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지낸 한글의 가치, 깊이 되새기는 계기 되길"
[김슬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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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표지와 한글학자인 필자에게 보낸 작가의 헌정 서명 |
| ⓒ 김슬옹 |
지난 16일, 이 책의 저술과 보급을 기획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15인 헌정 사실을 밝혔다. 이때 처음으로 필자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종찬 광복회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철학자 김형석 교수, 이광형 KAIST 총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RM(BTS), 임영웅, 유재석 등과 함께 포함된 사실을 알았다.
지난해 10월 세종시 한글 행사에서 명함을 주고받은 인연이 있어 17일, 제천에 머물던 김 작가와 직접 통화를 나눴다.
"저를 뽑아 주셔서 영광입니다"라며 쑥스러운 인사를 건네는 필자에게 김 작가는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50년 가까이 한글을 위해 외길을 걸어오신 분을 뽑지 않으면 누구를 뽑는단 말입니까?"
그는 이어, 15명 모두 세종 정신을 빛내 줄 인물들을 쥘 베른의 소설 <15소년 표류기>에 맞추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이 서로의 지혜와 능력을 모아 끝내 위기를 극복해 나가듯, 오늘의 한국 사회 역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지혜와 헌신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헌정했다고 한다.
- 책 첫 장에 저에 대한 정성어린 헌정 서명을 적어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 훈민정음 연구 학계에 대한 예우로 느껴져 마음이 묵직합니다. 수십 년간 해례본을 연구하며 늘 안타까웠던 점은, 이 위대한 성취가 대중의 가슴에 온전히 닿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숭엄한 주제를 소설로 형상화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세송시의 권유를 꽤 오래 고사했습니다. 세종대왕의 위업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부족한 필력이 그 빛을 가릴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천 년의 고뇌를 이야기로 풀어내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한글은 단순한 글자가 아닙니다. 민족 정체성의 뼈대이자, 문자를 '권력의 도구'에서 '인간의 권리'로 이동시킨 문명사적 전환점입니다."
- 소설에서 한글 창제 원리를 '수학적 원리'로 접근하신 대목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작품에서는 이를 위해 과학기술자 장영실의 역할을 크게 높였습니다. 해례본이 상형 과학과 오행의 철학을 담고 있다면, 저는 <한글학>(경진출판)에서 그 이면의 기하학적 체계성(직선 중심 과학)을 강조해 왔거든요. 혹시 제 책을 보신 건 아닌지요? (웃음)
"아쉽게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만, 조만간 꼭 정독하겠습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글이 왜 과학적인지 설명할 때 흔히 쓰는 '발성 기관을 본떴다'는 말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왔습니다. 왜 하필 선과 점의 조합인가를 파고들다 보니, 모든 글자가 최소한의 요소로 무한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내는 수학적 사고에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글이 지닌 현대적 확장성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 소설 속 집현전 학사들과 사대부들의 반발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한 역사적 갈등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한 '정보와 지식의 독점'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에게 글자는 기득권을 지키는 성벽이었습니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글을 몰라 소장 한 장 쓰지 못하고 죽어가는 현실을 방관하면서, 글이 퍼지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죠. 새 글자 창제를 명나라에 대한 반역으로 몰아붙인 그들에게 문자란 오직 '선택받은 자들의 권세'였을 뿐입니다."
- 세종께서 고립무원의 처지에서도 20년 가까이 이 작업을 이어가신 동력은, 결국 백성을 향한 사랑이었겠지요. 집필하며 가장 깊이 조우한 세종의 내면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제가 만난 세종은, '임금이란 지식이 많은 자가 아니라 백성을 가장 깊이 사랑하는 자가 앉는 자리'임을 몸소 증명한 분이었습니다. '백성이 글을 얻어야 조선이 비로소 중국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라가 된다'는 그 일념 하나로, 눈병과 종기를 견디며 홀로 글자를 빚어내셨습니다. 원고를 쓰면서 그분의 천재성보다 그 지극한 사랑에 마음이 흔들려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이 작품이 우리 사회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길 기대하시나요?
"사대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우리만의 혼을 세우려 했던 세종의 깊은 고뇌가 독자들의 가슴에 가닿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고 우리 글을 배우려 하는 지금, 정작 주인인 우리가 잊고 지냈던 한글의 가치를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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