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산동 독립 운동 유적, 이렇게 가보세요

김명희 2026. 3. 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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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기념관, 의열단 이종암 고택, 1919년 만세운동의 남산교회와 보현사

[김명희 기자]

 대구 중구 남산동 '이육사 기념관'
ⓒ 김명희
이육사는 '광야'와 '청포도'의 시인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에 '이육사 기념관'이 있다. 경북 안동 '이육사 문학관'과 혼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념관'이라 이름을 붙였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번지의 이육사 문학관은 탄신 100주년을 맞아 2004년에 개관했다.

대구 중구 중앙대로67길 11의 이육사 기념관은 2023년에 개관했다. 육사가 16세이던 1920년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주해 살았던 집이 남산동 662번지에 남아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 조성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다. 기념관은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 까닭에, 기념관을 찾는 주소로는 '중앙대로67길 11'이 마땅하지 않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 전체의 주소이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중앙대로65길 11'을 검색하면 기념관 바로 앞에 닿는다. 기념관 외벽에 이육사 형제들의 대형 사진이 게시 되어 있어 답사자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지난 20일, 이곳을 찾았다.

기념관 안에 '청포도'와 '광야'가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안내 공간 옆벽에서부터 여러 전시물들을 보게 되는데, '청포도'는 눈에 두드러지게 잘 보이는 넓은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반면, '광야'는 유심히 찾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칠 만큼 구석진 곳에 조그맣게 있다.

공연히 안쓰러워 '광야'를 새삼 한 번 더 읽어본다. 언제 감상해도 선이 굵으면서 감성은 매우 섬세한 걸작이다. 구조와 논리가 정교하고 치밀해서 암기하기에도 아주 좋다. 여러 이유에서 우리나라 현대시를 대표할 만한 명작 중 한 편이 아닌가 여겨진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종암 생가'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은 이곳 대구 중구 남산동 집에서가 아니라 대구 동구 백안동에서 태어났다.
ⓒ 김명희
'광야'를 읊는 것으로 이육사 기념관 관람을 마친 뒤 250m쯤 떨어진 문우관길 30-26의 이종암 독립지사 관련 고택으로 향한다. 이 와가는 이종암 지사가 순국 직전에 열흘 가량 머물렀던 형(이종윤)의 집이다.

이 집에는 두 가지 아쉬움이 있다. 첫째, 조금만 가다듬으면 훌륭한 독립운동 유적지로 활용할 수 있는 상태인데 계속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 육사 고택처럼 자취로 없이 사라질 개연성이 높으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둘째, 이종암 지사는 팔공산 아래 백안동에서 태어났는데 이 집 대문 앞에 '이종암 생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안내판의 표현대로 "대구 대표 독립운동가"를 이렇게 기려서는 안 되겠다. 독립기념관 누리집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에도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백안동"에서 태어났다고 안내 되어 있다.

남산교회와 보현사도 있는 남산동

이종암 고택이 있는 골목길에서 나오면 이내 남산교회 앞이다. 교회 건물 외벽에 "백남채 장로, 김태련 장로와 김용해 성도, 이만집 목사, 이 분들은 1919년 3월 8일 죽음과 투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구에서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안내판 위에 네 분의 부조 조각이 있고, 오른쪽에는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쇠붙이들을 강제 징수할 때 땅속에 숨겨두었다가 독립 이후 꺼내어 타종한 '독립의 종'도 있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빛나는 역사를 남산교회는 가지고 있구나, 싶다.
 남산교회 벽의 독립만세운동 안내판
ⓒ 김명희
교회에서 동부교육청 담을 타고 200미터쯤 가면 또 다른 독립 운동 유적이 있다. 이번에는 사찰이다. 보현사인데, 동화사 청년 승려들이 1919년 3월 30일 덕산정시장 장날 시위를 준비했던 곳이다. 절 외벽에 스님들의 만세운동을 형상화한 전광판 벽화가 커다랗게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 반월당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남산동 독립운동유적 답사를 시작하는 경우, 문우관길 65 보현사 벽화부터 본 다음 관덕정길 16 남산교회로 이동하면 된다. 그 뒤 문우관길 30-26 이종암 지사 고택, 그리고 중앙대로 65길 11 이육사 기념관 순서가 좋다. 네 곳이 밀집해 있어 거리도 짧고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는다. 많은 분께서 찾아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안내문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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