의 빼 놓을 수 없는 스포츠다.
ⓒ 이준수
"하나, 두울, 세엣, 끄응."

첫 번째 소년의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엉덩이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팔이 움직이는 거리는 십 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체육관이었다면 '한 개'도 인정받지 못할 자세였다. 그래도 나는 팔을 움찔거려서 약간이라도 몸통이 내려가면 숫자를 인정해 주었다. 아이들의 기를 꺾고 싶지 않았다. 팔 굽혀 펴기를 마친 아이에게는 모두 손뼉을 쳤다.

두 번째 소년의 차례. 어쭈, 첫 팔 굽혀 펴기는 성공이었다. 몸이 널빤지처럼 평평하다. 그러나 몸 널빤지는 5초 만에 무너졌다. 여지없이 몸이 굽은 활처럼 휘었다.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최선을 다한 끝에 최종 개수는 다섯. 그래도 다 같이 박수를 보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를 거쳐 여덟 번째 아이까지 끝났다. 모두 어색한 표정이었다. 아쉬워보이기도 하고 멋쩍어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유단자의 팔 굽혀 펴기는 별로였다. 정자세로는 사실상 세 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으려 애썼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도장을 한창 다닐 무렵에는 잘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몸은 매우 정직하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왕년의 유단자도 한 달만 팔 굽혀 펴기를 쉬면 팔 근육이 빠진다. 하물며 몇 년 전 검은띠가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열두 살 남학생들이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귀엽다. 무기력한 아이의 얼굴보다는 훨씬 낫다.

앞으로 우리 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담임인 나조차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다만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단서는 있다. 팔 굽혀 펴기 깜짝 행사로 나도 마지막 선수로 참여했다. 육군 병장 만기전역자인 경력을 살려 무난히 1등. 아이들 눈에 도전의 불꽃이 튀는 것을 보았다. 달리기, 철봉, 팔 굽혀 펴기. 기력충만한 우리 반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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