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재명'은 진화이자 외연 확장…정치 복귀해 외교에서 목소리 내고 싶다" [월간중앙]
“국제관계 급변…한·미·일 못지않게 북·중·러 관계 잘 다져가는 외교 필요”
“문재인 정부 때 법무부 장관 제안받고 거절, 외교 장관 희망했지만 무산”

대부분의 수인(囚人)들에게 감옥은 사법적 죄에 따른 체벌이지만 특별한 이들에게는 훌륭한 학교가 되기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 송영길(63) 전 민주당 대표에게도 그렇다. 그는 최근 〈진실은 가둘 수 없다-송영길의 옥중생각〉 책을 낸 뒤 서울과 대구, 인천을 순회하며 출판기념회를 갖고 감옥에서 배운 것들을 많은 이들과 나눴다. 3월 3일 그의 오랜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구에 자리 잡은 카리나호텔 2층 접견실에서 송 전 대표를 만났다.
Q : 송영길의 시간은 거꾸로 가나?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 여의도(정치)를 떠난 수년간 더 성숙해진 것 같다.
A : “감옥에서 워낙 무상급식을 잘 먹어서 그런가(웃음). 지나간 3년의 세월이 제게는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 자신을 성숙하게 만든 중요한 시기였다. (잠깐 말을 멈추더니 메모지에 不怨天 不尤人[불원천 불우인] 여섯 글자를 썼다) 공자님 말씀인데,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마라’ 제 고등학교 은사이신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선생님께서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면회 와서 해주신 말씀이다. 옥중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더라.”
Q :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9년 수필 〈하느님의 발길에 채여서〉에서 “나는 감옥을 인생의 대학으로 여긴다”라고 썼다. 송 전 대표 책을 읽어봤더니 ‘옥중에서 다시 만난 김대중 대통령’ 대목이 눈에 띄더라.
A : “구치소에서 〈김대중 옥중서신〉을 다시 읽었다. 당시 전두환 핵심이었던 이학봉이 감옥에 찾아와 사형수 김대중을 회유했지만 김 대통령도, 이희호 여사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 아내 남영신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권 하에서 탄압받고 감옥에 갇히지 않는 자가 나중에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러더라. 그 말에 용기를 냈다. 그래서 제가 윤석열 검찰 범죄 정권 타도를 다짐하는 〈선전포고〉라는 책도 냈었다. 제가 외교 문제에 관심이 많아 의원 외교활동을 통해 많은 나라 국회의원과 의회 지도자들을 만났다. 미국·일본·러시아·중국은 물론 유럽, 인도 등 전 세계 대부분의 정치인으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는 유일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김대중이었다.”
“외교로 꽉 막힌 남북 관계 뚫어내고 싶다.”
Q : 송 전 대표가 여의도에 없었던 지난 3년간 정치권은 총선과 대선, 비상계엄과 탄핵, 내란 청산으로 숨 가빴다.
A : “감옥에 있는데,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8 대 0으로 인용된 뒤 마음이 훨씬 편해지더라.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겨서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열리니까 더 평안해져서 ‘그냥 있어도 좋겠다, 한 1년은 견딜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웃음). 제가 이번에 다시 국회에 가려는 것도 무슨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5선 의원에, 인천시장에, (민주)당 대표까지 했는데… 단지 나라에 제가 아직 할 일이 있다.”
Q : 그게 무엇인가?
A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지금 중동전쟁까지, 트럼프 (2기) 시대에 국제 정세가 불안하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남북 관계가 지금 바늘구멍 하나 안 보이는 상황이라는 거다. 한반도에 3차대전의 발화점이 될 수 있는 군사적인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는데, 이것을 뚫어내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원래 제가 젊어서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21대 국회 때도 외교통일 위원장을 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맡아 문 대통령의 러시아 순방을 수행하는 등 남북 간 경제협력을 뚫기 위해 힘쓰기도 했다. 나중에는 대통령한테 외교부 장관 한번 시켜달라 말해달라고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간곡히 요청한 적도 있다.”
Q : 송영길이 외교부 장관 시켜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A : “2019년 말쯤으로 기억한다. 트럼프 1기 시대에 북·미 관계를 뚫어보려고 내 딴에는 간절히 외교부 장관을 원했다. 북핵 문제 해결, 북·미 간 외교 정상화를 이뤄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문 대통령에게 말해서) 외교부 장관 시켜주시면 2020년 국회의원 출마도, 당 대표 선거도 포기하고 임기 말까지 순장조(殉葬組)로 뛰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재임 2년이 넘었을 때였다. 강 장관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라고 주위에 말했다는 얘기도 제가 간접적으로 들은 터였다. 장관 교체할 때도 됐고 해서 그런 부탁을 했었다.”
Q : 그렇게까지 외교에 관심이 많았나?
A : “제가 정치를 하게 된 이유가 ‘꽉 막힌 남북 관계를 뚫어보겠다. 이 분단의 시대를 내 생애에 끝내겠다’ 이 생각이 컸다. 4개 국어를 공부한 것도 그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실제 송 전 대표는 영어·중국어·러시아어·일본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며, 한반도 주변 4강에 두터운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주변 4대 강국의 언어를 배워야 그 힘의 균형을 이용해서 민족의 자주적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한스 디트리히 겐셔(1927~2016) 전 독일 외교부 장관을 제 롤모델로 삼았다.”
독일 통일의 주역 겐셔 전 장관은 ‘겐셔리즘’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외교의 신’으로 불린다. 독일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1974부터 1992년까지 18년 동안 외무장관 겸 부총리를 지냈고, 통일 독일의 초대 외무장관을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강력한 리더십으로 미국과 굳건한 관계를 쌓아가면서도 소련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해 독일 통일의 초석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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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넘나들며 독일 위해 일한 겐셔 전 외무장관 존경”
Q : 겐셔 전 외교장관의 어떤 점을 존경하나?
A : “겐셔는 독일의 제3당인 자유민주연합 출신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민당과 연립 정부를 해서 빌리 브란트(1913~1992) 총리 밑에서, 나중에는 기민당과 연립 정부를 해서 헬무트 콜(1930~2017) 총리 밑에서 외교부 장관을 했다. 여야를 넘어 연립내각에서 독일을 위해 일한 거다. 그래서 마지막 독일 통일 완성은 사실 헬무트 콜과 한스 겐셔의 합작품이었다. 당시 겐셔는 독일과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이 세 나라를 끊임없이 설득한다. 동시에 소련 외무장관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설득해서 동독에 주둔해 있던 38만 명의 소련군을 철수시킨다. 독일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문제도 ‘통일된 독일은 나토 가입 안 된다’ 이렇게 끝까지 소련이 주장했으면 어려웠을 텐데, 겐셔의 외교력이 큰 힘이 됐다.”
Q : ‘한국의 겐셔’가 되고 싶어서 외교부 장관을 그토록 원했는데, 왜 안 됐던 것인가?
A : “노영민 실장이 ‘알았다.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 그 뒤에 노 실장이 문 대통령 만나고 와서 하는 말이 ‘(대통령이) 강 장관을 바꿀 생각이 없단다’ 그러더라. 얼마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법무부 장관 맡을 생각 없느냐?’ 거절했다. 그래서 그 자리가 추미애 의원에게 간 거다.”
Q : 그런 곡절이 있었나?
A : “강기정 당시 정무수석도 ‘송형이 맡아달라’ 저를 설득하더라. 그런데 끝까지 안 맡았다. 나중에 제가 (검찰 수사받고) 감옥에 들어오니까 그게 엄청 후회되는 거다(웃음). ‘그때 윤석열 검찰을 확 잡았어야 하는 건데’ 하고···”
Q : 지금 중동전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A : “이게 판도라의 상자다.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란에 지상군을 투입해서 미국이 통제하는 정권을 수립하지 않는 이상 종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라크도 미국이 2003년에 침공해 10년 이상이 걸렸다.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지금도 이라크가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공격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우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요구가 있었고, 중국에 대한 석유 견제도 있을 것이고, 중간 선거도 앞두고 있고···”
A : “우리나라는 정말 외교가 제일 중요하다. 미국 1극 시대에서 다극화 시대로 가고 있는데, 우리 외교는 1극 시대에 종속돼 있어서 사고의 폭이 좁고 자주적 공간을 열어가는 외교가 부족하다. 지금 외교부가 이 대통령 생각을 못 따라가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나 조현 외교부 장관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미국이 그어놓은 바운더리를 벗어나서 자주적 공간을 만들 그 정도의 마인드와 자세는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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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교부, 이재명 대통령 생각 못 따라가고 있다.”
Q : 우리의 한반도 주변 4강 외교는 잘되고 있다고 보는가?
A : “제 일관된 주장은, 한·미·일 협력이 필요조건이라면 충분조건은 북·중·러 협력이라는 거다. 그게 되지 않고 완전히 양극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일어났나?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3국 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 3국 협상 간 치열한 분쟁이 비화한 거잖나. 저는 북·중·러와 관계를 잘 다지지 않으면 1차 세계대전 같은 상황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Q : 그러니 우리 외교가 한·미·일 중심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
A : “그렇다. 북·중·러가 만만한 나라가 아니잖나. 세 나라가 다 핵을 가지고 있고, 세계 2대 경제 대국인 중국과 세계 2대 군사력을 갖는 러시아가 연합해서 우리와 맞선다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가 살길은 친미국(親美國)을 중심으로 하되 중국·러시아·일본과 잘 지내는 것이다. 원교근친(遠郊近親)이다. 한반도를 북·중·러와 한·미·일 군사동맹의 대척점으로 만드는 것은 일본과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거다.”
Q : 송영길이 국회로 복귀하려는 이유도 그것이다?
A : “국회로 들어와야 제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정당은 (국정을 맡고 있는 정부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잖나. 미국에 싫은 소리도 하면서 우리의 자주적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정부로서는 ‘한·미동맹’이라는 측면에서 미국과 부딪히기가 아무래도 어렵다. 정부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을 정당이 치고 나가 주는 그런 기능이 필요하다.”
오늘 세 번째 출판기념회인데, 지지자들로 성황이다. 책을 읽은 이들의 반응은 어떤가?
Q :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제 입으로는 말하기 그렇고, 정범구 전 독일 대사가 페북에 올린 글을 한번 봐달라.”
A : 여의도 젠틀맨으로 통했던 정범구 전 의원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송영길은 자타가 공인하는 외교·안보 전문가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한·미·일 동맹의 위험성과 어리석음을 조목조목 비판하는가 하면, 세계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균형 있는 우리의 시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미동맹, 남북의 여러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들을 밝히고, 특히 우리 정치인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기후 위기와 에너지 문제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들이 이처럼 당면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소신을 밝히고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A : “이 대통령이 아주 잘하고 있다. 워낙 윤석열이 엉망으로 해놔서 그 기저 효과도 있고(웃음). 저는 정치에 복귀하면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과 내용을 조금 더 강화해서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도록 만들어 보겠다는 그 열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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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와 보수도 민주당 지지 세력으로 포섭해야”
Q : 민주당에 복당했다. 최근 민주당에서 ‘뉴이재명’ 흐름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A :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나 유시민 작가 이쪽 분들은 (이른바 ‘뉴이재명’ 세력이 친문 세력 등을 구민주당으로 몰아) 갈라치기를 하려는 거 아니냐 하는 비판이 있는데, 저도 갈라치고 분열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러나 저는 뉴이재명 현상을 중도·보수를 통합시키기 위한 진화 과정으로 이해하고 싶다. 분열이 아니라 외연의 확장이다. 지금 국민의힘 장동혁 체제가 합리적 보수를 포기하고 극우로 갔기 때문에 그 공간을 메워서 민주당의 지지 세력으로 포섭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Q : 정치 복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감회는?
A : “저 송영길은 항상 대의를 좇는 정치를 해왔다. 제 동료나 후배들이 저를 보면 ‘학생운동 할 때의 정의감이나 역사의식이 나이 들면 다 꺾이고,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굽히기도 하는데, 송영길은 한 번도 안 굽히고 여기까지 왔다’라고 신기해하곤 한다. 박선원 의원이 그랬던가, ‘살다 살다 배지도 없는 정치인이 수사받고 있는 검찰청 앞에 가서 한 달 동안 농성하면서 싸운 사람은 처음 봤다’고. 그때 ‘나부터 구속하라’고 두 번이나 검찰청을 들이받았다. 내가 ‘쫄지 마! 민주당’을 외치면서 홀로 검찰과 정면으로 싸운 것이 민주당에 큰 힘이 됐다. 그게 당시 이재명 대표의 단식으로 이어졌고… 그 뒤로 민주당이 똘똘 뭉쳐서 마침내 검찰 정권을 끝장내고 집권하게 된 거다.”
Q : 민주당 지도부는 송 전 대표가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복당자에 대한 불이익도 없애줬다. 여기 인천에서 출마하나?
A : “당에서 결정해줘야지. (무관인) 내가 어디로 가겠다고 할 수 없는 처지지 않나.”
나권일 월간중앙 선임기자 na.kwon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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