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통제vs과제] 포용금융의 그늘…흔들리는 신용 기준
300만명 신용사면 이후 재연체 속출…정책 실효성 논란 확산
“신용평가 기준 자체 무너지면 시장 가격 기능 왜곡”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포용금융 정책이 속도를 내면서 신용 기준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저신용자 지원 확대를 명분으로 한 정책 드라이브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구간에서는 고신용자의 대출금리가 저신용자보다 높은 ‘금리 역전’ 현상까지 발생하며 시장 가격 기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이재명 대통령이 기존 금융체계를 ‘금융 계급제’로 규정하고 저신용자 중심의 금융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이후 본격화됐다.
23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된 올해 2월 가계대출 신용점수별 금리 현황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600점 이하 구간 금리가 6.22%로, 650~601점 구간(6.48%)보다 낮게 형성됐다.
인터넷전문은행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포착된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토스뱅크 모두 일부 신용점수 구간에서 고신용자 금리가 중신용자보다 높은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신용을 기반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금융시장 구조가 정책 개입에 따라 재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개별 차주의 상환 능력이나 금융 이력에 대한 정밀한 평가보다는 ‘저신용자 지원’이라는 단일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서는 저신용자 중에도 소득 수준이나 자산, 현금흐름에 따라 상환 능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이 같은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개별 리스크가 아닌 집단 단위 접근이 강화되면서 은행들은 금리와 한도 등 가격 변수로 리스크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고, 이는 금리 역전과 같은 비정상적 가격 형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포용금융 정책의 대표 성과로 ‘신용사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15일 설 연휴를 맞아 공개한 국정 성과 발표에서 약 300만명에 달하는 신용회복 지원을 주요 성과로 언급했다.
5000만원 이하 연체금을 상환한 292만8000명에 대해 신용 이력을 삭제하는 이른바 ‘신용사면’ 조치를 통해 금융 정상화 기회를 제공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단기간 내 재연체가 발생하면서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NICE평가정보와 한국평가데이터(KODATA)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신용사면을 받은 292만8000명 가운데 16만9000명이 올해 1월1일부터 20일 사이 다시 신규 연체 상태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점수 개선 효과 역시 계층별로 편차가 컸다.
신용회복 조치 이후 개인 신용점수는 평균 28.8점 상승했지만, 600점 이하 최저신용자의 경우 상승폭은 6.9점에 그친 반면, 800~900점 구간에서는 평균 52.3점이 오르는 등 상대적으로 고신용 구간에서 개선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정책이 실제 취약계층의 신용 회복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단기적인 점수 조정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사후 구제 중심 정책이 반복되면서 ‘신용’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배드뱅크, 신용사면 등 정책이 누적되면서 위험 기반 금리 체계가 약화되고, 시장 내 가격 신호가 왜곡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정책 취지와 별개로 성실 상환자 역차별, 도덕적 해이, 리스크 누적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금융권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정책 요구에 따라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확대해야 하는 동시에 가계대출 증가세 관리와 건전성 유지라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으면서, 은행들은 금리와 한도 설계 기준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정책과 시장 원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금리 왜곡이 구조화되고 있다고도 분석된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정책 설계상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포용금융 확대 정책과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서로 반대 방향의 정책이 병행되는 측면이 있다”며 “현장에서는 정책 간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용평가 체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리스크로 지목했다.
이 관계자는 “대출이 어렵다는 이유로 점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신용사면과 다를 바 없게 된다”며 “이 경우 신용평가의 기준 자체가 무너지면서 시장 가격 기능이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용금융은 필요하지만, 평가 기준을 흐리는 방식이 아니라 상환 능력을 더 정교하게 구분하는 방향으로 가야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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